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 역사산책] 백성들에게 희망 불어넣던 모습 꼭 닮아... (4)‘토정비결’과 이...
글쓴이
tntv
등록일
[2019.04.01]
[신병주의 역사산책] 백성들에게 희망 불어넣던 모습 꼭 닮아
입력 : 2019-02-13 00:00
일러스트=이철원
신병주의 역사산책 (4)‘토정비결’과 이지함
이지함,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과거시험 포기 후 유랑하며 생활
관상 봐주며 백성들의 삶 보살펴
‘토정비결’, 주역 응용해 운수 풀이 글귀 간단명료·길흉 배합도 적절
이지함이 직접 쓴 책 아니지만 절망적일 땐 희망주는 내용 담겨
삶의 자취와 통하는 부분 있어
언제부터인가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보는 것이 대표적인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아주 오래된 전통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조선시대 새해 풍습을 기록한 문헌에는 이런 사실이 등장하지 않는다. ‘토정’이라는 호의 주인공이 조선시대 학자 이지함(李之菡·1517~1578년)임을 아는 사람은 이 책을 당연히 그의 작품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여러 연구에 의하면 <토정비결>은 이지함의 이름을 빌려서 저술된 책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여진다.
< 토정비결>이 이지함의 이름을 후대에서 빌려 썼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는 숙종 때 그의 현손 이정익(李楨翊)이 이지함의 유고를 모은 문집인 <토정유고>를 간행할 때 <토정비결>을 포함하지 않은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토정비결>이 이지함이 세상을 떠난 16세기가 아닌 300여년 지난 19세기 후반에 널리 퍼진 점도 가탁설(假託說·이름을 빌려 썼다는 설)을 뒷받침해준다.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조선 후기 풍속 전반이 기록돼 있는데, 새해 신수를 보는 점으로 오행점(五行占)이 언급됐다. 정조 때 유득공이 서울의 세시풍속을 적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도 새해 풍속 부분에 ‘윷을 던져 새해의 길흉을 점친다’는 기록이 있지만 <토정비결>에 대한 언급은 없다. <토정비결>이 조선시대에 유행했다면 위에서 언급한 책에 당연히 기록됐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토정비결>은 16세기를 살았던 이지함이 지은 게 아니라 후대의 누군가가 이지함의 명성을 빌려 쓴 책으로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 토정비결>은 주역의 이치를 응용해 한해의 운수를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하지만 <주역>의 기본 괘는 64개인 데 반해, <토정비결>에선 48개의 괘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괘는 사주(四柱) 가운데 시(時)를 뺀 연(年)·월(月)·일(日)을 사용해 짓는데 기본괘를 확장한다 해도 토정비결이 한결 간결하다. 토정비결에는 열두달의 운수를 총 6480개의 시구로 적었는데 ‘동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 ‘관재수가 있으니 혀끝을 조심하라’는 식이다. 간단명료한 글귀들이며, 길흉이 적절한 비율로 배합돼 있다.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주며,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다. 그런 점에서 <토정비결>은 운수를 판별하는 데 중점을 뒀다기 보다는 민중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저술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럼 왜 <토정비결>이 많은 학자들이나 기인(奇人) 중에서 하필 이지함의 이름을 빌린 것일까? 무엇보다 <토정비결>과 이지함의 연관 고리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지함은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생애의 대부분을 유랑으로 보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접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쳤다. 자급자족의 기반을 마련해주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걸인청(乞人廳)을 설치했다.
< 연려실기술>의 다음 기록은 그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밤에는 집 아래서 자고 낮에는 지붕 위에 올라가 거처하였다. 또 솥을 지고 다니기가 싫어 쇠로 관(鐵冠)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밥을 지어 먹고 씻어서 관으로 쓰고 다녔다. 팔도를 두루 유람하면서도 탈것을 빌리는 일이 없었다. 스스로 천한 사람의 일을 몸소 겪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노라고 여겼다.’
이지함은 때로는 사람들의 신수와 관상을 봐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했다. 점술이나 관상비기(觀象秘記)에 능했던 이러한 모습과 백성들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의 모습이 후대에도 각인되면서, <토정비결>을 쓴 사람이 이지함이라는 이름을 제목에 넣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지명도가 높은 사람의 이름을 내세우면 훨씬 관심이 커지는 것은 동서고금의 공통된 진리다. 새해를 맞아 <토정비결> 속에 담긴 이지함의 삶의 자취를 찾아볼 것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