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 솜뭉치에 싸인 날카로운 바늘

풍자는 부당한 권력이나 체제에 대한 우회적인 공격이며, 그렇기에 모든 방면에서 자유가 제약되었던 일제강점기에 작가들이 애용하던 창작 방법 중의 하나였다. 일제강점기 문학사에서 풍자 문학의 사례는 풍부한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최고의 작가로는 채만식을 꼽을 수 있다.

채만식은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농촌지주의 5남으로 태어났다. 중앙고보를 거쳐 1923년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지만, 집안의 몰락으로 곧 학업을 중단한다. 1924년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을 거쳐 동아일보사(1925), 개벽사(1929), 조선일보사(1934)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였다. 1924년 이광수의 추천을 받아 「세길로」(『조선문단』, 1924. 12.)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1930년대 초반까지는 소작 쟁의, 동맹파업을 다루거나 궁핍한 현실과 지주계급의 몰락상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이 시기에는 소위 동반자 작가로 불렸다. 30년대 중반부터 채만식은 생활세계의 실체적 진실을 다루는데 초점을 두게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창작방법론이 바로 그 유명한 풍자이다.

풍자는 웃음을 동반한 비판이다. 이것은 대상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비판정신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문학에서 자주 나타나는 웃음 중 하나인 해학과는 구별된다. 정면에서의 비판이 아니라 대상의 부정적인 면을 은근히 들추어냄으로써 큰 효과를 노리는 풍자는 기지, 조롱, 아이러니, 비꼼, 조소, 냉소 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흔하다. 채만식의 풍자는 이 중에서도 주로 아이러니를 동반하고는 한다. 그의 풍자는 부르주아, 민중, 지식인 등 사회의 모든 계층을 향해 있으며, 대개의 경우 아이러니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아이러니적 풍자라는 독특한 기법

일제강점기에 채만식의 아이러니적 풍자가 기법적으로 가장 우수하게 구현된 작품으로는 「치숙(痴叔)」(『동아일보』, 1938. 3. 7.~14.)과 「태평천하」(『조광』, 1938.1.~9.)를 들 수 있다. 「치숙」은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였다가 현재는 궁핍한 삶을 사는 지식인과 일제강점기의 현실에 무자각적으로 야합하여 일신의 안녕만을 도모하는 소년의 삶을 대비시킴으로써 일제강점기의 한 측면을 날카롭게 포착한 명작이다. 「치숙」은 일제가 한국인의 삶 전반을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는 시대적 배경을, 의식이나 습속이 완전히 일본인과 같이 되어 있는 주인공 소년을 통해 잘 드러낸다. 이 소년은 일본인을 향한 저항은 고사하고 약간의 이질감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가 사용하는 어휘 자체도 완전히 일본식이다. 또한 5년이나 옥살이를 한 아저씨를 통해 사회주의를 비롯한 독립운동 등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한 시대적 상황도 잘 드러나 있다. 바야흐로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일제의 폭압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1930년대 후반인 것이다.

이 작품은 일본인 가게 점원인 소년 주인공의 장황한 사설로 이루어져 있다. 소년이 화자로 등장하여 5촌 고모부인 아저씨에 대하여 독백하듯이, 계속해서 말을 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소년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아저씨에 대해 하나하나 일러바치는 모습이고, 이 때문에 아저씨에 대한 조롱이 보다 생동감 있게 전달된다. 소년은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사회주의자로 감옥 생활을 한 뒤 가난하게 사는 아저씨를 시종일관 조롱하고 비꼰다. 그러나 이 소년이 보여주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인하여 독자는 자연스럽게 아저씨를 비난하는 그 소년을 아저씨보다도 더욱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결국 풍자의 대상은 아저씨가 아니라 일본인 주인에게 길들여져 완벽한 일본인이 되고자 애쓰는 소년이 되는 것이다. 풍자의 주체가 결국 풍자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반어(irony)적 풍자라고 할 수 있다.

화자인 ‘나’는 어린애지만 거금 10만원을 모아 떵떵거리며 사는 꿈을 꾸고 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일하는 가게 주인인 일본인에게 잘 보여 한밑천 잡으려고 한다. 그것으로 환갑까지 열심히 자기 가게를 운영하려는 소년은 완전한 일본인이 되려고 힘쓴다. 결혼도 일본인과 하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고, 집도 옷도 밥도 다 일본식으로 바꿀 계획인 것이다. 이런 소년이 조선인 독자들에게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릴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하여 무지하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이 소년이 하는 말을 곰곰이 되씹으며 받아들이게 되고, 따라서 이 소년이 비판하는 사람과 그가 하는 일에 대해서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게 된다. 결국 소년이 아저씨를 향해 겨눈 칼끝은 그대로 자신을 향해 돌아오며, 여기서 바로 채만식 특유의 아이러니적 풍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적 풍자는 부정적인 인물이 소설의 전면에 등장하고, 긍정적인 인물은 뒤에 감추어짐으로써 증폭된다. 「치숙」과 거의 같은 시기에 쓰인 「태평천하」에서 긍정적인 인물인 종학은 한 번도 서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태평천하」는 윤직원 일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당대 사회의 문제점과 중산층의 비윤리적인 삶의 태도를 잘 드러낸 작품이다. 윤직원 영감은 일신의 안락만을 모든 가치의 우선으로 아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이다. “우리만 빼고 다 망해라.”라고 외치는 그에게 군대를 보내서 자신의 재산을 지켜주는 일본은 진심으로 고마운 존재이다.

