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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향이 향긋했다. 덥혀진 물이 찻주전자를 따라 또르르 흘렀다. 천천히 마른 잎을 피어낸 차는, 묵은 먼지를 씻어 내리는 듯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곳의 공기마저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차분히 찻잔을 응시했다. 어린 녹차 잎이 푸르게 우러나고 있었다.

그 찻잎엔 한국의 정신이 스며있다
“차 드세요”
규방다례 보유자 최소연(69) 씨가 인사와 함께 차를 권한다. 차를 한 모금 넘기니 그제야 숨이 놓였다. 마음이 침착해지는 듯했다.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차를 앞에 두고 대화하길 즐겼다. 차는 커피와 다른 고요함이 있다. 차를 따르는 소리, 손끝으로 느껴지는 온도, 코끝을 스치는 향까지 즐기다보면 어느새 오감이 깨어난다. 깨어난 감각은 다시 앞에 앉은 상대에게 집중된다.

▲최소연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

“규방다례는 생활다례의 근간입니다. 조선시대의 엄격한 유교 생활 속에서 바깥출입이 용이하지 않았던 사대부가의 부인들이 이웃이나 친지를 초청해 안방에서 다회를 베풀던 의식과 절차를 계승한 것입니다.”
한국의 차 문화는 근대 개화기와 내전을 거치며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었다. 뿌리 깊게 이어진 우리의 차 문화를 규방다례로 재정립해 보급한 것이 최소연 보유자의 모친, 故이귀례 전 보유자다. 규방다례는 문헌적 고증과 과학적 이치로 생활차, 선비차, 가루차 등의 행다 예법을 만들어 보급했다.
두 손을 모아 무릎위에 올린 채 최 보유자가 말을 이었다. “규방다례는 우리 조상들이 직접 생활 속에서 행해 오던 것을 전승한 생활다례여서 그 의미가 큽니다. 특히, 규방다례는 전통존중, 예절존중, 과학존중, 생활존중, 청결존중의 정신이 함축 되어 있습니다.”
규방다례가 생활다례인 만큼, 그녀는 전 국민들이 스스럼없이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차인들과 청소년에게 다례로 소통할 수 있도록 매년 ‘전국인설 차 문화대전’을 여는가 하면, 고려 중기 문인이자 차인이던 백운 이규보 선생을 기념하는 학술강연회와 추모식을 개최한다. 또한 해마다 차의 날을 기념하고자 ‘전국 차인 큰 잔치’를 열어 인문학 강의 및 차음식경연대회를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인성교육의 근간, 예를 가르치는 규방다례
<타오르는 불에 끓인 향기로운 차는 바로 도의 맛이며, 흰 구름과 밝은 달은 곧 나의 기풍이로다>
이규보의 ‘부화’라는 시이다. 그는 차에서 도를 발견한 차인이었다. 그는 차에 관한 시 50여 편을 남긴 채 인천 강화도에 잠들어 있다. 그의 말처럼 차는 정신수양을 뜻하는 도와 일맥상통한 데가 있다. 다례는 우리 생활 속 예절교육으로 전해져 왔다.
“어머니께서 차에 대한 문헌을 찾고 역사에 대해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왔기에 어려서부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바른 인성을 형성해 주는 차 문화를 보급하는 일을 애국이라고 믿으셨기에 한국차문화협회를 설립하셨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뜻을 따르고 기리며 무형문화재 규방다례의 계승보존과, 생활 차 보급에 앞장서는 한국차문화협회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저의 의무이자 책임일 거 같습니다.”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좋은 일을 하면 후손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는 뜻이다. 최소연 보유자는 규방다례를 복원한 이귀례 전 보유자의 가르침을 회상하며 이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이제 차와 예절,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강조하던 어머니의 뒤를 이어 차인의 길을 걷는다. 현재 최소연 규방다례 보유자는 규방다례보존회와 한국 차 문화협회 이사장을 맡아 한국의 차 문화를 계승, 전파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규방다례의 계승, 보존과 우리차문화의 보급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차 예절교육을 통하여 입시에 밀려난 인성교육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중시하는 차 예절은 우리나라의 미래인 청소년들을 올바르게 성장시킬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례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지만, 어려서부터 생활습관으로 자리 잡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 최 명인의 말이다. 그녀는 학기 초마다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 무상 다례교육을 진행 중이다. “지금은 응하는 학교에 한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많은 학생들에게 다례를 통한 인성교육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가 생기길 바랍니다.”

