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이야기가 적혔다고 위서가 되는 건 아니죠

▲ 삼국유사(왼)와 삼국사기./삼국유사=매경DB,삼국사기=문화재청

[물밑 한국사-17] 환단고기를 민족의 지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역사학자들이 환단고기 안에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있다는 이유로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이 사람들은 다른 역사책에서 황당무계한 구절들을 찾아내서 제시한다.

　"삼국사기를 보면 박혁거세와 고주몽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 삼국유사에는 환웅이 곰을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적었다. 하지만 아무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위서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환단고기는 몇 가지 이상한 내용이 있다고 위서라고 매도하느냐!"

　이런 이야기는 역사학에서 위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다.

　역사학은 '사료'를 다룬다. 사료는 사료 비판을 통해 그 유효성이 결정된다. 사료를 역사의 재구성에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증명하는 작업이 바로 사료 비판이다.

　1983년에 영국의 역사가 휴 트레버 로퍼에게 의뢰가 들어왔다. 히틀러의 일기가 발견되었는데 그 진위를 파악해달라는 것이었다. 트레버 로퍼는 처음에는 일기가 진짜라고 믿었다. 하지만 일기 안에서 19세의 히틀러가 쓴 연애편지가 나오면서 의심을 가지게 된다. 그 편지는 여자가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히틀러의 일기는 지질, 잉크, 필체의 조사 끝에 가짜라는 선언이 내려진다. 히틀러의 일기를 위조한 것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히틀러의 일기는 그 원본이라고 주장하는 실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짜라는 것을 밝혀내기가 용이했다. 하지만 많은 위서들이 원본은 실종된 상태로 나타난다. 이런 사본만 존재하는 사료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사료의 외적 비판이라고 한다.

　위서는 조작된 사서를 가리키는 것이며 조작이란 서지(書誌·책이나 문서의 형식이나 체제, 성립, 전래 따위에 관한 사실. 또는 그것을 기술한 것) 사항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사료 비판을 통과하지 못한 책은 그 책이 말하는 시대를 구성하는 사료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외적 비판이 있으니까 당연히 내적 비판도 있다. 내적 비판은 사료의 내용을 살피는 것인데, 이것은 그야말로 역사학의 원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해석과 관련이 된다. 말하자면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분석하는 일과 같은 것은 내적 비판이다. 흔히 왈가왈부하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과 같은 것이 바로 내적 비판을 가지고 벌어지는 논쟁이다.

　이 내적 비판은 외적 비판을 통과한 사료에 한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애초에 외적 비판을 통과하지 못한 사료는 그 사료가 지칭하는 시대를 재구성하는 재료로서의 가치가 없다. 이런 가치 없는 책을 가리켜 '위서'라고 부르는 것이다.

　환단고기에 대한 이런 외적 비판의 작업은 역사학계에서는 끝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믿는 사람들은 이 비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환단고기 안에는 근대에 사용한 용어가 들어 있다. 이에 대한 이른바 반론은 이러하다.



- 근대에 사용한 용어가 아니다.

- 가필이 있다고 해서 위서는 아니다.



　첫 번째 반론은 의미가 없는 우기기일 뿐이다. 두 번째 반론은 사료 비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환단고기의 문제는 근대에 사용한 단어가 들어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환단고기는 1979년에 출판되기 전에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의 소장자라 주장하는 이유립이 월간 '자유'에 환단고기의 내용을 일부 공개하고 있었을 뿐이며 그런 와중에도 환단고기라는 책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환단고기 중 '삼성기'의 지은이라고 주장한 안함로(安含老), 원동중(元董仲)은 안함(安含), 노원(老元), 동중(董仲)을 잘못 읽은 것이다. 삼성기는 세조실록에 나오는 책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처음 세조실록을 번역할 때 '삼성기'의 지은이 안함, 노원, 동중을 잘못 읽어서 안함로, 원동중이라고 해놓았고 이것을 본 이유립은 위작을 할 때 그대로 가져다 쓴 것뿐이다. '삼성기'의 삼성은 안함, 노원, 동중을 가리킨 것이다.

▲ 신증동국여지승람./출처=한국 고전 번역원

　바로 이런 식의 오류, 즉 책의 지은이가 위조된 책을 위서라고 한다. 이런 것을 밝혀내는 것을 사료 비판(그중에서 외적 비판)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외적 비판에서 중요한 것은 교차 검증이다. 조선 시대에 나온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황해도 해주목 편에 수양산성을 안함, 원로, 동중 세 사람이 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노원의 이름이 뒤집혀 원로(元老)가 되었는데, 한자는 동일하다. 이처럼 다른 책을 통해서 환단고기가 위조된 책이라는 점이 증명된다.

환단고기의 사료 비판의 양은 엄청나고 그 모든 것을 이 짧은 지면에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환단고기를 믿는 사람들은 흔히 "환단고기를 연구하지도 않고 무조건 위서라고 우긴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삼국사기와 같은 책도 끊임없이 사료 비판을 받는다. 삼국사기는 삼국시대의 역사서를 가지고 고려시대에 편찬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시대의 관념이 그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런 점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논쟁하고 의견을 나눈다. 이런 것이 역사학자들이 하는 일이다.

　그럼 위서는 역사의 사료로 진짜 아무 가치도 없느냐 하면, 그건 그렇지 않다. 그 위서가 만들어진 시점의 역사상을 담고 있고 아주 오래전에 나타난 위서라면 그 후 오랫동안 그것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 미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렇다면 환단고기도 그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있다. 환단고기는 1960~1970년대에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위조된 책이다. 즉 1960~1970년대에 왜 이런 책을 위조하고 있었는가를 파악하는 사료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작업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규정하는 것도 역사학자의 몫이긴 하다.

[이문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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