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주박물관에는 충남 천안 두정동에서 출토된 작은 흙덩이 하나가 전시 중이다. 겉보기에 작고 보잘것없어서 그다지 주목되는 유물이 아니기에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은 이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전시관 앞에서 자세를 잡고 조금은 진지한 자세로 몸을 낮추어 상대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어느새 누구든 이 작은 유물에 숨겨진 4세기 백제인의 유쾌함에 전염될지 모른다. 이 작은 유물은 그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숨기고 있다.
4세기 유적에서 발견된, 이 백제인의 얼굴은 흔히 얼굴이 새겨지는 위치에 새겨져 있지 않다. 이 유물은 장란형, 혹은 화분형 토기의 손잡이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토기에서 손잡이라는 것은 물건을 들기 위한 것이며 중요한 장식요소도 아니다. 더불어 전체 유물로 보면 시선을 끄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략 1600여년 전의 토기 장인은 그 손잡이에 파격을 더했다. 그간 밋밋하게 만들어지던 손잡이에 사람의 얼굴을 새겨 놓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충남 천안 두정동에서 출토된 작은 흙덩이에 새겨진 백제인의 얼굴 형상은 4세기 백제인의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사진은 백제시대의 시장 모습. 백제역사문화관 제공
이 그릇 손잡이는 작은 유물이지만 의외로 섬세하게 사람의 얼굴을 표현하고 있다. 눈썹이 그려지고 눈두덩이를 표현하는 한편 눈동자는 다른 곳보다 깊게 파냈다. 그 아래에 코가 표현되고, 얼굴 역시 골격과 근육을 포착하듯 굴곡진 모습을 표현하려 애를 썼다. 입술은 약간 벌린 채로 새겼는데, 간편히 한 줄로 그은 것이 아니라 입술 부분을 도톰하게 도드라지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렇게 표현된 얼굴의 영역과 다른 부분은 몇 개의 윤곽선으로 다시 구분했는데, 이것 역시 단순히 선으로 그어 표현하거나 하지 않고 아직 마르지 않은 흙을 정성스레 빚은 듯이 보인다.
귀때토기,전남 나주 오량동 출토, 귀때토기는 한성 백제 때 많이 사용된 토기 양식이다. 시기와 출토 장소는 다르지만, 천안 두정동에서 출토된 토기도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것은 누구의 얼굴이었을까. 당시에도 물론 거울은 있었지만, 그것은 부유한 권력자들의 전유물이었고, 그 자체가 신분의 상징이기도 했다. 평범한 토기 장인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면밀히 관찰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이 얼굴은 그가 접한 타인의 얼굴이었을 것 같다. 옆에 모델을 세워두고 빚지는 않았겠지만, 토기 장인의 얼굴 표현에 대한 심사숙고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토기를 굽는 장소, 허름한 건물에서 제각기 토기의 모양을 만들어 가는 데에 바쁜 상황에서, 어느 한 짓궂은 장인 한 명은 자기 주변의 동료들을 곁눈질하면서 작은 토기 손잡이에 이 얼굴을 새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 또한 참 유쾌한 풍경이다. 이 ‘작업’은 그 자신에게는 매우 즐거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작가가 아니니 그가 기울인 충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묘사의 수준이 높지는 않다.
그가 접한 얼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이 유쾌한 작업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마 그 속에는 흐릿한 자신의 얼굴도 있었겠지만, 다른 이들의 얼굴이 더 구체적인 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것은 어느 누구의 얼굴이 아닌, 그가 접한 여러 얼굴의 통합이고 전형화된 ‘인상’으로 재현되기 시작한다. 토기 장인인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질료, 즉 재료인 흙은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물건이기도 하다.
백제인의 얼굴 형상을 한 토기의 손잡이. 공주대학교박물관 제공
이름 모를 어느 토기 장인의 이 도발적 행동은 토기에 남아 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을 주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새 토기는 기능을 다하고 어딘가에 버려졌을 것이다. 토기의 손잡이 부분은 토기를 만들고 난 뒤에 별도의 흙으로 빚어서 추가하는 방식으로 덧붙여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상당히 취약한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옛사람들이 살았던 주거지를 발굴하다 보면 이런 손잡이만 따로 발견되는 경우가 흔하다.
