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ㆍ인천 부평공원 옛 일제 ‘조병창’ 자리에 8월 설치

오는 8월 광복 72주년을 맞아 인천 부평에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으로 노동력과 인권을 수탈당한 ‘징용노동자상’이 세워진다. 지난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인 일본 교토(京都) 단바(丹波) 망간광산에 세운 이후 국내는 처음이다.

19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이원석 작가(51)의 작업실. 이 작가의 작업실 중앙에는 흙으로 빚은 징용노동자 부녀(父女)상 ‘해방의 예감’이 놓여 있었다. 청동으로 가로 155㎝, 세로 60㎝, 높이 180㎝로 만들어질 동상의 틀이다. 동상은 1939년 일본 미쓰비시(三菱)가 운영하던 조병창이 있던 현재의 부평공원에 8월 중에 세워진다. 부평공원에는 지난해 평화의소녀상도 설치됐다. 징용노동자상은 시민 성금 7500만원으로 제작된다.

“징용노동자상은 징용노동자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다양한 행위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는 지난 3월 공모를 통해 접수한 3개 작품 중 이 작가가 낸 ‘해방의 예감’을 최종 선정했다. 일제강점기 고난의 부녀상을 모티브로 한 ‘해방의 예감’ 모델은 징용의 고난을 온몸으로 겪어낸 실존 인물이다. 앳된 얼굴의 15세 단발머리 소녀는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학업을 그만두고 조병창에 들어간 지영례씨(89)다. 아버지의 모델이 된 이연형씨(1921~2009)는 조병창에서 일하면서 징용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쟁의를 벌이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조선독립당에 전달하다 일본 경찰에 발각돼 옥고를 치렀다.

이 작가는 징용노동자상 제작을 위해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당시 노동자들이 입었던 옷과 생활상, 조병창에 대한 역사, 지씨의 육성 자료 등 고증작업을 거쳤다. 작업실 한쪽 벽면에는 위안부로, 탄광노동자로 끌려가 일하는 조선노동자의 자료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소녀의 표정은 의지와 불안, 초조함을 나타냈고, 커다란 해머를 들고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는 아버지의 몸짓은 언젠가 싸워서라도 해방을 이루려는 욕구·갈망을 표현했습니다. 맨발에 몸에 맞지 않은 옷과 뼈만 앙상한 몸은 굶주린 조선인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과 착취, 억압과 고통의 현장을 묘사했습니다.”

그는 “부평 조병창은 조선 노동자들이 일본 군수물자를 만들기 위해 노동력을 수탈당한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라며 “일제의 만행을 잊지 않기 위해 조병창 자리에 징용노동자상뿐만 아니라 위안부 박물관 등을 지어 후손들에게 기억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과 경남, 제주, 부산 등에서도 징용노동자상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들 작품은 앉아 있는 소녀상과 마찬가지로 역사성과 지역의 이야기를 곁들여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각자 다르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부산진구 어린이대공원에 세워진 긴 머리에 주먹을 쥐고 서있는 모습의 색다른 평화의소녀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박준철 기자 terry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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