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편리함과 안락함, 온돌과 마루

한옥의 이러한 편리함과 안락함은 공간의 조합 속에서 취침을 중심으로 생활공간을 구성하는 ‘온돌’과 휴식공간이면서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마루’가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평면적인 온돌과 입체감이 돋보이는 마루가 이음과 맞춤을 통해 하나의 공간 속에서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 편리함과 쾌적함을 만들어낸다.

한반도에서 건물에 마루가 존재했다는 최초의 기록은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의 부여조(東夷傳·扶餘條)이다. 이외에도 고구려시대 벽화무덤인 마선구(麻線溝) 제1호분 벽화에는 원두막과 같이 긴 장대 중간에 가로재를 걸치고 2층 바닥 부분을 마루와 같이 꾸민 부경(고상식 창고)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다. 부경은 2층 구조로 1층에는 말이나 돼지와 같은 가축을 기르고, 2층은 널이나 통나무를 바닥으로 꾸며 대부분 옥수수 저장 창고로 사용된다. 이 고상식 건물들은 「신당서(新唐書)」에 기록이 남아 있는데, 학자들은 이 또한 마루의 기원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대청마루나 누마루와 같이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북쪽 지방에서 가축을 보호하고 곡식을 보존하는 공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중히 여기고 과학적으로 짓는 공간

이쯤에서 지금의 한옥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생활하는 마루를 살펴보자. 마루는 모양(구조)과 기능(용도) 및 위치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모양에 따라서는 길고 넓은 널을 이용한 장마루와 약 60㎝, 약 2자 정도의 널로 쪽을 이은 쪽마루로 구분되며, 기능에 따라서는 통풍과 습도 조절을 위한 마루방과 음식을 보관하는 도장방, 상방 등으로 구분된다. 또한 생활공간으로 사용되는 마루로는 건물의 중심축을 잡아주는 대청마루, 건물 밖과 안의 이음새 역할을 하는 툇마루가 있다. 그렇다면 마루는 어떤 구조적인 특징을 갖고 시공되는가. 마루는 기둥과 연결된 장귀틀과 장귀틀의 중간을 가로질러 세분하는 동귀틀로 인방부재를 가로 세로로 짜 맞추고 바람이 통하도록 땅바닥으로부터 띄운 구조이다. 그리고 장귀틀 중간에 마루가 처지지 않도록 넓적한 강돌을 받치고 그 위에 동자주(수직기둥)를 세운다. 장귀틀과 동귀틀 목재는 직선에 가까운 나무를 쓰는데, 상면은 대패질을 하고 그 사이의 공간을 메워주는 청판은 약 20㎝의 폭과 30~60㎝ 길이의 널을 만들고 상면은 5~10° 정도의 배흘림으로 매끄럽게 깎고 하단은 짜귀로 켜서 중앙부를 배부르게 만든다. 무게중심을 중앙에 두어 휘어지거나 갈라지는 것을 막고 사람이 걸어 다닐 때 마루 널판이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한옥을 지을 때 많은 공정 중에서도 마루를 잘 만드는 목수의 보수가 가장 높다 하니, 조상들이 마루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닥, 그 이상의 공간

대청마루는 집의 가운데 있는 마루로, 공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른 방을 지배하는 중심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안대청은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있어 이들 방으로 출입하는 전실(前室)의 기능을 가지는 동시에 여름에는 시원한 거처가 된다. 6칸 대청집 사대부가의 대청은 마루의 단 차이를 통해 어른 공경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으며, 면적과 높낮이를 통해 계급의 상하 구분을 표시하기도 했다. 경주 교동의 최씨댁과 의성 내앞마을의 의성김씨 종가댁 등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툇마루는 마당이나 기단에서 방으로 출입할 때 신발을 신고 벗기 편하도록 벽 앞에 2~3자 약 60~90㎝폭으로 붙여놓는다. 툇마루는 대개 후원 쪽에 쪽마루와 함께 놓이는 경우가 많은데, 햇볕이 따스한 봄날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에 봄기운을 잔뜩 머금은 꽃과 새싹들을 보는 장소이고, 비 오는 날 추녀골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보면서 무한한 상념에 빠지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동식 마루도 있다. 평상이다. 평상은 실내용과 실외용이 있는데, 실내용은 마루 가장자리의 바라지(벽 위쪽에 낸 작은 창)창문 앞에 놓으면 ‘마루 위의 마루’가 되어 여름에 시원하게 휴식을 취하는 장소를 제공한다. 마당 한가운데 놓이는 실외용 평상은 무더운 여름날 모깃불의 쑥 타는 향기와 함께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을 헤는 운치 있는 공간이다.

도장방이나 상방 그리고 다락이나 벽장은 저장공간으로서의 마루이다. 다락은 부엌의 상부에 있어 아궁이 때는 연기가 마루널 사이로 타고 들어가 훈증의 역할을 해 나무를 보호하고 음식을 건조하는 기능을 하였다. 또한 조선시대에 안채와 사랑채의 기능이 구분되어 있는 사대부집의 경우에는 안채의 다락방이 어린이들의 놀이터, 혹은 아녀자들의 대화공간이 되기도 했다. 구례에 있는 운조루 등 많은 곳에서 마루가 쉼터 역할을 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더욱이 다락은 한지를 바른 살창이 조명 역할을 하는데, 어두운 공간에 은은한 자연채광이 스며들면 부드러운 햇살의 실루엣을 느끼게 하고, 살창의 격자틀이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이렇듯 마루는 우리민족에게 안식처이자 은신처였으며 쾌적하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바닥 그 이상의 공간이었다.

글‧서정호(공주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출처:월간 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