다른 부분에 비해 두꺼워 유독 잘 남겨지는 이 손잡이는 토기의 다른 부분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에도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1600년이 흐른 어느 날, 날카로운 감각으로 조사하던 발굴 인력의 호미 끝에 걸렸을 것이다. 이 유쾌한 얼굴의 백제인은 아마 그 발굴현장에서도 즐거움을 주었을 것이다. 흔히 나오기 힘든 유물이고, 흔히 보기도 힘든 유쾌한 표정의 옛사람 얼굴이기 때문이다.
배재훈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우리나라에서의 진행되는 발굴은 재개발 등의 공사로 인해 긴급하게 이루어지는 구제발굴의 형태이다. 매년 1000곳이 넘는 발굴현장이 있지만, 수많은 유적에 비해 기억할 만한 유물은 별로 없다. 그러다 보면 발굴현장의 분위기도 기계적으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이 작은 백제인의 얼굴을 발견한 현장의 모습은 달랐을 것이다. 유물을 수습한 득의양양한 얼굴의 조사자는 이 얼굴의 의미와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중요한 유물이라 판단하고 이 성과를 동료들과 함께 공유했을 것이다. 이렇게 현지에서 발굴·조사된 유물은 관련 유적에 대한 발굴 결과를 정리하는 보고서에 조사 결과와 함께 실리게 된다.
이후에는 각 지역을 관할하는 국립박물관의 수장고로 인계가 되는 절차를 거친다. 발굴을 통해 수습된 유물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국가 소유의 유물로 등록되며, 이후 수장고에 보관되거나 그 의미와 가치가 높은 유물의 경우는 전시에 활용된다. 이 작은 손잡이가 박물관의 전시장에 선보이게 되는 과정에는 발굴자의 유물에 대한 평가에 동의하고, 이를 다른 수많은 유물들 사이에서 당시를 대표하는 것으로 선택한 학예연구사의 연구와 전시 기획이 있었다.
매년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유물의 숫자는 이런 토기편만 수만 개는 충분히 넘을 정도로 대량이다. 그중에서 전시에 활용할 수 있는 유물을 고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보고서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수장고에 입고된 유물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없이 이런 유물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박물관의 학예연구사가 이를 조사하는 작업 역시 또 하나의 ‘발굴’이라 할 수 있다. 아마 국립공주박물관의 학예연구사도 이 유물을 보고 한눈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로 이 유물은 마한인, 혹은 백제인이 그들 스스로를 표현한 매우 드문 유물로 조명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 4세기경의 백제인의 모습을 짐작게 하는 유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토기 표면에 꼬마아이들이 낙서를 하듯 대담한 선으로 그린 선각 그림 정도는 간혹 보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사람이 되기도 다른 물체가 되기도 하는 것이라 장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백제는 고구려와는 달리 이 시기에 고분벽화를 그리지도 않았다. 후대의 고분벽화도 고구려의 것과는 달리 상상의 동물이 중심을 차지한다. 그러니 우리는 4세기를 살아간 백제인의 얼굴을 표현한 그 어떤 유물도 그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 된다.
이 토기 손잡이 속 얼굴은 곱고 품위 있는 얼굴이라기보다는 노동인의 골격과 근육이 표현된 하층민의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이 얼굴은 이국인으로서의 부처나, 신선 노름과 이상향에서 노닥거리는 악사 등, 백제인의 미래 지향이나 관념 지향이 아닌,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유물의 중요성이 바로 거기에 있다.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이 유물 속 얼굴에서, 우리는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4세기 백제의 어느 생활인 얼굴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우아한 귀족도, 권력의 정점에 선 왕도 아닌 어느 생활인, 오늘날에는 흔히 서민으로 일컬어지는 그런 ‘사람’의 얼굴이 여기에 있다. 그가 품고 있는 유쾌한 표정, 그것은 4세기 근초고왕대 국력의 강화와 안정된 정치 속에서 성장한 백제인의 자부심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