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영의 '물밑 한국사', 원균의 기문포해전 진실은

　역사 소설가이자 블로그 '초록불의 잡학다식'으로도 유명한 이문영 작가가 매경프리미엄에서 독자들을 만납니다. 한 번 잘못된 정보가 생산되면 고치기 어려운 디지털 시대, 물 위에서는 학자의 권위가 사라지지 않은 것 같지만 물 밑에서는 온갖 엉터리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이문영 작가는 '물밑 한국사' 연재를 통해 잘못 알려진 한국사 지식을 바로잡는 길잡이 역할을 할 계획입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첫 회는 임진왜란 당시 장군 원균에 관한 허구를 살펴보는 글입니다.

[물밑 한국사-1] 때는 임진왜란 6년차인 1597년 3월 8일.

　거제도의 기문포에 왜선 3척이 정박하였고 왜병이 상륙하였다 하여 이순신을 밀어내고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 오른 지 한 달여 된 원균(元均)이 즉시 출동했다. 삼도수군통제사의 지위로 이루어진 첫 출전이었다.

　밤새 노를 저어 9일 새벽에 기문포에 도착했다. 그런데 왜병은 그닥 놀라는 기색이 아니다. 이들은 배에 있지도 않고 섬에 올라 밥을 지어 먹고 있었다. 원균은 항왜(항복한 왜병을 가리키는 말) 남여문(南汝文) 등을 보내서 항복을 권유했다.

　왜병 20여 명이 남여문을 맞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왜병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는데 모두 80명 남짓이었다(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수치는 과장되었다).

　이들 중 우두머리가 부하 일곱 명을 데리고 원균의 배에 올랐다. 그런데 이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원균은 이들에게 술을 나눠주고 타고 온 배를 타고 돌아가도 된다고 말했다. 기껏 밤을 새서 노를 저어왔는데 그냥 돌아가라고 한 것이다.

▲ 당시 포격에 쓰인 지자총통. 자료=문화재청

　왜병은 기뻐하면서 무수히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그러나 이들이 배에 올라 바다로 나선 순간 조선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원균이 지자총통을 발사했다. 조선의 대포는 천지현황으로 나뉘는데 지자총통은 천자총통 다음으로 큰 것이다. 총통에는 마치 미사일처럼 생긴 거대한 대장군전을 넣어서 발사하는데, 폭발하는 무기는 아니고 적함을 꿰뚫어 침몰시키는 용도로 사용한다.

　원균이 지휘기를 흔들며 뿔피리를 불어대니 장수들도 모두 참전했다. 고성 현령 조응도(趙凝道)가 그중 가장 빨랐다. 적선에 가까이 배를 붙이자 왜병은 일제히 난간을 타 넘어 조응도의 배로 뛰어들었다. 조응도의 배는 순식간에 왜병에게 장악당하고 말았다. 현령 조응도는 칼에 맞고 배에서 떨어졌다. 조선 수군은 앞다퉈 바다로 뛰어내렸다.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 "각선도본各船圖本"의 판옥선 도면.

　왜병은 빼앗은 배로 계속 육지가 있는 북쪽으로 달아났다. 조선 수군은 악착같이 추적해서 지자총통, 현자총통을 쏘고 불화살을 날려서 결국 원래 우리 배였던 판옥선을 침몰시켰다. 배에서 뛰어내린 왜병 중 열여덟 명을 사살해서 그 수급을 조정에 바쳤다. 대체 돌아가라고 하고는 뒤통수를 치는 이런 일은 왜 벌어진 것일까?

　하지만 이순신을 물러나게 하고 속으로 불안감에 떨었을 선조는 도원수 권율이 올린 이 소식에 기쁨에 젖었다. 즉시 비변사에 원균의 공을 알렸고 비변사에서는 원균이 자세한 내용을 올리면 그에 따라 논공행상을 치르겠노라고 답했다.

