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 믿지 않고 처단한 태조 이성계의 리더십

[물밑 한국사-19] 역사를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 예언들이 종종 보인다. 단지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기록된 예언도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무로 된 성에 의지하라고 한 델포이의 신탁 같은 것이 대표적이겠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테미스토클레스는 이것을 배에 의지하라는 것으로 해석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만일 이 예언을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목책을 쌓아놓고 페르시아와 겨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그리스가 멸망했다면 이 예언이 후세에 전해지기는 했을까? 전해지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임팩트를 주는 이야기로 전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점쟁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점이 태아 성별 맞히기라고 한다. 확률이 무려 50%.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 중 점쟁이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원하는 성은 물론 남성. 따라서 남자 아기를 낳기 위한 부적과 비방을 알려주고 정성을 다하라고 한 뒤에 50% 확률을 즐기면 되는데, 설령 실패해도 의뢰자의 불성실 때문이라고 둘러대면 그만. 신묘한 점쟁이의 이야기는 재미로 후대에 널리 알려지지만, 실패한 점쟁이 이야기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인구에 회자되지 않는다. 신통방통한 점쟁이 이야기만 자꾸 전해지다 보니 사람들은 그런 점쟁이를 찾아서 헤맨다. 세상 일이 그리 쉬우면 다 로또 당첨되고 주식 대박나고 승진, 입시, 범인 검거도 어려울 게 뭐 있겠는가. 이런 미신은 하루빨리 근절되어야 한다.

▲ 볼테르(1694~1778) : 프랑스의 문필가, 계몽사상가/매경DB

볼테르의 명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불합리한 것을 당신이 믿게끔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이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게도 할 수 있다."

　조선 태조 때 일이다. 경상도 밀양에 장님 점쟁이 이흥무가 살았는데, 동래 현령 김가행과 소금 담당 관리 박중질이 이흥무를 찾아왔다.

　"공양왕의 명운과 주상전하의 명운 중 누가 나은가?"

　이흥무가 흠칫 놀라 말했다.

　"왜 그런 걸 물으시는지요?"

　"어허, 박위 나리의 명이다. 어서 고하지 못할까?"

　참찬문하부사 박위. 이성계의 요동정벌을 수행했고, 위화도회군 때도 이성계 편이었으며 바다를 건너가 대마도를 정벌한 일도 있었던 용맹한 무장이었다. 개국공신인 그의 명이라 하니 이흥무는 점을 쳤다.

　"공양왕의 명운은 쇠진하였습니다."

　"그럼 공양왕의 원자와 정양군(=왕우, 공양왕의 아우)은 어떤가?"

　"명운이 쇠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왕씨 가운데 누가 좋은가?"

　"남평군 왕화(공양왕의 사촌)가 귀하고, 그다음은 영평군 왕거(왕화의 동생)입니다."

　"왕화의 명운이 어떠한가?"

　"군사를 거느리고 진수할 명운입니다."

▲ 비운에 죽은 공양왕의 능. 고양시에 있다. 공양왕의 능은 삼척에도 있어서 어느 쪽이 진짜 능인지 논란이 있다. 죽어서도 편치 못한 망국의 군주./사진=한국관광공사

　이 이야기를 들은 왕화는 삼촌인 중 석능을 데리고 이흥무에게 달려왔다. 공양왕이 다시 한 번 왕이 될 수 있는지 물은 후에 자신의 명운을 물었다.

　"군신이 경외하고 천지가 덕합하는 명운이니 섬에 들어간 지 3년 후에는 나오고 47~48세에 호운이 들어 50세 이후에는 장수가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반드시 일인(=군주)이 될 것입니다."

　태조가 집권하면서 왕씨들은 대부분 강화도와 거제도에 유배되었다. 대강 3년이 가까워지는 시점. 손가락발가락이 짜릿해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석능도 자신의 명운을 물었다.

　"왕사가 될 명운입니다."

