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3일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를 열어 창경궁에 소재하고 있는 고려오층석탑의 이전 여부를 심의한다. 조선은 유교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국가, 그 한복판인 왕궁에 부처의 집인 불탑이 소재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궁궐을 탐방하는 많은 이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의문은 이미 꽤 오랜 세월 지속되었고 정부도 이를 방치하였다. 그러다가 2014년 봉은사와 조계종이 나서서 방치 상태에 있는 석탑을 사찰로 이운하여 줄 것을 요청하면서 본격적인 조사와 연구가 시작되었다.
봉은사 등 불교계는 조선 궁궐에 불탑이 있는 것은 부적절하며 일제강점기인 조선물산공진회가 열린 1915년 전국의 사찰 등지에서 징발당하여 당시 세종로일대에 도열당한 불탑과 부조탑 등 사찰 석조물의 일부로 추정되는 고려석탑이 해방 70년을 맞이하고도 그대로 있다는 것은 민족정기회복의 차원에서 하루빨리 기원 처로 이운하는 것이 좋겠다는 요청을 문화재청과 국회 등에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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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소재 고려오층석탑>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세종로일대 전시모습/사진문화콘텐츠닷컴> |
실제로 창경궁 명정전 뒷 뜰에 있는 이 탑은 아무런 이름도 표식도 없다. 창경궁 안내문 어디에도 이 석탑에 대한 존재와 이름, 연고 등 표식이 없다. 이렇게 100여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다 이제 문화재청의 결정에 따라 어디인가로 옮겨지게 될 것이다.
2015년 진행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보고에 따르면 이 탑은 1936년 경 지금의 자리에 이운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유는 1936년 작성된 근대건축도면집에 처음 표시되었다 것이다. 그리고 기단 위의 1층 탑신에 양각으로 조각한 불좌상의 형태로 보아 한 면만 조각한 것은 충남 예산군 석곡리 석탑과 일치함으로 충청지역 사찰의 사리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도 같은 시기 조사를 진행하였다. 이 연구소는 “석탑은 1915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조선물산공진회 행사를 위해 창경궁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동궐도와 조선말 도면에는 석탑에 대한 언급이 없는 반면 창경궁도면에 <사리탑>이라고 언급이 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수집이라는 명분으로 전국의 사찰에서 석탑, 석등 등을 옮겨와 조선의 궁궐 곳곳에 전시했고, 이러한 일제의 잔재는 2005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하며 상당수 석탑들이 박물관으로 이전되어 청산되는 듯 했다. 오층석탑은 현재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본래의 조성 목적에서 창경궁 조경을 위한 목적으로 바뀌어져 있다. 보존 상태는 무기질 피각과 분진, 균류에 의한 흑화현상, 박리현상이 관찰되고 있어 1, 2층 탑신석의 경우 매우 심각하다. 이는 습기와 햇빛, 통풍이 원활하지 못함에서 오는 문제로 보여 진다. 모든 문화재는 원위치에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창경궁 내 오층석탑은 원위치를 밝힐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오층석탑은 현 위치에서 이동되어 바람직한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곳으로 옮겨져야 하고, 그곳은 석탑 본연의 목적이 발현될 수 있는 사찰이어야 한다.”라는 조사결과와 의견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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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문화재연구소 조사 모습, 석탑이 음지상태에서 흑화,박리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
경복궁에 소재하고 있는 지광국사 현묘탑의 거취도 관심사이다. 강원도 원주 법천사지에 지광국사비와 한 쌍으로 조성된 현묘탑은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와다 쓰네이치가 일본 오사카로 밀반출하었다가 조선총독부가 조선물산공진회 전시를 목적으로 반환, 경복궁에 전시하였다. 한국 동란때에는 폭격을 맞아 산산히 부서진 것을 조각들을 모아 붙힌 상태로 지금도 경복궁에 남아 있다. 최근에 경복궁 복원사업과 맞물려 석탑의 이운 문제가 거론되었고 지금 원주시와 오대산 월정사 등을 기원처인 법천사지로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빛을 발한다.
지난 시기에 문화재는 재물적 수단으로 수집당하고 이용하였다. 때로는 이익의 수단으로, 권력의 기반으로, 통치의 대상으로 문화재를 강탈, 도굴, 수집하였다. 그러다보니 본래 자리에 있어야 할 문화재들이 국내외로 뿔뿔히 흩어졌다. 이러다 보니 이를 지키고 보전하는 방편으로 정부는 박물관에 차곡차곡 문화재를 수집, 보관하기에 급급하였다. 지금도 보관을 우선하는 행정이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지광국사 현묘탑에 있던 사자상의 소재가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문화재청 조차 일제에 약탈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존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기간이 무려 60년간이다. 주요 약탈문화재 목록으로 환수 대상으로 손꼽아 오던 것이 정부기관과의 소통 부재로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창경궁 소재 고려 석탑도 100여년을 음지에서 견디다가 곳곳이 병들어 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석조물 정원에는 달랑 ‘불상’, ‘장명등’이라고 표기된 체 그늘에 병들어 가는 문화재들이 있다.
과연 이대로 놔둬야 할 것인가.
문화재보호법 제34조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가 분명하지 아니하거나 그 소유자, 관리자에 의한 관리가 곤란하다도 인정하면 관리를 지방자치단체나 관리하기에 적당한 법인 또는 단체를 지정할 수 있다.라고 되어있다.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열린지도 20여년이 지났다. 유물의 중앙정부 독과점과 지자체의 빈익빈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본래 자리인 기원 처에서 인격적 대접을 받아야 할 때이다.
정부가 주창하는 문화융성이 풍부해지려면 여기서 시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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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 석조물 공원에 있는 불상과 안내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