　원균의 장계는 권율의 장계 엿새 후에 도착했다. 이때 바친 왜병의 수급은 열여덟이 아니라 마흔일곱으로 늘어나 있었다. 선조는 즉시 비변사에 논공행상을 치르라고 닥달했다. 그런데 비변사의 반응이 뜨악했다. 비변사의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원균이 바친 수급이 나무를 베러 왕래하는 왜인 듯하니 논공행상은 잠시 미루고 조사를 함이 좋겠습니다."

　'나무를 베러 왕래하는 왜'란 무엇인가? 당시 전쟁은 일시 휴전 상태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조일 양군은 서로 충돌을 자제하고 있었다. 왜군은 경상우병사 김응서(金應瑞)와 약조를 맺고 거제도 일대에서 나무를 해가는 것을 허락받은 상태였다. 왜군도 밥을 해먹으려면 불이 필요하니까 이런 허락을 따로 받은 것이었다. 이 약조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하인 요지라가 체결했다. 거제도 인근 섬에서 벌목을 허가한 것이다. 그러니 이 약조에 따라 나무꾼을 죽여서는 안 되는데, 원균이 죽인 것이 이 나무꾼인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다시 말하자면 비무장 병력을 사살한 것이다.

　비변사가 이렇게 나온 것은 이날 김응서가 보낸 장계가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장계에는 원균이 행한 추악한 짓이 낱낱이 밝혀져 있었다.

　김해 죽도에 머물고 있던 왜장 도요 시게모리가 김응서에게 나무를 베기 위해 떠난 자기 부하들이 원균에게 몰살당했다는 항의가 담겨 있었다.

　비변사의 보고에 선조는 나무꾼이 아닐 것이다, 원균에게 상을 내리는 게 마땅하다고 투덜대면서도 포획한 병기를 바치는 걸 보고 결정하라고 양보하게 된다.

　이번이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었다. 이미 열다섯 명이 탄 배를 습격해 총검을 빼앗은 바 있었고, 또 다른 열다섯 명이 탄 배는 사람까지 모두 죽인 바 있었다. 이들은 공문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런 처참한 꼴을 당한 것이었다. 여기에 세 번째 배까지 침몰되고 승선했던 서른두 명이 모두 죽었던 것. 이 때문에 왜군 쪽에서는 약조를 맺은 요지라를 죽여버려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일전을 불사하자는 주전론자들 이야기를 애써 달래고 있으니 이렇게 신의가 없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이제 더 못 말리면 쳐들어가게 될 것이니 백성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협박까지 하고 있었다.

　아무리 원균을 싸고 도는 선조라 해도 김응서가 전말을 밝혀놓은 장계 앞에서 더 억지를 부릴 수는 없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선조를 너무 쉽게 보는 것이다.

　"나무를 베러 다니는 건 왜병이 아니냐? 이놈들도 적이다. 기록을 보자니 보통 왜는 아닌 것 같지만 나무를 하러 온 왜는 절대 아니다. 원균은 가자하고 은냥을 내리는 게 마땅하지만 조금 더 조사하고 나서 시행하라."

　그러나 다시 닷새 후 권율의 장계가 올라왔는데 이 역시 김응서가 올린 내용을 다시 보낸 것이었다. 이로써 원균에게 줄 상 같은 건 없어져버렸다. 한 번에 세 척의 배를 상대한 것도 아니고, 80여 명의 왜군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원균은 나무꾼들을 안심시키고 뒤에서 몰래 죽였으며 심지어 그 과정에서 아군의 배를 한 척 빼앗기기도 한 비열하고 무능력한 장수였을 뿐이다.

　'아포칼립토'라는 영화가 있다. 적들이 쳐들어와 포로를 잡은 뒤에 살려준다고 말하면서 풀어주는 척하면서 다 잡아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원균이 왜군 나무꾼들을 상대로 한 일이 딱 그 장면을 연상시킨다. 인간적으로 추악하기 그지없는 일을 저지른 원균.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각에서는 원균을 용장이었다고 치켜세우는 일이 있는데 크게 잘못된 것이다. 원균은 조선 수군을 말아먹은 천하제일의 졸장일 뿐이다.

[이문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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