　왕화는 동생 왕거에게 이 사실을 자랑했다. 하지만 말이 어디선가 새어서 이들이 몽땅 잡혔는데, 박위가 비록 개국공신이라 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일 것 같았다. 일단 박위도 잡혀들어가긴 했다. 하지만 태조는 기가 막힌 말을 하며 박위를 풀어준다.

　"원래 박위는 정몽주의 말을 듣고 날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이 투항해도 받아주는 법인데 박위 같은 인재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법이다. 박위가 배반할 마음을 먹었다면 내 대우가 부족했던 것이니 더 후히 대접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은 김가행과 박중질이 박위의 이름을 팔아서 행한 짓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렇게 몸통은 용서하고 깃털들만 처벌해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이틀 옥살이를 했다고 술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 후에도 대간에서 박위를 심문하자 처벌하자 상소를 계속 올리지만 태조는 그냥 무시해 버렸다. 반면에 점쟁이 이흥무, 왕화, 왕거, 김가행, 박중질 등은 모두 참수형에, 중 석능은 거제도에 유배했다.

　일이 여기서 안 멈춘다. 삼척에 유배되어 있던 공양왕에게 저승사자가 파견된다. 죽이는 이유가 황당했다.

　"김가행, 박중질 등이 반역을 도모했는데 너도 연관이 있다. 물론 너는 이 일을 전혀 모르겠지만 대간들이 너도 죽여야 한다고 계속 상소를 올리니 그만 죽어줘야겠다. 난 정말 억지로 죽이는 데 동의한 거니까 그리 알려무나."

　공양왕은 왕위에 오르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왕위에 오른 뒤에도 이성계 일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무척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은 이성계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고 말았다. 이때 공양왕뿐만 아니라 그의 두 아들도 함께 교살되었다.

　알지도 못하는 일에 책임을 물어 사형에 처해진 공양왕과 달리 모반 정황이 드러난 박위는 아무 문책도 받지 않았다. 아니, 박위뿐이 아니었다. 국문 중에 이흥무는 박위보다 더 먼저 똑같은 것을 물어본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전 지신사 이첨이 그 주인공. 그러나 조선 초의 뛰어난 문인 중 한 명이었던 이첨도 별 탈을 만나지 않았다. 이첨은 합포에 유배 가는 형을 받았고 그나마 7개월 만에 유배도 풀렸다. 그 후에는 다시 관직에 진출.

　이 일에 연루된 사람인 정양군 왕우는 어떻게 되었을까? 공양왕은 이름만 거론되었다고 처벌되었는데 그도 이름이 거론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정양군은 전혀 이 일을 모른 공양왕과 다른 진술도 있었다. 왕이 될 거라는 허황된 점쟁이의 말을 믿었던 왕화는 정양군을 끌고 들어갔다. 정양군이 섬에 유배되어 있는 공양왕의 사위인 익천군 왕집에게 사람을 보내서 "섬에 들어간 것을 근심하지 마시오. 내가 다시 왕으로 세우고자 꾀합니다"라는 말을 전했다고 일러바친 것이다.

　왕화가 정양군을 끌고 들어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정양군은 태조와 사돈지간이었다. 태조가 끔직히 아낀 방번의 장인이 바로 정양군이었다. 그러니 정양군이 무슨 벌을 받았을 리가 없다. 태조는 정양군에 대한 상소는 다 무시해버렸다.

　이 사건은 태조가 계획을 짜서 이첨, 박위 같은 심복들에게 시킨 일일지도 모른다. 왕씨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거기에 놀아난 점쟁이와 추종자의 말로가 한심할 뿐이다.

　이후에 태조는 거제와 강화에 있던 왕씨들을 모두 물에 빠뜨려 죽이고 지방에 남아 있던 왕씨들도 도륙을 해버린다. 왕씨 성을 쓰는 것도 금지된다. 왕씨들은 어머니 성을 쓰라는 명이 내려갔다. 이렇게 점쟁이 말을 믿는 참 어리석은 일이 600년 전에도 있었다.

[이문영 소설가]
원문보기
http://premium.mk.co.kr/view.php?cc=110002&field=&keyword=&page=&no=16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