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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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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괴석과 절제미를 담은 허련의 <괴석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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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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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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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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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대부 문인들이 사랑한 ‘괴석’
동양에서는 암석에 대한 애착을 중히 여겨 서책에 기록한 지 오래되는데, 『서경』 ‘우공편’의 괴석 이야기가 그 시초다. 그 후 중국 동진의 화가 고개지가 사람의 형상을 바위에 그린 일, 송나라의 서화가 미불이 기암괴석을 좋아해서 기이한 돌을 만나면 절을 하며 ‘석(石) 형님’이라고 부른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괴석에 대한 애호심은 우리나라 문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추사 김정희가 『완당전집』 ‘괴석전’에서 “반이랑 구름 섬돌에 뭇 돌이 무리 지어, 머리마다 주름지고 구멍마다 영롱하다”고 한 것은 괴석이 가진 산수 운치를 노래한 것이고, 최립이 『간이집』 ‘괴석’에서 “내가 이 괴석을 얻은 뒤로는 화산(花山) 쪽에 머리를 돌려 앉지 않았다”고 한 것은 그의 괴석이 중국의 명산보다 더 아름답다고 자랑한 것이다.
문인을 자처한 조선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서책은 물론, 문방사우를 비롯한 인장, 도자기, 서화, 금석(金石), 고기(古器) 등 고상한 애완물을 즐겼다. 그들은 이 애완물을 청완(淸玩)이라고 했고, 괴석도 그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이었다. 조선 사대부가 최고로 쳤던 괴석은 살이 없고 수척하여 스산한 느낌을 주고, 신선의 동굴처럼 구멍이 뚫려 있으며, 태고의 불변성과 신비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괴석은 험한 계곡과 절벽에 있으며 흡사 구름과 우레를 간직한 것처럼 보인다. 이 품평의 내용을 보면 문인들이 괴석을 아끼고 사랑한 마음의 근본 출처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문인들은 천 년 운무(雲霧) 속에서 빚어진 괴석의 기이한 형태를 보고 태고의 모습을 떠올렸고, 영적인 기운이 서린 구멍에서 선계 동천(洞天)의 그윽함을 보았으며, 비가 와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에서 계류의 흐름을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괴석에 떨어진 낙엽에서 자연의 이치를 발견했고, 돌의 검은 고요와 침묵은 내면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그들에게 괴석은 이처럼 단순한 돌이 아니라 명산(名山)의 축소판이자 선계(仙界)였고, 수신(修身)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대상이었다. 사귀는 친구를 보면 그의 심성을 알 수 있듯이, 괴석을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의 심성은 괴석과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회귀에 대한 바람을 담아 괴석의 곁을 지키다
명분과 의리를 중요시했던 옛 문인들은 세속에 살면서도 자연회귀를 항상 염두에 두었다. 모든 권력과 명예를 버리고 산수에서 은둔하면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대은(大隱)이라 하고, 현실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깨끗한 취미를 즐기는 등의 방법으로 자족하는 사람을 중은(中隱)이라 한다. 현직을 떠나지 못한 사람은 대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은으로서 대은의 즐거움을 맛보고자 했다. 문인들은 비록 자연 그 자체는 아니지만 천지조화의 공력이 깃든 괴석을 가까이 두고 명산 보듯 즐겼다. 조선후기 화가 조희룡은 『한와헌제화잡존』에서 “천태산, 안탕산, 나부산, 오대산은 곧 하나하나의 괴석이 쌓여서 된 것이니 대문 밖을 나가지 않더라도 이미 오악(五嶽)으로 향한 새가 된다”고 했다. 이 짧은 글에서도 중은의 의지와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중은은 천지조화의 공력이 깃든 괴석을 가까이 두고 명산을 보듯 즐겼다.
그렇다고 중은을 누구나 누리는 경지라 생각할 수는 없다. 조선 말기 학자 황현은 『매천집』에 수록된 그의 시
<수석>에서. “늙은이의 반생은 달리 좋을 게 없다 보니 한번 괴석을 만난 뒤론 보배처럼 생각했네”라고 했다. 동양에서 노경(老境)은 감각적으로 좋아하고 즐기려는 욕망이 식은, 총명의 경지를 의미한다. 총명은 어떤 대상을 겉모습 그대로 보지 않고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존재 전반을 들여다본다.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은 겉만 보고도 진면목을 꿰뚫는다. 황현은 노경에 들어 괴석의 아름다움과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허련의 힘과 절제가 담긴
<괴석도>
조선시대에는 괴석도로 이름 날린 문인화가들이 적지 않았다. 강세황, 정학교도 그랬고 최북, 임희지, 허련(許鍊, 1809~1892) 또한 괴석도를 잘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허련은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의 후손으로 본관은 양천이고 전남 진도 사람이다. 자는 마힐(摩詰)이고 호는 소치(小痴)이며 허유(許維)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시·서·화를 모두 잘하여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 그는 어려서 해남 윤선도의 고택인 녹우당에서 윤두서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았고, 대흥사 초의선사의 소개로 1839년에 상경하여 김정희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화업을 닦았다. 1856년 귀향하여 진도군 의신면 첨철산 기슭에 운림산방을 짓고 작품에 몰두했다. 스승인 김정희는 “소치 그림이 내 그림보다 낫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허련의
<괴석도>는 삶과 산수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그것은 괴석에서, 그리고 그림이나 표구에 적어 놓은 시문인 제시(題詩)에서 드러난다. 어떤 사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그림이고, 언어로써 표현한 것이 시이다. 기교는 서로 다르지만 화가가 붓을 들기 전, 시인이 글을 쓰기 전의 정서는 다를 바 없다.
<괴석도>는 시로써 그림에 들어가고 그림으로써 시에 들어가는 이른바 시화일체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허련은 남종화가 지닌 문장의 기세와 화풍을 추구했지만, 괴석을 스치는 붓질과 제시를 쓴 필치에서 추사 서체의 잔영이 엿보인다. 몽당붓으로 쓴 속도감 있는 독필(禿筆)과 절제된 듯하면서도 파격적인 붓놀림이 추사체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다. 이것은 그가 김정희의 문하에 들어가 서화를 공부할 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허련의
<괴석도>는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소장돼 있다.
사람의 눈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겉모양만 보는 눈이고, 또 하나는 진면목을 꿰뚫어 보는 눈이다. 보는 것은 눈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마음이다. 그것이 바로 심안(心眼)이고 안목이다. 괴석 모양 그 자체에만 국한되면 안목이 상하 사방으로 통할 수가 없다. 만물은 심안으로 조용히 관찰하면 모두가 스스로 얻을 수 있다. 소치 허련은 그런 경지에 이른 선비화가들 중 한 사람이다.
글‧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 소장) 사진‧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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