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동학농민혁명에 사용된 사발통문.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사발을 엎어 그린 원을 중심으로 참가자의 이름을 빙 둘러 적었다. (〃 오른쪽)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방문객들.
전북 정읍 황토현 전적지에 가다
농민군이 최초로 관군 격파한 황토현 대첩 전승일…기념일로 제정
기념관에선 문화해설사로부터 혁명 배경 등 설명 들을 수 있어
과거 치열했던 흔적 사라졌지만 자주·평등 정신 후대에 길이 남겨
5월11일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뜨거운 울분으로 분연히 들고 일어섰던 1894년 민초들의 역사. 정부가 그 혁명의 의미를 기리고자 올해부터 공식적인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 한반도 전역을 뒤덮었던 농민들의 함성. 그때로부터 125년이 지난 2019년의 오늘. 동학농민혁명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의미로 되새겨야 할까.
전북 정읍은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황토현 전적지가 있는 곳이다. 야트막한 고개인 이곳에서 농민군은 무장한 전라감영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오늘날 이곳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배경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또 혁명을 기리고자 국가가 처음(1963년) 세운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자리해 있다.
“황토현은 1만여명의 농민군이 전주로 진격하는 길목이었죠. 이날의 승리는 농민군의 혁명이 전국적으로 전개된 발판이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김수웅 문화해설사는 황토현 전적지가 갖는 의미를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1894년 1월10(음력)일 고부(현 정읍시 고부면 일대)에서 터진 민란을 도화선으로, 무장(고창의 옛 지명)에서 봉기해 전열을 갖춘 농민군은 4월6일 고부 황토현 서쪽의 도교산에 진을 친다. 이에 맞서 황토현에 집결한 1000여명의 전라감영군. 이들은 날이 채밝지 않은 7일 새벽, 농민군을 기습 공격한다. 그러나 이를 간파하고 매복해 있던 농민군은 방심한 관군을 격파하고 값진 승리를 거머쥔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지정된 4월7일(양력 5월11일)은 바로 동학농민군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던 황토현에서의 대첩이 있던 날이다.
“동학농민군은 그 기세를 몰아 전주성까지 점령하죠. 이후 그들이 조정에 제시한 <폐정개혁안>을 보면 당시 농민군이 시대에 요구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탐관오리를 처벌하고 정당하지 않은 세금을 거두지 말 것’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천민의 대우를 개선할 것’ ‘토지를 균등히 나눠 경작하게 할 것’ ‘일본과 내통하는 자를 엄징할 것’ 등. 부패한 정치와 외세의 침략 등으로 어지러웠던 당대의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반봉건·반외세 중심의 개혁의지를 담았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 횡행한 관료들의 횡포는 어느 정도였을까. 고부군수 조병갑이 일삼았던 행적을 보면 가늠할 수 있다. 기존에 잘 쓰던 보를 허물고 새로 보(만석보)를 쌓게 한 뒤 물세(水稅)란 명목의 잡세를 걷었다. 태인현감을 지낸 아버지의 공적비를 세우고자 태인현도 아닌 고부군 농민에게 강제로 돈을 수탈하고, 불효·불목 등 억지 죄목을 갖다 붙여 무고한 사람의 재산을 빼앗았다.
지금도 정읍에는 조선 후기 탐관들이 노렸다던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기름진 땅이었기 때문에 백성의 삶은 더욱 황폐했으리라. 공평하고 올바르며 정의로운 사회. 과거 농민들이 바라던 세상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과도 다르지 않다. 결국 실패로 끝난 동학농민혁명을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건, 당시 농민군의 사상과 이념이 후대에도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황토현을 비롯한 대부분 유적지에선 과거의 치열했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동학농민혁명을 기억하고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당시 농민들이 외쳤던 자주·평등의 세상. 그곳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큼 노력하며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