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초기 청자와 백자의 명문 - 조선 태조와 연관

전남 강진과 더불어 전북 부안은 고려청자의 중요 생산지이다. 도요지 발굴조사로 부안 유천리 가마의 경우 1m 가까운 대형청자가 제작됨이 확인되기도 했다. 바로 유천리 요지에서 수습된 <청자상감매병> 편 가운데 안쪽 바닥에 ‘조청(照淸)’, ‘효문(孝文)’, ‘의장(義藏)’ 등 음각으로 새긴 명문들이 보인다. 성(姓)은 없지만 일견 승려 이름 같기도 하여 단정하긴 힘드나 학계에선 이를 만든 도공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이에 앞서 한 때는 백자인가 청자인가 의견이 분분했던 보물 제237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靑磁淳化四年銘壺)>는 고려청자 탄생시기 문제에도 시사점이 크다. 이 항아리 굽바닥 면에 새겨진, 앞에 제시한 18자 음각 명문은 여러 사실을 알려준다. 이를 통해 제작연대(성종12년, 993년)와 용도 및 이를 만든 사람의 이름까지 확인된다.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용흥리에 위치한 태묘(太廟)는 『고려사』에 고려 성종 8년(989년) 4월 15일에 착공해 성종 11년(992) 12월 1일 완공한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이 항아리는 태묘가 준공 그 이듬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적 제128호인 경기도 양주(楊州) 회암사지(檜巖寺址) 발굴은 여러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곳에서 발굴된 지명과 인명이 결합된 형식의 ‘목천서만(木川徐万)’이라고 하는 명문이 동체부에 크게 백상감된 <분청사기향완>이 주목된다. 호림박물관 소장품 중에도 지명과 인명을 함께 병기한 ‘월노동□김송김하향(月老洞□金松金河享)’ 명이 구연부에 백토로 상감된 또 다른 <분청사기향완>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들 두 향완에 등장한 사람이름은 장인 아닌 시주자의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1989년 6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가 황해남도 봉촌 원산리 요지를 발굴했는데 당시 ‘순화3년’ 명문이 있는 2점의 용기를 출토하였다. 이들의 글씨체나 쓴 형식이 같고 동반 유물로 <순화 4년명 항아리>와 유사한 자기편들이 나와 동일 가마에서 구웠거나 부근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 태조의 발원문이 있는, 보물 제1925호로 지정된 일괄유물 속에 포함된 고려백자(高麗白磁)를 꼽게 된다. 1932년 10월 6일 강원도 금강산 월출봉에서 산불방지를 위한 공간을 넓히는 공사 중 돌로 된 상자가 출토되었다. 그 안에서 은제도금라마탑형과 팔각당형사리기, 백자향로와 백자사발, 청동사발, 은제수저 등사리장엄구 일괄이 담겨있었다. 이 중 백자 사발 중 하나에 “신미년(1391년 4월) 방산 사기장 심룡(沈龍)이 그릇을 만들고 승려 신관이 함께 발원한다”는 명문 이 있다. 이를 통해 제작 시기와 장소 및 제작자를 모두 알 수 있어 적어도 고려시대 두 명의 도공 이름을 살필 수 있었다.

다양한 분청사기 명문 - 제작 장소와 장인 이름

‘공조에서 계하기를, “진상하는 그릇은 대개 마음을 써서 튼튼하게 제조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오래 가지않아서 파손되니, 지금부터는 그릇 밑바닥에 만든 장인의 이름을 써 넣어 후일의 참고로 삼고, 마음을 써서 만들지 않은 자에게는 그 그릇을 물어넣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 권11 세종3년(1421) 4월 16일 戊申 5번째 기사

분청사기는 상대적으로 청자나 백자에 비해 명문이 새겨진 예들이 많다. 이들 도자기가 사용된 관청 명칭이나 도자기를 빚은 지명 등이 주류를 이루며 장인 이름들도 등장한다. 분청사기에 명시된 이들 장인 이름과 장소의 기입은 현물조세의 일종으로 국가에 공납하였던 분청사기의 품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국가기관의 노력의 일환을 알려준다.

