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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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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에 새긴 정교한 아름다움, 장석(裝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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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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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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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끝에서 빚은 ‘견고한 아름다움’
이게 과연 쇠인가 싶을 만큼 섬세하고 아름답다. 두드리고, 새기고, 파내는 작업은 고되고 고독해보이기까지 한다. 쇠에 무수히 많은 구멍을 뚫기 위해 끊임없이 망치로 정을 내리치는 박문열 두석장의 손끝은 섬세하면서도 묵직하다. 평생 함께해온 정과 망치는 이제 그와 한 몸이 되었다.
“장석이 특히 돋보이는 가구는 선이 단순하고 투박한 반닫이에요. 서민들이 애용하던 반닫이는 지방색이 가장 뚜렷한 가구죠. 평안도 박천 지방의 숭숭이 반닫이는 기하학적 도형을 정교한 투각으로 표현해 장석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줍니다. 숭숭이 반닫이에 사용되는 장석은 시우쇠(무쇠를 불에 달구어 단단하게 만든 쇠)를 일일이 정으로 쪼아 무늬를 투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목가구나 건축물을 제작할 때 기능은 보강하면서 장식적인 효과까지 얻기 위해 금속장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장식을 총칭하여 ‘장석’이라고 하는데, 기능적 요소뿐 아니라 아름답게 치장하여 꾸밈새로 쓰이는 모든 것을 통틀어 일컫는다. 현대에는 장석이 가구나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어 그 가치를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장석은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단순한 형태로 꼭 필요한 부분에만 사용되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장식적인 면이 강조되었다. 장석을 만드는 두석장(豆錫匠)은 경국대전 공조의 경공장(京工匠) 속에 포함되었을 만큼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장석의 주재료인 황동이 콩 색깔과 비슷하다고 하여 두석장이란 이름이 붙여졌지만, 황동과 백동은 물론 시우쇠까지도 장석재로 쓰였다.
실용적이면서 장식적인 요소까지 다양한 기능 발휘
두석장의 작업은 두 가지로 나뉜다. 목가구의 장석물과 자물쇠를 만드는 것, 고건축물에 쓰이는 장석물을 제작하거나 보수·보전하는 일이다. 부여 정림사지의 황동철물장석, 양산 통도사 대웅전 금강계단의 비녀쇠 돌쩌귀, 안동 봉정사 대웅전 등자쇠, 영광 불갑사 대웅전의 철물, 구인사 조사전의 철물 등 사찰 곳곳에 박문열 두석장의 작품들이 남아 있다. 광화문 복원과 경복궁 내 다수의 복원 작업에도 참여한 바 있다.
“문갑, 탁자, 반닫이 등 수백 종류의 목가구에 붙는 장석물의 생김새가 다 달라요. 투박하면서도 손맛이 나죠. 똑같이 본떠서 만들어도 사람의 손을 거쳐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드니까 똑같을 수가 없어요. 서랍 손잡이의 고리 같은 것도 배흘림으로 두께를 다르게 해서 만드니까 뭉근한 멋이 삽니다.”
가구의 나무 재질이나 빛깔, 문양에 따라 장석의 재료는 달라진다. 가구에 사용되는 장석은 문짝을 여닫는 경첩이나 문, 서랍의 고리와 들쇠(손잡이) 같은 실제 쓰임새를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고리나 자물쇠가 부딪치는 부분이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며, 못을 사용하지 않고 결구(짜맞추기)로 제작하는 전통 가구에서 결구 부분을 감싸 보강하는 구실까지 한다. 또 나무의 흠을 가리기 위해 쓰기도 한다.
모든 공예가 그렇듯 장석은 실용성과 함께 아름다움도 갖췄다. 그 아름다움에 풍부한 의미까지 담아낸다.
“자물쇠 가운데 물고기 모양이 많죠? 물고기는 눈을 뜨고 자니깐 재물을 지키는 의미로 새긴 겁니다. 물론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으니 다산과 풍요를 뜻하기도 하고요.”
장석은 부착하는 물건에 따라 농장석, 궤장석, 의걸이장석, 벼락닫이장석, 모반장석, 전통장석 등으로 나뉜다. 문양은 나비, 박쥐, 물고기, 새, 식물, 십장생, 문자(回, 亞, 福, 壽, 乙), 만(卍)자 등을 응용한다. 작업을 할 때는 화덕, 풀무, 각종 집게, 도가니,거푸집, 그음쇠, 정, 망치 등 각종 도구가 동원되는데, 이러한 도구들을 잘 다룰 줄 알아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과거에는 장석을 만들기 위해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쇠판을 만든 후 망치로 두드려 넓게 늘려 사용했지만, 지금은 기계로 제작된 편편한 쇠판을 구입해 사용한다고. 쇠판에 제작하려는 장석의 본을 대고 그음쇠로 선을 긋거나 송곳처럼 끝이 뾰족한 그림쇠로 그림과 글씨를 그리고 그려진 도안의 모양에 따라 정으로 그으면 입체적인 문양이 드러난다. 이때 장석의 내부문양은 날정을 사용하며, 구멍을 비롯한 투각 부분은 망치로 따낸 다음 줄로 형태를 다듬어 광을 내주고 마무리한다.
장석으로 알리는 한국의 미
박문열 두석장은 전통 자물쇠 복원에도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는 선조들의 지혜와 과학성을 엿볼 수 있는 7단 자물쇠를 비롯한 전통 자물쇠를 재현해 1993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장식처럼 보이는 광두정(머리가 넓은 못)을 살짝 밀어야 열쇠 구멍이 나타나는 자물쇠는 열쇠를 집어넣고 각도와 방향을 여러 차례 바꾸며 밀고 돌려야 한다. 장인이 독학으로 제작법을 알아낸 7단 자물쇠는 공구로 끊을 수 없는 견고함과 멋스러움을 지닌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정 몇 개, 망치 몇 자루로 작업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빈약한 공구로 어떻게 그런 아름답고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어냈을까 싶어요. 지금은 과거에 비해 공구가 정말 좋아졌어요. 그렇기에 과거보다 못한 작품을 만든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에요. 끊임없는 발전을 이뤄나가야 합니다. 장인에게 중요한 건 마음가짐입니다. 자유로운 정신으로 조상들의 전통을 되살리고 한 발 앞선 작품을 만드는 일을 고민해야 합니다.”
박문열 두석장에게 전통이란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다. 전통공예라고 해서 옛것을 답습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문열 두석장처럼 장인의 창의성과 예술성, 그리고 열정이 더해져 우리의 전통은 더욱 가치 있게 빛을 발한다.
글‧한율 사진‧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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