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보다 유능한 사람이 왕위에 있었다면 조선의 운명이 바뀌었을까?

경운궁(덕수궁) 대한문 앞을 행차하는 고종황제.

얼마 전 변호사 선배와 잡담을 나누다가 얘기가 나왔는데, 한국에서는 기업 경영 분쟁이 생기면 사생결단을 하고 싸운다. 기업이 망하거나 쫄아들거나 쪼개지거나 개의치 않고 머리 터지게 경영권을 놓고 싸운다. 남남이 아니라 가족 사이라도 드문 경우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高宗)이 무능해서 나라도 뺏기고 백성들도 도탄에 빠졌다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한데, 고종보다 유능한 사람이 왕위에 있었다고 해서 나라 운명이 바뀌었을까?

 

메이지 일본을 메이지 천황이 만든 것이 아니듯이, 조선이 망한 것은 무능한 왕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메이지 일본을 만든 것은 변화에 눈을 뜬, 신(新) 일본에 대한 비전이 있는 소위 유신지사라 하는 신흥 엘리트들이었고, 그 엘리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적극적 협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권의 발목을 잡고 나라를 찢으려 하지 않는 타협과 수긍의 정신을 발휘한 반대파의 엘리트들이었다.

 

고종은 총명하지는 않았지만, 주위 정세에 관심이 있었고, 변화에 적응하고자 하는 의욕도 있었다. 그러나 고종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뭐 하나를 하려면 사방에서 반대가 들끓었기 때문이다. 일본과 협력해도 반대, 자체 개혁을 추진해도 반대, 심지어 만동묘 부활시켜 달라며 상소질을 일삼는 케케묵은 중화사상, 사대주의에 매달리는 세력까지 왕의 행동 하나하나를 제약했다.

 

개화파라는 신흥세력이 어설픈 것은 더 뼈아팠다. 사람도, 자금도, 무력도, 비전도 뭐 하나 제대로 준비된 것도 없이 무작정 일이나 저지르고, 그 과정에서 왕에게 거짓말하며 외세나 끌어들이는 개화파를 왕이 가까이 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 아니겠는가.

 

거기에 왕의 최대 관심은 뭐니뭐니 해도 왕권 유지와 왕실 보전이다. 일기업의 경영권 분쟁이 생겨도 죽기살기로 달려드는데 왕이 위(位)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인가? 신하들을 못믿는 왕이 청(淸)이건 러시아건 미국이건 왕권 유지에 도움만 된다면 외세에 매달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그 당시의 조선의 왕이었다 할지라도 더 잘 할 수 있었을까? 라는 관점에서 당시를 보면 고종이 달리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총체적 부실과 난국으로 조선은 이미 수명이 다한 상황이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의 시기를 맞아 왕 하나 혹은 몇 명의 엘리트가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영어로 하면 ‘They were hopeless already’이다. 누구의 탓으로 돌려 답을 구하려 할수록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얻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시대를 직시하고,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연유를 정말로 남탓하는 마음이 아닌 통렬한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그 시대에 비추어 지금의 한국은 얼마나 다른가, 무엇이 바뀌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연결시키기 위한 근대역사를 보는 한 관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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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3&nNewsNumb=20160821161&nidx=21162&dable=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