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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미로운 음악이 그리운 계절이다. 지난 10월 21일(토)에는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의 53개 돈대 중 하나인 광성보에서 야외 콘서트가 열렸다. 강화도에는 한양을 지키는 관문, 조선 시대의 군사 요새인 5진, 7보, 53돈대가 있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관측을 위해 건설한 소규모 방어시설인데, 인천시는 이 유적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획하고 있다.

전쟁 유적지의 음악회라니 느낌이 남다르다. 문득 기획자가 궁금하다. 이 행사는 비영리단체인 <돈대예술제>가 주관했다. 올해가 벌써 네 번 째다. 돈대예술제 대표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들이 아끼는 명기 ‘브라만(Brahman) 기타’의 제작자 곽웅수씨다. 그는 세계적인 클래식기타 콩쿠르 대회의 심사위원으로도 맹활약중인 기타 장인이다.

“자연 속에서 자녀를 키우고 싶어서 강화도로 이사 왔어요. 강화도에 살다 보니 아름다운 곳이 참 많더라고요. 강화 주민은 물론 타 지역 분들도 음악과 함께라면 강화의 풍광에 더욱 감동을 받지 않을까 싶어서 야외 음악회를 준비 했어요. 장소를 고민 하다가, 교전의 상흔이 남아 있는 돈대를 떠올렸습니다. 이곳에서 선조들이 많이 돌아가셨잖아요. 음악을 통해 전쟁의 아픔이 치유 되고, 공간이 정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올해 4번째 돈대 음악회인데, 계절별로 잘 맞는 돈대가 있어서 개최지를 달리 하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해변이 아름다운 분오리 돈대, 초가을에는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이 근사한 계룡돈대에서 진행 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는 가을과 어울리는 바이올린 선율에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광성보를 선택 하였습니다.”

▲광성보

고대시대부터 인간은 음악을 통해 아픈 사람을 치료하거나 다친 영혼을 치유하였다. 음악과 인간의 삶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140여 년 전 큰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조상님들에게는 낯선 서양음악이겠지만, 멜로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과거로부터 현재의 일상까지 이어지는 상처를 어루만지고 싶다는 돈대음악회의 취지를 들으며 음악의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가을빛이 고운 토요일 오후, 요란하지 않게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지역민들과 우연히 광성보를 방문했다가 자리를 잡은 관광객들로 인하여 예상보다 관람객이 많았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바이올린의 신보경, 피아노의 한송희의 듀엣이 펼쳐졌다.
바이올린의 신보경은 2014년에 ‘콘세르바토리’ 음악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오케스트라 협연, 앙상블,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젊은 연주자다. 정식 콘서트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깊고 섬세한 바이올린 소리가 돈대 안을 가득 채운다. ‘바흐(Bach)’의 무반주 ‘파르티타(partita)’에 이어, 우리 귀에 익숙한 ‘파가니니(Paganini)’의 ‘칸타빌레(cantabile)’가 울려 퍼지자,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집시들의 무곡 같은 ‘차르다시(Czardas)’가 연주되자 어깨를 들썩이며 박자를 맞추는 관중들이 늘어난다.

▲강화 앞바다

바이올린, 피아노 듀엣에 이어, 뮤지컬 ‘위대한 탄생’과 ‘빨래’에서 활약 중인 뮤지컬 배우 ‘송혜은’이 서정적인 뮤지컬 명곡을 노래했다. 뮤지컬 ‘맘마미아(MAMMA MIA!)’의 ‘Thank you for the music’과 ‘캣츠(Cats)’ 의 ‘메모리(Memory)’, ‘잭 더 리퍼 (Jack the Ripper)’의 ‘바람과 함께’. 고즈넉한 광성보와 낭만적인 강화바다가 소슬한 가을바람에 실린 음률과 잘 어울린다. 눈과 귀가 호강하는 날이다.
가족 음악회 콘셉트에 맞게, 7080세대를 위한 순서도 마련되었다. 고 김광석이 불러 유명해진 ‘먼지가 되어’의 원작자인 싱어송라이터 이대헌과 통기타 가수 듀엣 마니가 가을 석양과 잘 어울리는 우리노래를 공연했다.
마지막으로 해금, 향피리, 장구, 보컬로 이뤄진 국악퓨전밴드 ‘아리한’이 ‘아리랑’을 남녀노소 누구나 흥이 나는 버전으로 연주 하였다. 이날 행사는 오래된 명곡과 새로운 작품을 아우르는 레퍼토리로 구성 된 열린음악회였다.

▲ <돈대예술제>의 기획자인 곽웅수 장인

공연이 끝난 후, 돈대음악회를 주관한 곽웅수 장인을 만나 소감을 물었다.
“올해의 마지막 돈대 콘서트가 무사히 마무리되어 기쁘네요. 유적지에서 개최하는 공연이어서 혹여 산만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음악에 몰입하는 연주자의 진지한 태도가 관객들을 집중 시킬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연주자, 청중 모두 행복했던 콘서트였습니다. 강화도에 워낙 좋은 돈대들이 많아서 일 년에 4~5차례 정기적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2018년 봄, 돈대음악회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광성보는 어떤 곳>
광성보는 강화의 해안 경계부대 중 하나로, 국방상 중요한 요충지였는데,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다. 초지진과 덕진진을 거쳐 온 미군군함에 의해 광성보는 초토화 되든데, 이 싸움으로 어재연, 어재순 형제를 비롯하여 50여명이 넘는 우리 군사가 희생 된다. 광성보 안에 모신 어재연, 어재순 형제의 쌍충비각과 무명용사들의 무덤은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글 김세라 ‘I-View’ 객원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