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종교개혁 직전 책 1권 제작에 송아지 300마리 도살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문재인 정부 일각에서 2018년 시행하려던 '종교인 과세'를 연기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종교인 과세를 2년 더 미루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교회 등의 반발로 47년간 진통을 겪다가 간신히 입법화한 종교인 과세가 다시 늦춰질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의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발언의 무게감 등을 고려하면 과세 연기의 적정성 논란이 예상된다.

참여연대는 공평과세 원칙을 스스로 훼손하는 개정안 발의는 오랜만에 호평받는 현 정부에 부담을 준다고 비판했다.

기독교 단체들로 구성된 '교회재정건강성운동'도 납세 의무 앞에 종교인도 예외가 아니므로 유예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교회는 500년 전 종교 특권을 내려놓은 교회의 개혁 정신을 되살려 납세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촉구도 했다.

1517년 유럽 종교개혁에 불을 지핀 마르틴 루터(1483~1546)를 한국 종교인 과세를 압박하는 데 끌어들인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 유럽은 약 1천 년간 지속한 중세 봉건체제의 모순과 부조리가 정점을 형성할 때였다.

영주들과 결탁한 교회가 권력과 부를 독차지하고 가난한 농부를 억압했다.

'세금 폭탄'에 신음하던 농민을 십자군 전쟁터로 내몰기도 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황금에 눈이 멀어 면죄부(속죄부) 판매에 열을 올렸다.

면죄부는 무슨 죄를 지어도 사후 세계에서 벌을 면하게 해주는 보증서 노릇을 했다.

죽은 사람이 연옥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여준다고도 했다.

연옥은 가톨릭에서 영혼이 천국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면서 생전의 죄를 씻는 곳으로 믿는 장소다.

교회는 "돈궤에서 주화가 땡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순간에 영혼이 연옥에서 빠져나온다"는 선전도 했다.

면죄부는 액수별로 유효기간이 3개월, 6개월, 1년 등으로 나뉜다.

웃돈을 주면 유효기간 이전에 지은 죄에도 효력이 있다고 했다.

교회 수입을 늘리려는 꼼수였다.

면죄부 판매를 주도한 최악의 인물은 수도사 요한 테첼이다.

돌팔이 약장사를 빼닮은 성직자였다.

간음을 비롯한 각종 비리를 저질러 처형될뻔했다가 권력에 줄을 대 간신히 살아난 전과도 있다.

테첼은 "잘 인쇄된 면죄부는 신의 가장 고귀한 선물이어서 미래 죄도 용서받게 해준다"고 속여 웃돈을 받기도 했다.

세상을 뜬 부모를 그리워하는 유족의 심리를 자극하는 상술도 활용한다.

"우리를 낳아 키워주고 재산까지 남긴 부모가 애타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가"라며 면죄부 구매를 권유했다.

돈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교회에 루터는 분노했다.

1517년에는 가톨릭의 과오를 95개 조항으로 정리한 라틴어 대자보를 만들어 비텐베르크대학 부설 교회 정문에 붙인다.

교회의 부패와 폐단을 놓고 대학에서 공개토론을 하려는 목적에서다.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성서를 가르치던 루터의 당시 나이는 34세였다.

한 장의 대자보는 루터의 의도와 달리 유럽 전체를 뿌리째 뒤흔들게 된다.

독일어로 번역돼 유럽 각국으로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그동안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존 질서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신성로마제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추방령을 내렸지만, 루터는 물러나지 않는다.

숨어지내며 라틴어 신약성서를 계속 번역해서 보급했다. 당시 라틴어는 유럽 지식인 사회의 공통어였다.

번역 성서는 스위스 츠빙글리와 프랑스 칼뱅에게도 영향을 미쳐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촉발한다.

가톨릭교회를 고발하는 노력은 루터 이전에도 있었다.

면죄부를 비판하는 글도 적잖았지만, 그때마다 찻잔 속 태풍으로 그쳤다.

루터만 찬란한 빛을 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비결은 인쇄술 발달과 독일 귀족의 지원이었다.

로마교회는 성서 번역본은 물론, 가톨릭을 비판하는 책은 무조건 불태웠다.

지식과 정보가 대중에게 퍼지면 교회 권위가 약해진다는 판단에서다.

구텐베르크(1398~1468년)가 금속 인쇄술을 발명한 덕에 책 소각은 무의미해진다.

단시간에 대량 출판된 서적이 쏟아져나와 단속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1517~1520년까지 루터가 쓴 30종 저술은 30만 부 이상 팔렸다.

독일어로 번역한 대자보 글도 불과 2개월 만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금속활자 발명 동기는 종교개혁과 무관했다.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 구텐베르크가 돈벌이 욕심에서 금속활자 발명을 시작했다.

실제로 금속활자는 면죄부 인쇄에 활용돼 구텐베르크가 큰돈을 벌게 된다.

손으로 일일이 그림을 그려가며 만들던 면죄부를 대량으로 찍어낸 덕분이다.

구텐베르크는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성경 인쇄에도 나선다.

이전에는 양이나 송아지 가죽에 손으로 성경을 베껴 책을 만들었다.

마리당 가죽이 4쪽 분량밖에 나오지 않아 한 권 제작을 위해 약 300마리를 도살했다.

재료비도 비쌌지만, 인건비도 만만찮았다. 필경사 두 명이 약 5년을 매달려야 겨우 한 권을 만들 수 있었다.

성서 필사본 한 권 가격이 성직자의 3년 치 급여와 맞먹은 이유다.

돈벌이 목적으로 만든 금속활자는 극과 극의 이중 효과를 낸다.

면죄부를 대량 생산함으로써 루터를 분노하게 했고, 교회 비판 글을 널리 퍼뜨려 종교개혁 불길에 기름을 붓는 역할도 한 것이다.

대량 성서 출판으로 교황청 권력의 지식 독점이 무너지자 종교개혁은 들불처럼 번진다.

그 덕분에 유럽 문명은 교황청이 통제하는 암흑세계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으로 바뀌면서 근대화 길로 접어든다.

루터의 개혁 이후 유럽은 100년 이상 분쟁과 내란을 겪다가 1648년에야 안정된다.

신·구교 국가들이 30년간 벌인 종교전쟁도 그해에 끝난다.

종전과 함께 신교가 로마가톨릭에서 분리돼 종교 자유를 얻는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결혼하게 된 것도 루터 덕분이다.

성직자가 결혼할 수 있고 독신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어리석다는 글을 써 큰 호응을 얻는다.

루터도 1521년 수녀원 출신으로 16세 어린 카타리나 폰 보라와 42세에 결혼한다.

기독교계는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루터의 개혁 정신을 되새긴다.

교회가 중세 악습을 닮아간다는 자성도 한다.

오늘날 교회는 성장에 집착하고 타락한 목회자가 파벌을 이뤄 갈등과 반목을 키운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500년 전 루터를 생각한다면 종교인 과세 시기를 늦출 게 아니라 되레 앞당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직자로서 권위주의를 버리고 낮은 자세로 이웃과 세상을 섬기는 것이 루터의 개혁 정신이기 때문이다.

ha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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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7/05/31/0906000000AKR201705311203007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