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종의 역사가 만든 독특한 문화

실제 스페인은 유럽에 속하긴 하지만 지정학적 측면에서 볼 때 남북축으로는 유럽 문화와 아프리카 문화, 동서축으로는 지중해 문화와 대서양 문화가 만나는 문명의 십자로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상이한 문화의 맛과 멋을 지니고 있다. 페니키아와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등 고대 지중해 세계의 모든 패권자들은 예외 없이 이베리아 반도에 자신들의 흔적을 깊게 남겼고 이슬람 세력 역시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 땅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로마의 뒤를 이어 스페인의 주인이 되었던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여 1492년 마지막 이슬람 국가였던 그라나다 왕국이 가톨릭 양왕(Los reyes catolic s)에게 항복할 때까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이와 같은 혼종의 역사는 이슬람 건축 문화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 가톨릭 대국인 스페인을 방문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코르도바는 800여 년간 스페인 영토의 절반을 장악하였던 이슬람 세력의 중심지였다.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린 우마이아 왕조의 아브드 알라흐만은 이슬람 세계 최고 신분인 무함마드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코르도바를 수도로 하는 ‘에미리트’를 건설하여 다마스쿠스의 칼리프에 맞서면서 756년에 알 안달루스 왕국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이후 국력이 크게 신장된 알 안달루스 왕국은 스스로를 칼리파트로 승격시켜 코르도바 칼리프 왕조(929~1031)를 열면서 문화적 융성의 최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이 당시 코르도바는 50만의 인구가 거주하는 거대 도시였으며 콘스탄티노플과 함께 유럽 양대 도시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는 코르도바를 스페인 도시들 중 가장 흥미 있는 도시로 만드는 근원적 배경이다. 가톨릭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절묘하게 융합되어 단적으로 묘사 하기 힘든 문화적 아우라가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코르도바이다.

인간과 꽃, 그리고 정원이 함께 주인공인 축제

스페인 사람들의 봄맞이는 열정적인 라틴 민족답게 요란하다. 3월 중순 발렌시아에서는 일 년 동안 정성스레 만든 인형을 불태우며 환호하는 파야스 축제(Las fallas)가 열리고 곧이어 4월에는 안달루시아주의 주도인 세비야에서 봄 그 자체를 최대한 만끽하는 화려한 4월 축제(Feria de abril)가 개막하여 도시 전체를 플라멩코 선율로 뒤덮는다. 그리고 5월. 이제 스페인 사람들의 시선은 세비야에서 두 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고도 코르도바로 향한다. 그리고 코르도바는 봄의 선물인 꽃들이 아름답게 수놓아진 안뜰 정원으로 시선을 인도한다. 매년 5월 초부터 12일간 개최되는 코르도바의 파티오 축제(Fiesta de los patios de Cord ba)는 인간과 꽃, 그리고 정원이 함께 주인공인 축제이다. 또한 코르도바가 지니고 있는 혼종적인 역사문화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공간이기도 하다.

파티오(Patio)는 안뜰 혹은 마당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베리아 반도가 로마 제국으로 편입된 이후 이 베리아 반도는 급격히 로마화되면서 로마 문화가 깊이 뿌리를 내렸다. 이 중 하나가 로마 건축양식인데 로마인들은 가옥 내부에 외부로 열려진 공간인 아트리움(atrium)을 배치하여 가족과 친지, 지인들이 어울릴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이것이 바로 파티오의 원형이다. 로마인들은 이곳을 식물들과 작은 분수 등으로 꾸며 가옥 내부에서도 자연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코르도바에 건설된 가옥들 역시 아트리움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군다나 코르도바는 일교차가 큰 지역이었기에 아트리움에 조성한 정원을 더욱 세심히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여름에 외부 기온이 40도에 이르는 코르도바에서 가옥 내부에 위치한 정원은 외부보다 10도 정도 기온을 낮춰주는 천연 에어 컨 역할을 하였다.

이후 스페인을 차지한 이슬람 세력은 로마가 남겨놓은 건축 양식을 더욱 발전시켜 로마와는 다른 내부 공간 및 기족 구성원의 휴식 장소로써의 파티오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슬람인들은 파티오를 조용한 휴식의 장소로써만 이용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파티오에 사회적 요소들을 적극 도입하여 이웃, 지인들과 어울리면서 친목을 다지는 사회성 창조 및 강화의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이슬람인들은 발달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파티오에 물을 끌어오고 식물과 함께 꽃을 가꾸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파티오에 고즈넉함과 평온함을 더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방식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는데 로마 건축양식인 아트리움에서 유래한 파티오는 이슬람의 실내 건축양식을 통해 더욱 발전된 형태의 가옥 내부 정원 형식으로 진화하면서 로마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된 혼종의 문화형태로써 현대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 없이 계승되어 온 것이다.

오늘날 파티오 축제는 경연대회 형식으로 열린다. 일반적으로 50개 정도의 파티오들이 코르도바 시청으로부터 경연대회 참가 자격을 받게 되는데 경연은 고택 부문(arquitectura antigua)과 현대 및 개조 주택(arquitectura moderna o renovada)으로 나눠 실시된다. 이는 코르도바시가 전통 유지를 중요시함과 동시에 현대적 미적 가치 또한 소홀하게 보지않음으로써 파티오 축제에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균형 잡힌 미학적 시각을 던져주고 있다.

축제 기간 동안 경연대회에 참가한 주택들은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특히 파티오 축제의 백미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코르도바 역사지구이다. 만개한 제라늄 꽃들이 수놓은 안달루시아 특유의 흰색 집들 사이를 걷는 것은 봄의 절정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작은 사치일 것이다. 그리고 PATIO라는 글자를 붙인 경연대회 참가 주택에 들어가 정성스레 집주인이 가꾼 정원을 감상하면서 정원과 꽃에 대해 집주인과 나누는 담소는 각박한 현대의 삶에서 삶의 여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여기에 무료로 대접하는 와인과 타파스(Tapas)를 음미하는 재미 또한 쏠쏠할 것이다.

개방과 공유 그리고 참여의 정신이 담긴 축제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San Ferm n), 불타는 로마를 연상시키는 파야스 축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핫한 축제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부뇰의 라 토마티나(La tomatina)와 비교할 때 코르도바의 파티오 축제는 상대적으로 정적이다. 하지만 이 고요함은 지루함이 아니라 2천년 넘게 코르도바를 지켜 온 사람들이 역사의 시간 속에서 발현시켜 온 삶의 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공간인 파티오를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그 공간을 찾아 온 손님들과 정담을 나누는 집주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파티오 축제의 기저에 깔려 있는 개방과 공유 그리고 참여의 정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안달루시아 출신으로 스페인 현대사 최대의 비극인 스페인 내전의 희생양이 되었던 시인이자 극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에게 있어 코르도바는 ‘멀고도 외로운’, 그리고 ‘비록 길은 알아도 닿지 못하는’ 슬픈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코르도바는 비록 멀지만 친근하고, 시끌벅적 말하기 좋아하는 안달루시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비록 당장 가는 길은 모르지만 구글 맵을 통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글. 정동희(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