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회 존재의 이유

예로부터 문화는 종교와 함께 꽃을 피웠다. 유럽문화를 논할 때 그리스도교를 빼놓을 수 없듯, 우리나라에서도 불교문화는 종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특정 종교이기 이전에 그 시대가 낳은 사상이자 문화예술인 것이 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에도 불교예술이 많다. 석굴암이나 팔만대장경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잘 보존하고 계승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교예술은 그 전통 기법의 명맥이 끊어진 경우가 많다. 원인은 일제 강점기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점령했을 당시 수많은 문화재를 빼앗아가거나, 명맥을 이어가지 못하도록 기록을 말살했다. 이제와 보니, 우리 것인 줄 알았던 수많은 전통들이 사실은 일본의 것이거나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대로 둘 순 없었다. 진짜 우리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일제강점기 이전의 뿌리를 되찾으려는 노력, 그러한 마음들이 모여 지금의 ‘나우회(懶牛會)’가 만들어졌다.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소장 석문스님) 산하에 있는 나우회는 모두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하는 15명의 작가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나무·돌·흙 조각, 단청, 진영(眞影), 불화, 도금, 옻칠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있죠.(나우회 회장 한봉석)” 나태한 소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나우회. 그들은 가치 있는 문화재를 재현하고 재현 작품을 전시한다. 그 과정에 현대적인 기법이나 재료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어떠한 요행도 타협도 없이 옛 방식 그대로, 옛 선조들의 숨결까지 재현하는 것, 이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다.

조상의 마음과 정신을 헤아리는 일

그들의 작업방식을 들여다보면 정말 미련하지 싶다. 좋은 원료, 도구들이 많은데도 굳이 옛것을 고수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대량의 화학 안료들이 수입되었어요. 100년 이상 그 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전통의 맥이 끊겨버렸죠. 그래도 나우회 활동을 통해 일제 강점기 이전의 안료를 직접 사용하고 느껴볼 수 있었어요. 재현 작업을 할수록 과연 내가 장인일까 하는 생각이 들죠. 절로 겸손해집니다.(문화재 단청기술자 주광관)” 옛 선조들은 벽면에 칠 공사를 함으로써 목조 건축물을 비바람과 병충해로부터 보호했다. 검은색인 먹은 소나무 송진을 태운 그을음에서, 초록색은 초록암석 가루에서, 백색은 조개껍질에서 얻었다. 자연에서 색을 얻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붓에 묻혀 그림을 그리고, 천장에까지 단단히 접착시켰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 가능하게 한 선조들의 지혜와 근성이 놀랍기만 하다. “석공예도 놀랍긴 마찬가지예요. 산에 석재를 채취하러 가면 선조들이 돌을 깨려던 흔적을 발견하곤 하죠. 그러한 흔적들과 마주할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됩니다.(석공예 명인 박연규)” 중 장비가 없던 과거에는 작은 참나무로 큰 돌을 쪼갰다. 채취하고자 하는 돌에 구멍을 뚫어 참나무를 박은 뒤 구멍에 물을 붓는 방식이었다. 물을 머금고 팽창한 참나무는 시간이 흐르면서 바윗돌을 쪼개어 냈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 우리의 선조들. 나우회가 재현하려는 것은 바로 그 정신이다. 끊임없이 인내하며 한길을 걸어온 우직함과 근성을 나우회는 존경한다.

문화재만큼은 전통 방식 그대로

조각의 노정용 작가는 다양한 재료를 다루지만, 주로 흙 작품을 재현하거나 보수한다. 작품을 위해서는 항상 많은 양의 흙이 필요하지만 노 작가는 재료를 사서 쓴 적이 없다. 작품이 만들어진 지역, 그 자리에서 흙을 채취하는 것이 ‘그’만의 작업 방식이다. “당시의 작가들은 멀리서 흙을 가져오지 못했을 거예요. 작품을 할 때면 그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려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조각가 노정용)” 흙은 누가 어떤 것을 쓰느냐에 따라 입자도 색도 달라진다. 보수를 위해 발라진 흙을 벗겨내 보면 자신이 몇 번째로 작품을 보수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제대로 보수하지 않고 내부를 부직포나 손수건으로 대충 채우고 겉만 흙으로 마감해 놓은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내부는 온통 쥐와 해충의 온상이 되고 만다. 도금이나 옻칠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옛 선조들은 모질을 보호하기 위해 옻칠과 도금으로 겉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현대 기법이 많이 유입되면서 현대도료를 쓰거나 전기로 도금해 문화재를 보수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보수가 아니라 오히려 문화재를 망가뜨리는 격이다. “문화재만큼은 옛 방식 그대로 보수했으면 좋겠어요. 일제강점기부터 수리해온 칠들은 다 벗겨져도 선조들의 옻칠만큼은 칼로 벗겨내도 떼어지지 않아요. 내부의 모질과 한 몸이 되어있어 안이 상하지 않죠. (도금, 옻칠, 화공 명인 오세종)” 오세종 작가는 처음 옻을 다뤘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옻독이 올라 손이 풍선처럼 부풀고, 가려워 긁으면 진물이 났다. 그럼에도 그는 옻칠과 수은 도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문화재가 그렇게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공덕을 쌓는 불모(佛母)의 삶

그들이 이렇게까지 고집스럽게 구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우리 문화재의 위대함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는 것, 그것뿐이다. 도처에 퍼져있어 가져올 수도, 보기도 어려우니 대신 재현해 전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국내 작품을 재현하다가 2014년부터 해외 문화재까지 범위를 넓혔다. 그 과정에도 요행은 없다. 직접 가서 눈으로 보는 것이 먼저다.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우수한 작품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그 위대함을 먼저 눈으로 접한다. 그 후 전시할 작품을 선점하면 그때부터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다. 관련자료는 나우회 창립을 제안한 장본인이자 불교미술사 연구자인 최선일 박사가 제공한다. 전시기획은 동북아 불교미술연구소의 최선숙 사무국장이, 도록제작은 옥천사 성보박물관 홍은미 학예실장이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을 보탠다. 어떠한 지원 없이 거의 사비로 준비하지만, 그 뜻을 흐린 적은 없다. 개인적 이익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기에 나우회의 활동은 존립 그 자체로 가치 있다. “10월에 ‘오쿠라 콜렉션과 불교미술’이라는 주제로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재현전을 열어요. 지금은 그 작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나우회 회장 한봉석)” 오쿠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는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 문화재를 무려 1,856점이나 도굴하고 수집했다. 그러나 일본은 민간소장물이라는 이유로 한국의 환수 요구를 거부했다. 나우회 작가들의 유출 작품 재현과 전시는 무모해 보일 수 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전시한다고 해서 유출된 문화재가 쉽사리 돌아올 리도 만무하다. 다만 그들의 손끝에서 재현된 문화재를 주인인 우리가 감상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애초부터 원대한 꿈이나 목적이 아닌, 그저 부처님의 형상으로 마음을 수행한 것이니 말이다. 시대의 간절한 염원이자, 불도의 마음을 형상화 하는 나우회 작가들. 수백 번 재료를 빚고 깎으며 그 마음들을 헤아렸으니, 지금 그들은 온당히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하는 불모(佛母)라 불려 마땅하다.

글. 이혜민 사진. 이민희
출처:월간 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