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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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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남포벼루를 결정짓는 재료, '백운상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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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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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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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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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루 명장, 최고의 돌을 말하다
추사 김정희에게는 ‘열 개의 벼루에 구멍을 냈다’는 일화가 있다. 당대의 명필로 추앙받기까지 그가 쏟은 노력의 정도를 짐작케 하는 얘기인데, 김진한 명장은 이에 대해 조금 다른 해석을 덧붙인다.
“그 벼루의 돌이 그만큼 무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진짜 좋은 돌을 썼더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결국 구멍 난 벼루의 신화는 그 재료가 되는 돌의 질과 연관된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추사의 유품으로 남겨진 벼루 세 점 가운데 두 점이 남포벼루라 전해진다. “처음부터 좋은 벼루를 만났다면 좋았을 것을”이라 말하는 명장의 웃음에는 오직 돌 하나만을 바라보던 평생의 시간이 실려 있다.
붓과 먹을 다루는 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품으로 통하는 것이 바로 남포벼루이며, 그중에서도 백운상석(白雲上石)으로 만든 것을 으뜸으로 친다. 그는 그 석질의 견고함과 품격 면에서 이에 견줄 만한 돌이 없다고 단언한다.
‘흰 구름이 돌 위에 떠 있는 모양’이라는 뜻의 백운상석은 보는 이마다 감탄이 절로 나게 한다, 여간해서는 깨지는 법이 없을 정도의 단단함과 높은 밀도로 물이 잘 스며들지 않아 벼루로서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돌이다. 그런 만큼 자르고 다듬기도 힘이 들지만, 한번 만들어 놓으면 대를 이어 쓸 만큼 견고할 뿐 아니라 쓸수록 윤이 나는 명품이 된다. 남포벼루의 제작 기능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김진한 명장이 전수하고 있다.
남포벼루의 재료로 쓰는 돌을 일러 문헌에는 ‘오석’이라고 나와 있기도 한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오석은 모래 재질이 뭉쳐 이루어진 돌이라서 벼룻돌로는 쓸 수가 없다고 한다. 비석으로 쓸 때나 마땅한 돌이 어째서 남포벼루의 원재료로 소개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직접 돌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그의 의견은 확고하다.
“백운상석은 고운 점토질이 오랜 시간 동안 퇴적하면서 단단히 뭉쳐진 돌입니다. 청록빛 돌 위로 엷은 구름처럼 흐르는 문양은 반짝이는 은빛 광물질이 섞인 거예요.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적당하게 먹이 갈리기도 하는 기능을 하게 되죠.”
백운상석의 돌맥을 찾아서
“할아버지가 만든 벼루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천황에게도 갔다고 해요. 남포벼루의 명성이 그럴 만했다는 얘기였겠죠.”
당시 최고의 명품이 걸을 수밖에 없는 역사적 행로다. 그것은 그의 대에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김 명장이 청년 벼루장이던 시절 만들었던 벼루 두 점은 지금 대통령 기록물로 청와대에 남아 있다. 대통령에 선사할 정도면 최고 수준의 작품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수천 개의 벼룻돌을 깎아 온 그에게 ‘최고의 벼루’라 할 만한 작품은 아마도 전국 각지에서 지금도 먹을 갈고 있을 누군가의 서가에 있을 듯하다.
할아버지 대부터 시작된 석공 집안에서 좋은 돌을 찾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출발점이다.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보령 성주산 일대는 백운상석의 맥이 흐르는 수성암 지대이다.
“제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와 백운사 주지 스님께 허락을 받고 절집 뒤편에서 돌을 캐다 썼어요. 그러던 것이 사찰에서 석재 채취가 불법이라 하여 돌을 구할 수가 없게 되었죠. 도리가 있나요? 그 뒤로 돌을 찾아 성주산 골짜기를 헤집고 다닌 게 십수 년이에요. 결국 웅천 평리에서 백운상석의 맥이 이어지고 있는 걸 발견했지요.”
그는 수도 없이 더듬어 파 내려간 산기슭 등성이 굽이를 눈 감고도 찾아갈 수가 있을 정도다. 흙 속에서 백운상석의 돌맥을 찾은 순간은 그에게 있어 보물 광산을 발견한 것 이상의 환희였다.
맑고 투명한 소리 머금은 돌의 신비에 대하여
남포벼루의 재료는 가장 상석인 백운상석과 그보다 질이 낮은 중석, 하석으로 나뉜다. 일반인은 눈으로 보고 구분할 수 없지만, 명장의 감각으로는 검은 돌 속에 감춰진 신비한 비밀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다.
“돌이란 것은 물을 머금었다 마르기를 반복하는 동안 터지게 돼 있어요. 그게 자연스러운 이치예요. 그러나 백운상석으로 만든 벼루라면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나도 터질 염려가 없어요. 이것이 훌륭한 벼루의 기본입니다.”
김진한 명장은 작업대 위에 놓인 세 개의 벼룻돌을 차례로 들어 망치로 쳐 소리를 들려주었다. 쇠를 두드리듯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는 상석, 그보다 둔탁한 울림을 가진 것이 중석, 나무판인 듯 무겁고 탁한 소리를 내는 것이 하석이다. 끌로 긁어보니 세 종류의 돌이 가진 강도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흑판을 파내듯 무른 하석과, 어깨의 단단한 힘으로 밀었을 때 완강한 힘으로 맞서는 상석의 기운은 그렇게 판이했다.
눈앞에 놓인 한 덩이의 돌. 그것은 돌이되 그냥 돌이 아니다. 수천, 수만 년의 세월 동안 하늘과 땅과 바람과 물의 조화로 뭉쳐낸 보물이다.
“최고의 벼루를 찾는다면 백운상석이라야 합니다. 여기에 먹을 갈면 먹물이 맑아 붓끝까지 세밀한 선을 이뤄내지요. 벼루 자체가 갈려 나와 색을 흐리지 않으니 발색 또한 선명한 것이 특징입니다. 솜씨 좋은 예술가일수록 탐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거죠.”
평생을 돌과 더불어 살아온 벼루 명장의 거친 손마디가 차고 검은 돌판 위를 쓰다듬는다. 태고의 자연이 품어 놓은 우직한 돌덩이에 인간의 솜씨를 더해 탄생시킨 벼룻돌 하나. 자연과 인간의 정신이 합쳐진 경이로운 세계가 그 안에 숨 쉬고 있다.
글‧김수연 사진‧안지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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