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기증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쓴 기업가

문화재 기증은 기증자의 열정적인 수집 노력을 바탕으로, 나라와 사회를 위한 헌신적인 기부 정신이 더해져 실현된다. 구미의 선진국에 비해 기증문화가 좀처럼 활성화되지 않는 한국의 실정에 비추어 볼 때, 문화재 기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2004년 평생 수집한 1,512점의 문화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홍산(鴻山) 김홍기(金鴻基, 1921~1992) 선생의 후의는 매우 특별하다.

선생은 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 한국전쟁 시에 월남한 뒤, 건축자재와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다수의 기업을 창업하여 운영한 기업인이었다. 화인인더스트리(주)와 정익기업(주) 등을 설립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선생은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재산은 일정 규모 이상이면 사유재산이 아니므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평소 신념에 따라, 우리 문화재의 수집과 박물관 설립, 기초과학 분야 인재 양성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선생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집한 문화재는 우리 문화재 중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토기류였다. 이렇게 수집한 1,004점의 토기를 포함하여 모두 1,512점의 소장품 전체를 국립중앙박물관에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함으로써, 선생은 문화재 기증문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기증 문화재 중 1,004점의 토기류는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토기 제작의 흐름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체계적인 수집품이어서, 우리 민족의 토기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컬렉션이다. 특히 삼국시대의 토기는 당시 유행했던 다양한 기종과 기형을 망라하고 있다. 또한, 고려 및 조선시대의 도자기 150점, 조선시대 주요 문인의 간찰류 등 38점, 조선시대 후기 서화류 40점과 문집 목판 97점, 신라 금동관 등 금속품 148점, 기타 35점의 문화재는 모두 선생의 높은 감식안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자료들이다. 특히 신라 금동관은 사슴뿔 모양 장식을 갖춘 대관(帶冠)으로 신라 고고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김홍기 선생이 남긴 기부와 나눔의 소중한 유산

김홍기 선생은 기업 이윤을 환원하는 차원에서 소장품을 시민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홍산박물관의 설립을 직접 지휘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홍산박물관은 토기 전문 박물관으로 1992년 8월 설립 당시 문화부 등록 제1호 사립박물관이었고, 1999년 5월 문을 닫을 때까지 박물관 전시, 연구, 교육 분야에서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선생은 장학 재단을 설립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자산 규모 100억 원대로 1992년 7월 31일 설립된 재단법인 홍산장학재단은 오늘날까지 기초과학 분야의 우수한 학생과 연구자에게 학자금과 연구비를 지원하여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김홍기 선생의 수집문화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및 연구 자료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토기 분야 연구 활성화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을 결행한, 선생의 부인 엄순녀 여사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수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혀, 문화재 기증문화의 확산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선생은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차원에서 평소 우리 문화재의 수집에 열과 성을 다하였으며, 신라 금동관과 토기류 등 수집 문화재 전체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문화재 기증문화 활성화와 용산 새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연구자료 확보에 크게기여했다. 여기 다시 한 번 고 김홍기 선생과 엄순녀 여사의 깊은 뜻을 마음에 새기는 것은 기부와 나눔의 소중한 가치를 오늘에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장상훈(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 일러스트. AM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