윤직원 영감은 손자 종수와 종학을 군수와 경찰서장을 시켜, 자신의 부귀영화를 계속 누리고자 하는 바람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군수를 시키려던 종수는 패륜을 일삼고, 일본에 유학 간 윤직원의 유일한 희망 종학마저 사상 관계로 피검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윤직원은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만석꾼의 집자식이 부랑당패에 참여를 했느냐며 울부짖는다. 윤직원 영감의 이러한 부정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윤직원 영감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말할수록 종학을 비난하면 할수록, 독자들은 오히려 윤직원 영감을 부정하고 종학을 긍정하게 된다. 이외에도 식민지 시기 작품 중에서 채만식의 풍자적 기법이 사용된 작품으로는 「레디메이드 인생」(『신동아』, 1934. 5.~7.)을 들 수 있다. 「레디메이드 인생」의 주인공인 P는 지식인이지만 직업을 얻지 못하고 거리를 떠돈다. 아들만은 실직자로 만들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한 P는 아들이 시골에서 올라온 날 어느 인쇄소에 찾아가 아들을 무료 견습공으로 써달라고 부탁한다. P가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인쇄소 견습공으로 취직시키는 것은 자신의 처지, 특히 지식인의 처지에 대한 항의와 냉소를 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냉소주의 혹은 허무주의라는 위험성

채만식의 풍자는 기본적으로 풍자의 주체가 결국에는 풍자의 대상이 된다는 아이러니적 특징을 지닌다. 또 하나 주목할 것으로는 채만식의 풍자가 거의 모든 대상을 향한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그의 작품은 바늘에 찔린 살에서 베어 나온 핏자국으로 채워진다.

이를테면 「치숙」에서는 일본인이 되고자 하는 소년뿐만 아니라 아저씨 역시 웃음을 동반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소년의 말마따나 아저씨는 대학교육까지 받고도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사회운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존경스럽다. 그러나 소년의 말을 찬찬히 보면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특히 자기 아내와의 관계가 그러한데, 자기를 위해 헌신한 아내를 쫓아버리고는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다. 그러나 다시 자기 몸이 병들고 갈 곳이 없어지자 식모살이로 번 돈 100원으로 이제 좀 편하게 지내려던 아주머니에게 빌붙어 생존을 이어가는 것이다. 「치숙」과 같은 해에 발표된 「소망(少妄)」(『조광』, 1938. 10.)은 바로 그 아내의 시각을 간접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소망」에서 아내의 남편은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멀쩡히 다니던 신문사도 때려치우고 지금 집에만 머물고 있다. 그러다가 매우 무덥던 어느 날 겨울 양복을 온전히 차려입고 종로까지 나갔다가 돌아오는 일이 벌어진다. 이것을 보고 아내는 자신의 언니네 집에 찾아와 자신의 남편이 망령이 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이 작품의 ‘소망(少妄)’은 남편의 어이없는 행동의 표피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면, 말뜻 그대로 ‘젊어서 망령든 것’을 의미한다. 가정이나 사회를 향해 어떠한 책임 있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은 그야말로 풍자의 대상이 되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작품은 남편의 긍정성을 나름대로 인정하며, 그러한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아내를 포함)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의 ‘소망’은 ‘소망(所望)’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내는 형부가 의사로 돈을 잘 벌고 가족 건사 잘하는 것처럼, 남편도 하루빨리 정신 차리고 사회에 잘 적응하기를 바란다. 이에 반해 남편의 ‘소망(所望)’은 속물과 짐승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단절되어 자기만의 가치를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일제 말기라는 당대 상황을 고려할 때, 기존 체제에 적응하여 가정이나 건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타락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오히려 그 체제로부터 거리를 두고 광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참된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그러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남편의 ‘소망 (所望)’을 결코 ‘소망(少妄)’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 설 때, 「소망」에서 풍자의 주체였던 아내는 어느새 풍자의 대상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처럼 채만식의 풍자소설에서 솜뭉치에 싸인 날카로운 바늘은 거의 모든 방향을 향한다. 「치숙」에서 풍자의 칼끝은 소년과 아저씨를, 「소망」에서는 남편과 아내를 모두 향해 있는 것이다. 모든 대상이 풍자의 칼끝에 놓이는 상황에서, 풍자를 불러온 모순된 현실을 뛰어 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은 보존되기 어렵다. 평생을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 49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한 채만식의 풍자 속에 감춰진 냉소와 허무는 어쩌면 식민지와 전쟁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우리 민족의 아픔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글. 이경재(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