1980년대 들어와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진 광주광역시 충효동 가마터에서는 ‘금산(金山)’, ‘전봉(田奉)’, ‘박덕지(朴德只)’, ‘김화중(金禾中)’, ‘박김일(朴金一)’,‘덕생(德生)’, ‘민생(閑生)’, ‘영수(永守)’, ‘양금(良金)’, ‘덕금(德金)’, ‘왕금(往金)’, ‘함금(咸金)’, ‘박문(朴文)’, ‘박주(朴主)’, ‘이정(李井)’, ‘이만(李万)’, ‘만박(万朴)’, ‘김금(金金)’, ‘김수(金水)’, ‘김주(金朱)’, ‘○용(龍)’, ‘김(金)○’, ‘덕(德)○’, ‘이(李)’, ‘서(徐)’, ‘윤(尹)’, ‘박(朴)’, ‘최(崔)’, ‘정(鄭)’ 등 장인 명 등 각 성씨가 새겨진 도편이 상당히 많이 출토되었다.

울산광역시 고지평 유적에선 ‘최상좌(崔上左)’, 경기도 광주 도수리 가마터에서는 ‘성(聖)’, ‘민(閔)’, 충남 공주시 중흥리 가마터에서는 ‘김(金)’, 전북 완주군 화심리 유적에서는 ‘막생(莫生)’, ‘막삼(莫三)’, ‘위강(委)’ 등의 장인 명 관련 명문이 새겨진 도편들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장인 이름으로 추정되는 분청사기 명문은 청자의 예와 마찬가지로 그릇의 굽 내저면에 음각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백자 - 청화, 철화로 그린 그림과 제시

조선시대 백자의 표면을 장식한 무늬는 중국이나 일본의 장식적인 무늬 성격에 비해 회화성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서화의 보완자료로 이들이 지니는 의미 또한 적지 않다. 동국대박물관의 국보 제176호 <백자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1489년)나 이화여대 박물관의 보물 제644호 <백자 청화송죽인물문 항아리>(16세기)가 보여주듯 그림의 전래가 드문 임진왜란 이전인 15-16세기 백자문양은 동시대 회화사 이해에 큰 기여를 하는데, 조선중기 사림에서 새롭게 등단한 신진사대부의 미감을 잘 반영한다. 조선 묵매(墨梅)와 묵죽(墨竹)의 정형이 이루어진 시기의 백자문양 또한 이를 반영한다. 일급 자기들의 표면 그림은 그림을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도화사에서 파견된 일급화가들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보물 제1060호 <백자 철화끈무늬 병> 저부에는 철화로 쓴 한글인 ‘니가히’가 있으니 이는 사용자 이름으로 봄이 일반적이다. 서울 청진동 출토 백자편에서도 ‘가히’를 살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새로운 소장품으로 근자에 등재된 조선 18세기 철화로 그린 <백자철화용문 항아리>는 출토품 매장문화재로 큰 항아리안에 일괄 유물이 들어있다. 큰 항아리를 비롯해 판독은 힘드나 그릇마다 같은 수결이 있어 주목되나 자기장이 아닌 화원 것으로 보인다.

신라 의상(義湘) 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의 하나로 부산의 대표적인 사찰인 범어사 보제루지에서 출토된 백자 굽에는 철화로 쓴 ‘화주(化主)’ 외에 음각의 ‘수(水)’, ‘토(土)’ 등도 보인다. 마찬가지로 조선말 19세기 천주교신자들은 깊은 산속에서 숨어 살며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했으니 이들이 빚은 옹기 항아리에 십자문양을 나타냈고, 원형 묘지명에는 세례명(洗禮名) 등 그들의 이름을 새긴 접시들이 발굴되기도 한다.

이처럼 도자기를 빚은 도공(陶工), 그리고 도자기 표면의 그림을 그린 화원이 도자기 바닥에 남긴 수결(手決)은 헤아리기 힘든 긴 우주의 시간 속에 잠깐 나타났다 사리지는 짧은 삶의 흔적을 남기는 엄숙하고도 비장한 행위라 하겠다.

글+사진‧이원복(부산박물관 관장) 
출처:월간 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