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릉이 임진왜란 때 파헤쳐진 것을 생각하면 다른 왕릉들은 도굴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난다. 어느 나라든 왕릉은 완성 직후부터 도굴과의 전쟁을 치른다. 철저한 계획 아래 만든 중국의 황제 능도 거의 도굴당했으며, 우리나라의 고려 왕릉 역시 일제 강점기 때 대부분 도굴당했다. 시신과 함께 넣은 부장품을 노리는 도굴꾼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반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 왕릉 40기는 선릉과 정릉만 제외하고 한 번도 도굴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조선 왕릉이 도굴을 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선 왕릉의 건축 기술에 있다.

조선 왕릉에서 시신을 모신 석실은 지하 3미터 깊이에 위치한다. 시신은 지하 1.5미터에 묻어야 하지만 도굴 방지를 위해 다소 변형한 것이다. 석실의 벽과 천장은 두께가 76센티미터나 되는 화강암을 통째로 사용했다. 조선 시대 이전의 잡석을 쌓아올리거나 판 모양의 석재를 겹쳐 쌓은 대부분의 왕릉과 비교하면 훨씬 단단한 구조다.

 

조선 왕릉 석실 구조도

석재의 끝은 비스듬히 파서 이음매 부위를 서로 끼워 맞췄다. 목조 건축에서 못을 쓰지 않고 목재를 서로 끼워 넣는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거기다가 工(공)자 형태의 철제 고리로 두 석재를 고정해 석실 전체를 하나로 엮었다. 입구에는 61센티미터 두께의 돌을 두 겹으로 세워 외부의 접근을 막았다.

석실 주변에는 시멘트와 비슷한 삼물을 1.2미터 두께로 둘러쌌다. 삼물은 석회에 가는 모래와 황토를 섞은 뒤 느릅나무 삶은 물에 이겨 만든 것이다. 삼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하게 굳을 뿐 아니라, 느릅나무 껍질에 있는 코르크층이 물과 공기를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세조의 광릉 때부터 일정 기간 삼물을 이용한 회곽으로 석실을 만들었는데 이 경우 상당한 이점이 있다. 석실을 만들 때보다 필요한 인력은 절반에 불과하지만 단단하기는 석실 못지않기 때문이다. 이뿐이 아니다. 삼물 바깥에는 숯가루를 15센티미터 두께로 감싸 나무뿌리가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마지막으로 주변을 1.2미터 두께의 잡석으로 다지고 봉분을 쌓아올려 왕릉을 완성했다. 견고한 도굴 방지책도 도입했다. 세종의 영릉은 석실 부재들의 이음매를 대형 철제 고리로 고정했고, 입구에는 이중 돌 빗장을 채웠다. 또한 석실 사방은 석회 모래자갈 반죽을 두껍게 채웠다.

그러나 조선 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또 다른 비밀은 부장품에 있다. 중국이나 고려 시대와 달리 왕릉 안에 들어가는 부장품은 모조품이고, 엽전도 종이를 이용한 모조 지폐를 사용했다. 더구나 부장품의 종류와 내용을 『산릉도감의궤』에 상세히 남겨 도굴꾼의 표적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