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 한국사-10] 인터넷상의 엉터리 역사 정보에도 질이 있다.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정보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놓는 것은 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잘못된 정보가 올라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란 없다. 그에 대한 비판 정보를 올려서 읽는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서로 입을 막지 않고 떠들어대는 것이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 수안 만리장성
이런 지도가 인터넷상에서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이 지도의 모태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108쪽에 나오는 것이다.
이상한 점이 있다. 어느 중국 지도에 저렇게 만리장성이 나오는지는 아무데도 나오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중국 지도는 만리장성을 수안까지 연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일반적인 만리장성 끝부분의 위치는 평양 서쪽에 있는 강서군이다. 중국에서 이 분야 대표 역사학자 탄치샹의 지도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 탄치샹
보다시피 탄치샹의 지도에 보이는 장성 표시는 황해도 수안까지 들어와 있지 않다. 청천강을 경계로 하고 있다. 그리고 탄치샹은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이 아니라 평안남도 강서군(평양 서쪽)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의문을 파헤쳐 보기로 한다.
시작은 역사학자 이병도 박사의 책에서 비롯되었다. '한국고대사연구'라는 책이 1976년에 나왔다. 이 책에는 '낙랑군고'라는 논문이 실려 있다. 해당 논문에는 낙랑군의 여러 지역에 대한 위치 비정이 들어 있었다. 이병도는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으로 비정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다.
중국의 삼국시대를 통일한 나라는 진나라다. 그 진나라의 역사를 다룬 '진서'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지리지에 낙랑군 수성현을 설명하면서 "진나라 장성이 여기에서 시작된다"는 구절이 들어 있다. 낙랑군 수성현에서 진나라 장성이 시작되는데 수성현을 이병도가 황해도 수안이라고 했으니 '만리장성'이 황해도 수안까지 왔다는 뜻이 된다.
완벽한 삼단논법인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원래 황해도 수안을 낙랑군 수성현이라고 처음 이야기한 사람이 이병도가 아니다. 그런 주장을 처음 한 사람은 일제강점기의 식민사학자인 이나바 이와키치이다. 친일파인 이병도가 식민사학자의 연구를 가져다가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그랬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병도는 '한국고대사연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수성현조에는-맹랑한 설이지만-'진축장성지소기(秦築長城之所起)'라는 기재도 있다. 이 진장성설은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아마 당시에도 '요동산'이란 명칭과 어떠한 장성지가 있어서 그러한 부회가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릇된 기사에도 어떠한 꼬투리가 있는 까닭이다.(148쪽)"
보는 바와 같이 이병도는 수안을 수성현으로 비정했지만 그곳에서 진나라 장성이 시작된다는 것은 부정하고 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만리장성이라는 말과 진장성이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진시황이 유목민인 흉노를 막기 위해 쌓은 것이 만리장성이라고 알고들 있지만 그것은 일부만 진실이다. 중국은 진시황 전부터 장성을 쌓고 있었고, 진시황 이후에도 계속 쌓는다. 그러니 진장성이라 하면 진시황 때까지의 장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것을 뭉뚱그려 만리장성으로 퉁치려고 하면 안 된다. 지금 우리가 보는 만리장성은 대체로 명나라 때 완성된 것이다.
이나바가 진나라 장성이 수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 것은 맞다. 이병도는 그런 설을 따르지 않았다. 또한 중국에서도 따르지 않았다. 탄치샹은 자신의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본인 이나바 이와키치는 '진장성 동단 및 왕검성고'에서 진나라 장성 동단은 평양 동남의 수안에서 일어났다고 했는데, 살피건대 진나라 때 지금 평양지방은 기자조선의 정치 중심지여서 진장성이 지금 평양시의 동남방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나바의 설은 따를 수 없다.(38쪽)"
이런 이유로 탄치샹이 만든 역사지도에서 수안까지 만리장성이 이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위 글에 나오는 이나바의 논문은 1910년에 발표된 것이다.
중국 쪽에서는 1930년에 왕궈량이 '중국장성연혁고(中國長城沿革攷)'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거기에는 이런 지도가 실려 있었다.
▲ 왕궈량
보다시피 평양을 지나 훨씬 남쪽인 황해도 수안까지 장성이 연결되어 있다. 갈석산도 표기되어 있다.
왕궈량은 중국 사서들을 바탕으로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왕궈량의 견해는 탄치샹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황해도 수안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는 학설은 그것이 이나바의 것이든 왕궈량의 것이든 이미 폐기된 것이다.
또한 이병도 역시 수안에서 만리장성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부정하고 있다. 황해도 수안에서 만리장성이 시작되었다는 학설은 거의 백 년 전후에 나와서 지금은 죽어버린 학설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국내학자는 존재하지 않고 이병도가 하지 않은 주장을 추종해서 중국 지도가 이렇게 만들어져 있지도 않다. 정확한 사실이 아닌 것을 들고 중국 학계에 항변을 한다면 중국 학계는 무슨 말을 하느냐고 어리둥절해 하고 말 것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진장성의 동단에 대해서 연구하고 그 실체를 아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에 있지도 않은 유령을 쫓아가게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