맑은 차 향, 은은하게 번져나가길
찻잔을 채우는 소리가 경쾌하다. 최소연 규방다례 보유자는 찻잔이 비워지면 이내 다시 차를 채웠다. 어려서부터 차를 가까이 해 하루에도 서른 잔 이상의 차를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두 손으로 정중히 찻잔을 들고 무릎에서 입으로 오르고 내리길 반복한다.
“차 인구가 늘어나면 당연히 전통 차 문화의 활성화가 동반될 것입니다. 어렵고, 격식에 치우치는 차가 아니라 맛있고, 멋있는 차 문화를 만들어 스스로 찾아오는 규방다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최 이사장이 강조하는 것은 차의 대중화다. 전통성을 계승하고 보존시키는 것은 전승자들이 해 나아가야 할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하게 해 문화로 이어나가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도구로 차를 쉽게 내려 마셔서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체내에 쌓인 활성산소가 혈관을 상하게 하고 노화를 촉진시키는데, 이때 차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차를 많이 마시면 피부가 좋아지기도 하죠. 저도 나이에 비해 피부가 좋지 않나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꼿꼿하게 예를 지키던 최 명인의 얼굴에 소녀 같은 웃음이 번졌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최 명인은 말을 이었다.
“근대 개화기에 전해들어온 서양문물을 앞 다투어 향유하는 것이 멋이라 생각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령 커피, 양복, 패스트푸드 같은, 생소한 서양문물들이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다보면 우리의 것을 경시하고 잊게 되어 명맥을 이어나가기 어려울까 우려가 됩니다.”
얼마 전, 한국 차 문화협회 교토지부가 개설되었다. 일본 내에서도 차의 고장으로 불리는 교토에 한국 차 문화협회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한국 고유의 다례법인 규방다례를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재일교포 3세가 한국의 차 문화를 배우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 그곳에 우리의 차 문화와 규방다례를 보급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한 분들입니다. 한국에서 규방다례 교육을 마치고 교토에 한국차문화협회 교토지부를 개설했는데, 이것이 곧 또 하나의 한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우리의 옛것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현대에 맞게 대중적이고 친근한 콘텐츠를 모색하기도 한다. 최소연 규방다례 보유자 역시 우리 전통 차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다각도로 접근하는 중이다.
“무형문화재 규방다례가 누구나 쉽게 배우고, 향유할 수 있는 전통 차 문화가 되도록 대중화에 앞장 설 것입니다. 우리 차의 보급과 확산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최 명인은 찻잔을 내려놓고 다시 두 손을 모아 무릎에 올렸다.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였다. 바르게 세운 허리와 옅게 미소 띤 표정도 그대로였다.

<규방다례>
부녀자가 거처하는 규방(閨房)에서 낮에 간단하게 차를 올려 지내는 다례와 관련되거나 그것을 진행하는 사람을 규방다례라고 한다. 규방에서의 다례는 기품과 지성을 갖추고 예절을 익히는 교육의 한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2002년 12월 23일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이귀례 보유자가 인정되었다. 규방다례 이귀례 전 보유자는 1970년대에 조부에게 다례를 교육받았고 딸에게 차 문화를 전수하여 차 문화의 전승 활동을 함께 하였다. 규방다례 보유자는 현재 최소연 보유자가 유일하다.

글. 사진_차지은 'I-View'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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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ews.incheon.go.kr/publish/php/articleview.php?idx=12179&section=8&diaryDate=2017-05-25&chapter=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