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과 제39호 처용무보유자인 김천흥은 평생 해금과 더불어 살았다. 목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평범하게 자란 김천흥 보유자. 운명의 길이 시작된 것은 1922년, 균명(均明)학교를 졸업하던 그해였다. 길을 지나던 그의 눈에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 2기생을 모집한다는 방문(榜文)이 들어온 것이다. 그의 나이 14세 때의 일이다.

당시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는 5년에 한 번씩 아악생을 모집했고 2기생으로 선발된 18명에 김천흥 보유자가 포함됐다. 처음 그가 배우기 시작한 것은 해금이었고, 이후 아쟁과 양금까지 익혔다. 양성소 5년 과정을 이수한 뒤 1932년부터 이왕직아악부 아악수장을 맡아 여러 궁중행사의 악사로 활약했다.

1940년 이왕직아악부에서 나온 그는 민간음악인들과 함께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가곡명창으로 조선 권번을 운영했던 하규일(河圭一)과 인연을 맺으면서, 잠시 권번(券番)과 무악계 악인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당시 하규일에게 12잡가를, 명고수이자 무용가인 한성준(韓成俊)에게 전통무용을 배웠다. 이후 한성준이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열자 그곳에서 민속춤을 배우며 본격적으로 무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궁중무와 민속무에 기초한 기녀들의 춤을 접한 것은 그가 이후 무용의 길을 걷는 데 밑거름이 됐다.

1943년 김천흥 보유자는 조선음악가협회의 조선악부회원으로 해금 공연을 활발히 펼쳤으며 춤과 해금을 전수하는 데 힘썼다.

1958년 김천흥 보유자는 한국가면극보존회 상임위원을 맡으며 탈춤연구를 시작했다. 이 활동으로 인해 전국 각지의 민속예술과 이북5도의 놀이와 가면극들이 발전, 전승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1955년 김천흥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1975년까지 7회의 개인무용발표공연을 갖게 되는데, 특히 처용설화를 극화한 <처용랑>과 대금에 얽힌 전설을 극화한 <만파식적>으로 서울시문화상과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제자 양성에도 힘써 윤찬구(尹贊求, 국립국악원 해금 전수자), 강사준(姜思俊, 서울음대 국악과 교수), 조운조(趙運朝, 이화여대 음대 교수), 조주영(趙周榮, 단국대 교수) 등 수백 명의 걸출한 예인을 배출했다.

1956년 이화여자대학교 체육과에서 강의한 것을 시작으로 전통음악과 춤을 지도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고, 활발한 해외공연을 통해 한국 전통예술의 진수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몫을 했다.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예술단을 창단해 중요무형문화재(2016년 국가무형문화재로 명칭 변경)의 전수와 보존을 위해 주력했다.

2002년 김천흥 보유자는 자신의 무악인생 80주년을 기념해 <정재무도홀기 창사보>를 발간, 궁중정재의 전승과 연구에 있어 또 한 번 큰 족적을 남긴다. ‘창사’는 궁중무용을 출 때 무용수가 그날의 춤의 내용을 설명하는 노래로, <정재무도홀기 창사보> 창사 38종을 모아 한자로 된 것을 한글로 풀이하고 정간보와 오선보로 정리한 것이다. 몸으로 계승해 온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기 위함이었다.

김천흥 보유자는 백수를 바라보는 고령에도 국립국악원에서 매일 후배들을 지도하다 2007년 99세로 타계했다.

글‧백수지

출처;월간 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