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구 산곡동 함봉산 자락. 도심을 둘러싼 이 낮은 숲 일대에는 여러 개의 토굴이 자리한다. 토굴 속엔 가슴 아픈 역사의 한 조각이 묻혀있다. 최근 부평문화원이 오랜 시간 봉인돼 있던 토굴의 시간을 열어 보였다. 식민지 시절 역사 유산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초여름, 숲의 햇살을 등지고 바래진 역사의 뒤안길과 마주했다.
식민유산인 부평토굴
“부평 함봉산 일대에 자리한 토굴은 언제 어떤 경위로 파여졌는지 자료가 없어 알 수 없어요. 다만 마을 어르신들의 말에 의해 일제강점기 무기창고나 지하공장시설을 위해 파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인근 마을 주민들과 한 인터뷰에 따르면 대부분의 토굴이 그 당시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들에 의해 파여졌다고 하더군요.” 김규혁(부평문화원 기획사업팀)팀장의 설명이다.
부평은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기억이 곳곳에 남아있는 곳이다. 1930년대 일제는 부평지역을 남한 최대의 군수기지로 조성하기 위해 조병창(일본육군병기창조선공장)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군수공장 근로자들이 거주했던 사택 등이 지어졌고 토굴역시 이즈음 만들어진 식민 유산이 아닐까 추정되고 있다.
토굴 통해 부평의 역사를 되짚다부평문화원은 부평토굴을 역사와 문화가 담긴 체험교육의 현장으로 만들어 공개했다. 토굴과 함께 일본육군조병창, 삼능사택, 영단주택 등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부평지역의 문화유산도 알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어르신들이 참여한 콘텐츠발굴단을 운영해 왔으며, 지난 5월부터 올해 연말까지 C구역 7번 토굴을 살아 있는 역사문화탐방 공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콘텐츠발굴단 조사에 따르면 산곡동 지역에는 총 24개의 토굴이 자리한다. 토굴은 위치와 속성에 따라 A에서 D까지 4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A구역은 산곡동 화랑농장 마을에 위치한 토굴로 모두 7곳이나 주택이 들어서면서 흔적만 남아 있다. B구역은 과거 위성사진으로 확인 가능하지만 현재는 매립된 4곳이다. C구역은 새우젓 숙성 토굴로 알려진 함봉산 자락의 7곳이며, D구역은 인근 군부대 안에 있는 6곳이다.
김 팀장은 “앞으로 토굴에 대한 안전도 검사를 의뢰해 지속적으로 일반인에게 알려나갈 계획”이라며 “우리 민족의 아픔을 기억하고 교훈을 얻는 장소로 만드는 한편 이곳을 등록문화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도 노력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역사의 한 장면과 마주하다
산곡동 인평자동차정보고등학교 뒤편으로 난 산길을 따라 10분 남짓 걸으면 C-7 토굴에 이른다. 폭 4.5~6ｍ, 높이 2~3ｍ, 길이 140ｍ 정도 되는 이 토굴은 수 십 년 동안 새우젓 동굴로 사용되어 왔다. 굴에 들어서자 찬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바닥엔 물이 흥건하다. 손전등 하나만을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
몇 분 쯤 걸었을까. 김 팀장이 손전등을 비추며 암석에 매달린 물방울 모양의 종유석을 가리킨다.
“토굴을 둘러싸고 있는 함봉산 암맥이 주로 유문암으로 구성돼 있죠. 유문암 내에 생긴 방해석으로 인해 종유관과 종유석으로 변해가는 모양을 토굴에서 볼 수 있어요.”
중간 지점에 이르자 한글 모음 ㅑ자 형태의 가지굴이 파여 있다. 가지굴은 약 10여ｍ로 그리 길지 않으나 여기저기 동그란 구멍이 뚫려있어 굴을 파다 만 흔적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김 팀장이 “만약 부평토굴 B구역 4곳(B1~B4)과 C구역 4곳(C4~C7)을 계속 파들어 갔다면 서로 연결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일본 오사카 육군조병창 근처에도 부평토굴과 유사한 토굴이 있거든요. 그것과 비교해 볼 때 부평토굴도 아마 이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판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죠.” 라고 귀띔한다.
징용노동자들의 애끓는 울분과 숨소리를 담은 채 수 십 년 동안 가려져 있던 토굴. 그 끝에 서서 잠시 침묵 속 적막을 느껴본다. 온통 차갑고 어둠뿐인 이곳에서 당시 노동자들의 삶은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까. 아프고 모진 삶을 살았을 그들의 시간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에서 쓸쓸한 바람소리가 인다.
생채기로 남아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역사를 뒤로하고 다시 바깥세상을 향해 돌아섰다. 장화에 묻은 진흙과 물기를 툭툭 털고 토굴 밖으로 나오니 햇볕아래 초록이 유난히 환하다.
Tip
부평토굴 역사교훈 탐방
⦁답사일정 : 매달 마지막 금요일(1회, 오전 10시 30분/ 2회, 오후 2시)
⦁참여대상 : 일반시민(20세 이상 성인), 어린이나 초등학생은 보호자 동반
⦁준비물 : 손전등, 개인용 장화(선택사항)
⦁접수방법 : 전화접수
⦁문의 : 부평문화원 사무국 ☎ 032-505-9001
김지숙 ‘I-View’ 기자 jisukk@hanmal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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