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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신병주의 역사산책] 홀로 치르는 왕위 계승자의 통과의례...(5)조선시대 왕세자의 입학...
글쓴이 tntv 등록일 [2019.04.04]



[신병주의 역사산책] 홀로 치르는 왕위 계승자의 통과의례

 
일러스트=이철원

신병주의 역사산책 (5)조선시대 왕세자의 입학식

성균관서 공자와 스승 받드는 의식 태종 3년 양녕대군 첫 입학례 치러

보통 세자 8~13세 전후에 거행 광해군·효종, 20대 늦깎이 입학

순조 아들 효명세자의 입학식 ‘익종대왕입학도’ 그림으로 남아
 


해마다 3월이 되면 초·중·고교를 포함해 대학교까지 입학식 열기가 뜨겁게 넘쳐흐른다. 새로운 학교에 대한 기대감, 선생님, 교우 관계 등 모든 것에 대한 설렘도 다가온다. 조선시대 왕도 세자 신분인 왕세자 시절 입학식을 행했다. 동년의 친구는 하나도 없는 외로우면서도 존엄한 입학식이 거행된 장소는 조선시대 최고 대학교인 성균관이었다. 왕세자의 입학식은 성균관을 방문해 공자를 모신 대성전(大成殿)을 참배하고, 명륜당에서 성균관 박사에게 제자로서의 예를 행해 가르침을 받는 의식이었다.

입학례의 근거는 중국의 경전인 <예기>로, 여기에는 ‘왕세자의 입학례를 통해 사람들은 부자(父子)·군신(君臣)·장유(長幼)의 도리를 깨닫게 된다’고 적혀 있다.

조선 왕세자의 첫 입학식은 태종 때에 있었다. 태종은 성균관에 원자의 학당을 지을 터를 보게 하고 1403년(태종 3년) 4월 양녕대군의 입학식을 거행하게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원자가 입학했다. 학생복을 입고 문묘(文廟)에 참배해 작(爵)을 드리고, 박사에게 속수(束脩·제자가 스승에게 드리는 예물)의 예를 행했는데, 성균관 사성(司成) 설칭과 사예(司藝) 김조로 박사를 삼아서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스승에게 올린 예물은 속백(束帛) 한광주리, 술 한병, 포 한소반이었다.

왕세자의 입학 의식은 궁궐을 나와 성균관에 이르는 ‘출궁의(出宮儀)’, 성균관에 도착한 후 거행하는 일련의 의식인 ‘입학의(入學儀)’, 궁궐로 돌아간 후 문무 관리와 종친들의 축하를 받는 ‘수하의(受賀儀)’ 등 크게 3가지 의식으로 구성됐다. ‘입학의’는 다시 대성전에서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 등 성인의 신위에 술잔을 올리는 ‘작헌의(爵獻儀)’, 명륜당 문 밖에서 스승에게 수업을 청한 다음 문 안으로 들어오는 의식인 ‘왕복의(往儀)’, 스승에게 예물을 올리는 의식인 ‘수폐의(脩幣儀)’, 명륜당에 올라 스승에게 수업을 받는 의식인 입학의(入學儀)로 구분했다.

입학식이 끝나면 식후 행사가 뒤따랐다. 신하들은 왕에게 치사(致詞)를 올려 왕세자 입학을 축하했고, 왕은 입학식에 참석한 관리와 성균관 유생들을 궁중으로 불러 잔치를 베풀어 줬다. 입학례를 축하하는 경과(慶科) 별시가 시행되기도 했고, 전국에 사면령이 내려졌다.

왕세자가 입학하는 나이는 얼마쯤일까? 대개 입학식은 세자의 나이 8세에서 13세 전후에 거행됐다. 그러나 왕세자의 책봉이 늦어지거나, 세자 교체 등의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왕세자의 입학식은 늦은 나이에 거행되기도 했다. 광해군은 23세 때, 소현세자를 대신해 세자가 된 효종은 27세 때 입학식을 했다. 왕세자 입학식에서 가장 큰 쟁점은 왕세자가 책상을 사용하는 문제였다. 대개는 책상을 사용하지 않고 바닥에 교재를 놓고 교육을 받도록 했는데, 이것은 왕세자의 신분이라도 스승 앞에서는 최대한의 예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왕세자 입학식의 모습을 가장 자세히 전하는 것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1809~1830년, 사후 익종으로 추존)가 1817년(순조 17년) 3월11일에 행한 입학식이다. 효명세자가 9세 때 성균관 명륜당에서 거행한 입학식은 ‘익종대왕입학도(翼宗大王入學圖)’라는 기록화로 전해지고 있다. ‘익종대왕입학도’에는 왕세자의 출궁에서부터 왕세자가 문무백관의 하례를 받는 출궁도·작헌도·왕복도·수폐도·입학도·수하도의 여섯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순조실록>에는 “왕세자가 명륜당에 앉아 소학의 제사(題辭)를 강(講)하였는데…. 박사 남공철에게 묻기를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습니까?’ 하니, 박사가 일어서서 대답하기를 ‘저하(邸下)의 이 물으심은 참으로 종묘사직과 신민의 복입니다’”라고 기록, 당시 세자와 스승의 대화까지 자세히 전하고 있다.

조선의 왕세자는 다음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였기 때문에 그 위상을 높이는 각종 통과 의례가 있었다. 입학례 이외에 책봉(冊封)·관례(冠禮)·가례(嘉禮)는 꼭 통과해야 하는 의례였다. 왕세자는 이러한 의례를 거쳐 권위와 위엄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한편, 왕이 되기 위한 학습들을 철저하게 준비해 나갔다. 왕세자의 입학식은 한 사람을 위한 행사로서, 왕세자는 이러한 고독과 외로움을 뚫고 왕으로 올라가는 숙명적인 과정을 밟아나가야만 했다.
 



신병주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KBS <역사저널 그날> 진행 ▲KBS1 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 진행 중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저서 <조선의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의 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등 다수
원문보기
https://www.nongmin.com/nature/NAT/ETC/307514/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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