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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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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신의 <여름날의 짚신 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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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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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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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짚신을 만드는 사람들
오늘날 짚신을 삼는 그림이 몇 점 남아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김득신의
<여름날의 짚신삼기>다. 사내가 웃통을 벗고 앉아 발가락에 가는 새끼를 꼬아 두 개의 날을 걸고 짚신을 삼고 있다. 왼쪽 발 앞에는 벌써 삼은 한 짝이 놓여 있다. 나머지 한 짝도 곧 완성될 것이다. 사립문에 호박 넝쿨이 열리고, 문 사이로는 옹기가 살짝 얼굴 을 내밀고 있다. 가족 3대의 관계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웃통을 벗고 있는 아들과 혀를 길게 빼고 있는 강아지를 보면 한여름의 무더위 를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다. 주로 신선이나 도인을 그렸던 윤두서는 작품
<짚신 삼기>의 화폭 정중앙에 평범한 서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짚더미 위에 앉아 두 다리를 뻗고 발가락에 새끼줄을 건 채 열심히 짚신을 만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편안하고도 활기차 보인다. 짚신은 이처럼 평범한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의 하나였다.
생활 속 친근한 재료로 만든 짚신
짚신은 조선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신발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짚신인가. 신발이 닳아 없어지는 물건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먼저 신발의 재료는 튼튼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가죽 같은 것이다. 하지만 서민에게 가죽은 구하기도 어렵고 가공도 쉽지 않다. 정반대로 생활 속에서 구하기 쉬운 풀이나 짚이 신발을 만드는 재료로 자주 사용됐다. 벼농사를 짓고 사는 사회에서 짚신은 그러한 이유로 선택된 것이다.
중국 송나라 마단림은 『문헌통고』에서 마한(馬韓)의 풍속을 소개하면서 “신발은 초리(草履)를 신는다” 했는데, 이 초리가 곧 짚신이다.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초구(草屨)는 앞쪽이 낮고 뒤쪽이 높아 모양이 이상하지만, 온 나라의 남자, 여자, 어른, 아이가 다 신는다”라고 했다. 짚신은 삼한시대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 지 이어온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신발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짚신만 신었던 것은 아니다.
『경국대전』 예전(禮典)의 ‘화혜(靴鞋)’ 조를 보면, 정1품부터 정9품까지 품계가 있는 벼슬아치는 조복(朝服)과 제복(祭服)에 흑피혜(黑皮鞋), 공복(公服)에는 흑피 화(黑皮靴)를 신게 되어 있었다. 다만 평상복의 경우, 1품에서 3품까지는 협금화(挾金靴)를 신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4품에서 9품까지는 평상복에 어떤 신발을 신으라는 규정 이 없다. ‘화(靴)’는 목이 긴 신발을, ‘혜(鞋)’는 목이 없는 신발이다. 협금화는 금속, 즉 징을 박은 신발이다.
이처럼 가죽신은 원래 벼슬을 하거나 돈 많은 양반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 관습도 조선 후기가 되면 바뀐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예전에는 선비들이 말을 타 고 다니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짚신을 신고 걸어 다녔고, 말을 타는 일은 드물었다. 지금은 조관(朝官: 조정에서 벼슬을 하는 신하)처럼 가죽신을 신고 말을 타고 다닌다. 걸 어 다니는 사람은 없다”라고 했다. 즉, 임진왜란 이전에는 벼슬아치들만이 가죽신을 신고 말을 탔지만, 전쟁 이후에는 선비들도 가죽신을 신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임진왜란 후에는 선비들도 가죽신을 신었다지만, 살기 넉넉한 사람들이나 그랬을 뿐이고 보통 양반들은 여전히 짚신을 신었다. 일반 백성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런 이유로 해서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짚신을 삼을 줄 알았다. 다만 솜씨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살아가는 방편이 되었던 짚신 삼기
조선시대라 해도 도시 사람들은 신발을 사서 신었다. 당연히 한양에는 신발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유본예의 『한경지략』에 의하면, 생삼(말리지 않은 인삼)과 숙마( 잿물에 삶아 희고 부드럽게 만든 삼 껍질)로 만든 미투리와 짚신을 파는 가게들이 여러 곳 있다고 했다. 미투리는 삼이나 모시껍질 등으로 곱게 짠 고급 신발이다. 파는 짚신 중에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서린동 전옥서(감옥)에서 죄수들이 삼은 것이라 했다. 신을 삼아 팔면 먹을 것이 나오는 데다 죄수들은 할 일이 없어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정성을 들인다. 신발이 꼼꼼하고 질길 수밖에 없다.
죄수에게 짚신 삼기가 돈이 되듯 보통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유원의 『임하필기』를 보면 이지함이 굶주린 백성을 살린 일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 흥미롭게도 짚 신 이야기가 나온다. 요지는 이렇다.
선조 3년(1570)에 영남 지방에 기근이 들었다. 이지함이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는 백성들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는 큰 집을 지어 유민들을 수용하고 각자의 소질을 보아가며 먹고 살 방도로 이런저런 수공업을 가르친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아무 재주도 없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볏짚을 가져다주고 짚신을 삼으 라 했다. 곁에서 보니, 하루에 열 켤레는 삼는다. 이걸 내다 파니 먹을 것이 생겼고, 돈을 모아 옷도 다시 지어 입었다. 이처럼 짚신 삼기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편이 되었다.
해진 짚신은 그냥 버리지 않았다. 고려 때 지 씨 성을 가진 구두쇠 재상이 있었는데, 설과 한식이 되면 공동묘지에 사람을 보내 지전(돈 모양으로 오린 종이)을 주워 오게 해서 도로 종이를 만들고, 남이 신다 버린 짚신을 주워 땅에 묻고 동과(冬瓜) 씨를 심었는데, 열매가 잘 열려 많은 이문을 남겼다고도 한다. 한편, 짚신은 거름으로도 썼 다. 실제 허균은 『한정록』에서 버리는 짚신을 외양간에 넣어 소의 똥오줌에 썩혔다가 마늘밭에 거름으로 넣으면 마늘이 굵게 자란다는 농법을 소개하고 있다. 홍만선 역시 『산림경제』에서 버리는 짚신은 말 오줌에 담가두었다가 파초를 심을 때 거름으로 쓰면 파초가 잘 자란다고 언급했다. 알뜰하기도 하다! 요즘은 썩지도 않는 신발이 신발장 속에 가득하다.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글‧강명관(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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