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한 나무 중 하나고 애국가에 나올 정도로 한국인들에게 지조의 상징, 번영의 상징으로 추앙받으며 사랑받는 나무다. 현재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나무 중 상당수가 소나무이고 식물이 유일하게 벼슬을 하사받은 것도 소나무였다. 조선시대 많은 그림의 소재도 역시 소나무였다. 소나무와 우리나라 역사, 문화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소나무와 우리나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소나무의 의미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되짚어보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되돌어보면 이렇게 중요한 소나무가 우리나라 역사에 어떤 영향을 줬으며 이로 인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종합적으로 분석한 글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 일상사에 이렇게 밀접한 영향을 줬던 대상이라면 그를 둘러싼 역사적 서술전개가 충분하고도 남는데 말이다.
사학자 강판권(계명대 사학과 교수)이 쓰고 문학동네가 펴낸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는 다소 도발적인 "조선을 괴롭힌 왜구, 그들이 노린 건 한반도의 소나무였다!"라는 문구를 앞세우고 소나무를 둘러싼 역사적 전개를 씨줄날줄로 엮어간다. 이 책은 '세상을 바꾼 나무',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 '중국을 낳은 뽕나무' 등 십여 권 가량의 나무 시리즈를 출간한 글쓴이의 '생태사학' 연구 성과 중 하나다.
왜구가 노린 것은 소나무였다는 선전문구를 보면 '소나무가 도대체 뭐라고 전쟁까지 벌인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감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일랜드인들의 미국 이민역사, 미국현대사를 이해할 수 없고, 석유를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 전쟁을 이해할 수 없듯 소나무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 중세사를 이해하기 쉽지 않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행위를 정당화하지만 의외로 단순한 사안이 큰 사건의 배경일 때가 많다.
글쓴이는 조선시대 우리 생활에서의 중요도를 먼저 언급하며 얘기를 풀어간다. 이를 풀어가는 이유가 바로 결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현대와 달리 소나무는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거의 필수적인 건축자재였으며 전쟁물품이었고 구휼식품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쓰임새를 위해서는 일정 수량의 소나무가 있어야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 궁궐이나 왕족의 집을 짓는데, 사대부의 집을 짓는데, 혹은 전쟁을 위한 전함을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는 백년 남짓한 수령을 가진 소나무여야 했지만, 땔감으로 나무가 쓰였고 구휼작물로도 소나무 껍질이 쓰였기 때문에 나이 든 소나무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병충해 방제기술이 취약해 병충해로 인한 소나무의 소실도 컸다. 따라서 나이든 나무를 구해 벌목하기 위해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많은 양민들은 심한 노역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민심을 흉흉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했다.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에는 이처럼 소나무를 둘러싼 역사적 논쟁과 이에 따른 정책들을 설명해나간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소나무는 당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방비를 위해 필수적인 배를 만드는 주재료였다. 왜구가 우리 해변에 자주 출물한 이유도 여기 기인한다고 글쓴이는 밝히고 있다. 강 교수는 그동안 왜구의 출몰이유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전투의 일반적인 분석대상에만 관심을 가진 한계를 지적한다. 이 책에서는 해협을 건넌 왜구가 조선 양민의 재산을 약탈하는 것, 조선의 소나무와 그것으로 만든 배를 호시탐탐 노렸음을 처음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종실록 등으로 통해 밝혀지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가 스쳐지나간 또 다른 역사적 동인을 확인시켜준다.
전라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왜선 한두 척이 해도에 드나듭니다" 하고 보고했다. 임금이 그 까닭을 좌우에게 물으니, 이순몽이 대답하기를, "신이 옛날 대마도를 정벌한 후, 왜선을 추격하여 전라도의 연해변 섬을 순행해보니, 거기는 소나무가 무성하나, 육지와 거리가 멀어서 도왜(島倭)들이 매양 배를 만들기 위하여 오는 것이니, (중략) 신의 생각으로는 대마도에도 배 만들 만한 재목이 없으므로 반드시 전라 해도에 와서 배를 만들어 가지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후략)" (『세종실록』 권13, 세종 3년 8월 24일)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배 만드는 기술의 차이와 문제점도 이 책에 나온다는 점. 조선시대의 건축학, 조선술, 산림학, 식품학 등이 소나무를 매개로 풀어 정리되는 것은 이 책의 재미자 장점이다.
또한 글쓴이는 소나무를 통해 임진왜란을 조망한다. 이 책의 목적지이자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 지점이다. 병선용으로 소나무를 사용한 '거북선'을 통해 소나무를 조선의 수호신으로 바라봤다. 한반도 역사의 단절을 불러올 뻔했던 절체절명의 시기인 임진왜란 당시, 거대한 일본 수군의 군사력을 제압하는 전함이 되어 백척간두에 선 조선의 생명을 지켜낸 주역이 바로 소나무였기 때문이다.
조선은 2, 3차 대마도원정을 통해 왜구를 선제 제압하기도 했지만, 삼포왜란, 을묘왜변 등을 겪으며 왜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이어갔다.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글쓴이는 임진왜란을 '조선의 거북선과 일본의 안택선 간의 싸움'으로 보았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거북선을 앞세운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게 돌아갔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일본과의 ‘군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거북선 등 전함의 재료로 소나무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조선 수군의 거북선과 맞섰던 왜군의 안택선은, 구조상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는 장점을 지녀 주력 함선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 배는 조선 수군의 거북선과 충돌 시 쉽게 부서졌다. 거북선이 소나무로 만들어진 반면, 안택선은 상대적으로 재질이 무른 삼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병선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조선 수군은, 이처럼 소나무라는 우수한 재료와 이순신이 발휘한 지략의 화학작용을 통해, 막강한 병력의 일본 수군에게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배를 만들 수 있는 소나무가 없었다면 이순신 장군의 빛나는 승리도 없을 것이란 역사적 사실을 돌이켜보면 소나무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소나무가 군사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사회현상과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인지가 여기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소나무는 한반도의 수호신이었다는 글쓴이의 지적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조선 사회, 나아가 한반도의 지나온 날들을 이해하는 데 소나무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인데도, 아직까지 이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저자의 일성은 큰 울림을 자아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