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나태주 등 시인 36명, 반구대 암각화 발견 48주년 기념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원 '畵詩展'… 그림 주제로 써 보낸 육필 시 전시
올해 92세의 김남조 시인이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를 보고 붓을 들었다. 김남조 시인을 비롯해 나태주·신달자·정호승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6명의 시인이 반구대 암각화를 주제로 육필 시를 보내왔다. 울산 반구대포럼은 암각화 발견 48주년을 맞아 서울 가회동 갤러리 한옥에서 13일까지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원 원로·중견 시인 화시전(畵詩展)'을 연다.
7일 열린 개막식에는 김형영·김후란·서정춘·윤후명·이건청·이근배·정희성·최동호·최문자·허영자 등 시인들이 하나 둘 모였다. 2년 전쯤 이들은 암각화에 새겨진 그림을 하나씩 나눠 받았다. 고래나 호랑이·사슴부터 뜻을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도형까지 각자 받은 그림을 보고 화선지에 시를 써 내려갔다. 시에 그림을 입힌 '시화전'이 아니라 그림을 보고 시를 써 '화시전'이라 이름 붙였다. 전시를 기획한 이건청 시인은 "한국의 대표 시인들이 5000~6000년 전 선사인들이 새긴 그림을 오늘날의 감각으로 불러냈다"면서 "시인들이 붓으로 직접 쓴 시 한 점 한 점이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라고 했다.
암각화에 새겨진 300여 점 그림은 수렵이나 어로 활동 등 선사 시대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고래나 사슴 같은 동물 그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호랑이는 "어흥, 무서운 호랑이 아니고/ 야 이놈들아 나하고 놀자"(나태주)고 말을 걸고,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보이는 뿔사슴은 "호랑이와 고래가 더불어 사는 이상한 세상으로"(최동호) 초대한다.
허영자 시인은 어미와 새끼 고래 그림을 보고 '새끼를 등에 업은/ 고래나 /애기를 등에 업은/ 사람이나/ 엄마 마음은 매한가지'라고 썼다. 허 시인은 "우리는 선사시대 사람을 흔히 '야만'이라고 생각하는데 암각화를 보니 큰 착각이었다"고 했다.
시인들은 반구대 암각화의 생명력에 찬사를 보냈다. 김후란 시인은 "우리나라에 자랑스러운 국보가 많지만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시인들의 마음은 각별하다"면서 "몇천년 전 이 땅에 살았던 민족이 예술적 감각과 정성으로 삶을 새겨넣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했다.
이근배 시인은 "암각화가 선사시대의 신전, 조상들의 제단이라 생각하고 시를 썼다"고 했다. 윤후명 시인은 자신의 시에 들어갈 얼굴 그림을 직접 그렸다.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하여/ 얼굴을 비춰보는 이 바위에/ 그려진 모습이여/ 바위 깊이 새겨진 내 삶이여."(바위 위의 얼굴―반구대 암각화를 위하여) 반구대 암각화는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상태다. 이 달희 반구대포럼 대표는 "반구대 암각화는 다른 암각화에 비해 그려진 고래 종류가 다양하고 고래 사냥 모습이 역동적으로 그려져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한 큰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시인들은 자주 물에 잠겨 훼손이 심각한 암각화의 보존 상태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최동호 시인은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보존하기 위해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