문화재 디지털 복원가 박진호씨, 앙코르와트 등 '해외 유산'도 재현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과거 역사… 이제 타임머신 탄 것 같을 거예요"
2019년 마지막 날, 1세대 문화재 디지털 복원가 박진호(48)씨는 새해에 자신의 숙원 사업인 진시황릉 병마용갱 VR 재현을 해낼 수 있게 됐다며 들뜬 모습을 보였다. 그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5차례 이상 중국 시안(西安) 답사를 했다. 현장 답사는 물론, 전문가들을 찾아가고 관련 서적까지 섭렵했다. 올여름 중국 톈진(天津)대와 합작으로 본격적인 3D 스캔 작업에 착수한다.
그는 지금까지 8차례 해외 문화유산 디지털 작업을 맡았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불탑 등을 디지털로 재현해냈다. 최근엔 파키스탄 간다라 문화의 정수라 불리는 탁티바히 불탑을 VR로 되살려냈다. 올봄부터 백제 몽촌·풍납토성 재현 작업도 할 계획이다.
문화재 디지털 복원은 3D, VR 기술 등으로 문화재의 원형을 보존하거나 현존하지 않는 문화재를 재현해내는 작업이다. 상상 속 문화재의 모습을 각종 사료와 동시대 유물 등을 통해 고증해낸 뒤 이를 디지털로 형상화한다. 박씨는 "역사를 책과 사진으로만 접해서는 그 당시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기는 쉽지 않다"며 "문화재 디지털 복원 작업은 역사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일종의 디지털 타임머신"이라고 했다.
박씨가 문화재 디지털 복원의 꿈을 갖게 된 건 대학교 2학년이던 1992년. 당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고고학도였던 그는 경기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 이날 전곡선사박물관에서 만난 박씨는 "평범한 돌 조각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석기들을 보며 유물을 남긴 사람들의 옛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을 했다"며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곳이라 이곳에서 인터뷰하고 싶었다"고 했다.
박씨는 1999년 신라 서라벌 왕경을 VR로 복원하는 데 참여한 것을 시작해 지금까지 황룡사 9층 목탑, 고구려 고분 벽화 등 국내 작업에 70여 차례 참여했다. 그가 디지털로 재현해 낸 석굴암은 2013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박씨는 문화재 디지털 복원 작업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자금 마련을 꼽았다. 그는 "게임이나 영화 산업처럼 투자자들이 투자하면 수익을 돌려줄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며 "중국 상하이 엑스포에서 북송(北宋)의 문화재로 3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사례를 참고해 디지털 문화재 산업 발전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