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땅속에 묻혀 있던 부분까지 발굴된 대형 지석묘 상석. 무게는 350t으로 추정된다. 사진제공=김해시

연지공원 인근에 옛날부터 ‘큰바우’ 존재
2006년 지표조사 결과 “고인돌” 판정

추가조사 길이 85m, 폭 19m 묘역 확인
금속 등 1400여 상자 유물 연거푸 출토
청동기~조선시대 석실묘·무덤 대거 발견

상석 운반할 장비 없어 그대로 다시 복토
김해대로 옆 지하에서 수천 년 비밀 간직


지금은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지만, 구산동과 내외동은 대부분 과수원과 논밭으로 이루어져 있던 곳이다. 그 중 연지못과 불과 300m 거리의 논 한 가운데에 가로 10m 길이의 아주 커다란 바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특별한 이름 없이 '큰바우'라 불렀다. 평평하고 넓은 큰바우는 벼농사를 짓던 농부들이 땀을 식힐 때 앉아서 쉬는 휴식처가 되기도 했고, 인근의 학생들이 타고 오르는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이 바위가 언제부터 산이 아니라 논 한 가운데에 있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90년대 들어 김해에 '신도시 바람'이 불면서 논밭이 대거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사이 큰바우는 땅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러던 중 2006년에 경남개발공사가 김해구산지구 택지개발 사업을 전개하면서 큰바우가 있던 구산동 833의 1 일원을 대상으로 지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놀랍게도 큰바우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고인돌 일부로 확인됐다. 이후 큰바우를 비롯한 고인돌은 제280호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을 말한다. 커다란 바윗돌 아래를 아랫돌이 고이고 있어(받치고 있어) '고인'돌이라 부른다. 같은 뜻으로 한자로는 지석묘(支石墓)라 쓴다. 우리나라에는 3만 기가 넘는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과 합하면 전 세계 고인돌의 40%가 한반도에 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인돌은 커다란 세 가지 돌로 만들어진 탁자형 고인돌이다. 비슷한 크기의 두 돌이 아랫부분 양쪽을 받치고 그 위에 나머지 한 돌이 올려져 있는 형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인돌은 윗부분의 큰 돌만 지상에 드러나 있고 아랫부분은 묻혀있거나 큰 돌 하나만 땅 위에 그냥 놓여 있는 형태다. 이 때문에 큰바우처럼 겉으로만 봤을 때는 고인돌이라고 알아보기가 힘들다.
　

▲ 경남고고학연구소가 2007년 구획을 나누어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김해시

민간신앙에서는 고인돌을 장수, 번영, 건강 등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모습이 드러난 고인돌이 있으면 새벽마다 고인돌 앞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빌기도 했다. 그러나 큰바우 즉, 구산동 지석묘의 경우 일반 바위로만 인식됐다. 큰바우 근처에서 과수원을 운영했다는 이석순(86) 씨는 "과수원 아래에 논이 있었는데 논 한 가운데에 큰바우가 있었다. 그 바위가 고인돌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고인돌인 줄 알았다면 바위 위에 마구 올라가질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물론 지표조사를 실시했던 경남고고학연구소(현 삼강문화재연구소)도 이렇게 큰 고인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연구소는 2006년 2월부터 5월까지 전체 14만 1061㎡ 면적을 대상으로 시굴조사를 실시했고 이후 묘역 등이 확인되면서 추가로 정밀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2차 시굴조사와 발굴조사는 2006년 5월부터 2008년 1월까지 무려 630일 동안 이뤄졌다. 시 문화재과 이선미 주무관은 "발굴 과정에서 끝도 없이 묘역과 유물이 나오는 바람에 연구팀이 지칠 정도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고인돌 위에 놓는 상석인 큰바우는 30~40년 전만해도 아랫부분이 지면 아래에 묻혀 있어 높이가 1.5~2m에 불과했다. 2006년 지표조사 직전에는 이마저도 땅에 묻혀 그 존재를 모르는 이도 많았다. 그러나 지표조사를 시작하자 가로 10m, 세로 4.5m, 높이 3.5m의 육중한 모습이 드러났다. 그 무게만 해도 무려 350t으로 추정됐다. 상석 아래에 묘역으로 조성된 시설도 길이 85m, 폭 19m로 국내 최대 규모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지석묘는 기원전 3~2세기 무렵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 상석이 묻혀 있는 자리에 세워져 있는 지석묘 안내판.

묘역에서 발견한 유물의 규모도 엄청났다. 출토된 유물은 한 점 한 점씩 세 나가기도 힘들었다. 먼저 금속 못, 숟가락, 놋그릇 등 금속 유물만 578상자가 나왔다. 옥석유리가 24상자, 토기가 229상자, 목기 장식이 1상자 등 832상자의 유물이 출토됐다. 묘역 한 가운데가 현대 배수관로 공사로 인해 파괴됐다는 것과 묘역이 김해대로와 물려 있어서 출토를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묘역의 규모와 유물 양이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90동, 삼국시대 가마터, 통일신라시대 석실묘, 고려~조선시대 무덤 등이 대거 발견됐다. 특히 주거지에서는 아궁이와 가마터, 연기가 빠져나가는 고래시설이 확인돼 우리나라의 전통 난방시설인 온돌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이곳에서 발견된 고려~조선시대 무덤은 2000기가 넘는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이 꾸준히 거주터, 무덤터로 이용된 것이다. 무엇보다 세기를 넘나들면서 저마다의 무덤이 서로 겹칠 정도로 빽빽하게 형성돼 있다는 점이 놀랍다. 왜 유독 이곳에 이렇게 많은 무덤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 이진캐스빌 1단지 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구산동 지석묘 전경.

미스터리는 이 뿐만이 아니다. 350t 상석 아래에 있는 고인돌 내부는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상태다. 당시 경남개발공사는 발굴을 추진하려 했으나 350t 무게의 상석을 들 수 있는 장비가 없어 그 상태 그대로 복토해 지하에 보존했다.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묘역 자리에는 녹지공간이 조성돼 있다.
　
이선미 주무관은 "상석 옆에는 가로 세로 길이가 50㎝가 넘는 납작한 돌들이 수백 개나 깔려 있었다고 한다. 거대한 상석은 물론, 그 많은 돌을 누가 어떻게 가져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정도 규모라면 당시 엄청난 지배자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예상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고인돌의 주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정치적·군사적 권력을 지닌 지배층이라는 설과 종교집단의 사제였다는 설이 있다. 특히 고인돌 인근의 대규모 묘역시설을 감안했을 때 무덤의 주인공에게 제사를 지냈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2017년의 기술로도 들기 어려운 이 상석을 2000년 전에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옮겼을까. 상석 아래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국내 최대 규모인 이 고인돌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큰바우는 지금 자동차들이 씽씽 내달리는 왕복 8차로 김해대로 옆에 수천 년의 비밀을 간직한 채 묵묵히 묻혀 있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