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최태희(오른쪽) 인천공항 문화재감정관실장이 모니터를 통해 김포공항의 미술품을 감정하고 있다. psh59@yna.co.kr
지난 22일 인천공항 3층 문화재감정관실에서 최태희 실장이 모니터를 통해 김봉준 김포공항 감정위원이 문의한 미술품을 바라보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하려던 여행객이 문화재감정관실에 들러 감정을 맡긴 미술품의 반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두 감정위원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이 물품에 대해 "반출해도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화재청은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을 비롯해 김해공항, 부산항, 인천항 등 국내 공항과 항만 18곳에서 문화재감정관실을 운영하고 있다.
인천공항과 인천국제우편물류센터에서는 감정위원 9명이 교대로 근무한다. 쉬는 날 없이 수시로 비행기가 이륙하는 인천공항의 특성상 문화재감정관실도 연중 24시간 열려 있다.
이들은 한 해 평균 600회 정도 물품을 감정하는데, 지난해는 6천207점을 조사해 2점을 문화재로 판명했다.
최 실장은 "문화재로 오인받을 수 있는 각종 미술품이 감정 대상"이라며 "50년이 경과된 미술품 중에 학술적, 예술적,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국외 반출을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공항과 항만에 감정관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문화재 반출 억제 효과가 생기는 것 같아요. 소방서를 보면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는 것과 비슷하죠. 현재 운영되는 감정관실 중 한 곳만 폐쇄돼도 문화재를 빼돌리려는 사람들이 금세 알아차려서 그쪽으로 움직일 겁니다."
문화재보호법에는 국보, 보물, 천연기념물 또는 중요민속문화재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일반동산문화재에 대해 "국외로 수출하거나 반출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인천공항 문화재감정관실에서 근무하는 박도화 감정위원은 "한국은 기본적으로 근현대에 많은 문화재가 빠져나간 문화재 피해국"이라고 지적하고 "가치가 있는 문화재의 유출을 막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위원은 "사람들이 어디까지가 문화재인지 혼란스러워하면서 기준을 알려 달라고 할 때가 많다"며 "문화재는 공장에서 찍은 대량생산품이 아닌 유일품이어서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문화재청 감정관실에서 반출 불가 통보를 받는 물품은 평균적으로 1년에 30∼50점으로, 그중 절반 이상이 도자기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반출 허가가 나지 않은 문화재가 각각 388건, 184건, 303건이었는데, 이때는 동전이나 책을 무더기로 갖고 나가려다 적발된 경우가 있었다.
최 실장은 문화재의 기준이 되는 시점을 50년에서 100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50년전 미술품이라고 해서 모두 반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한 뒤 "100년으로 시점을 옮기면 1930년대와 1940년대 제작된 물품과 등록문화재도 유출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최근에는 온라인에 해외 반출을 원하는 물건의 사진과 정보를 올리면 미리 감정을 받을 수 있는 사전예약 감정제도가 생겨 여행객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됐다.
문화재감정위원은 문화재 유출을 막는 파수꾼으로서 자부심이 크지만, 전국 55명 가운데 30명이 비상근위원일 정도로 처우가 좋지 않은 편이다.
인천공항의 한 감정위원은 "감정위원들이 대부분 박사급 학력을 갖고 있지만 비상근위원에게는 아무런 책임과 권한이 없다"면서 "감정위원의 신분이 보장되는 쪽으로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