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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진 지 20년, 낡은 외관의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집안 풍경은 소박했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연갈색 원목 가구들과 가족 사진이 담긴 작은 액자 몇 점.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장식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으리으리한 대저택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1000만권을 판 작가의 자택은 어떨까 품었던 흥분은 곧 사그라졌다. 인터뷰 장소를 충북 제천에 있는 그의 자택으로 잡은 것은 잠시나마 소설가 김진명의 자리에서 한국 사회를 보고 싶어서였다. 서울에서 차로 2시간30분, 그는 그 길을 오가며 대중과의 호흡을 다졌는지 모른다.
앉자마자 물었다. “인세가 얼마나 들어왔습니까?”
“꽤 들어왔을 겁니다. 출판사에 책이 몇 부나 팔렸냐고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저축하고 불리는 걸 잘 못해요. 거주하는 집 말고는 부동산이라곤 사본 적이 없습니다. 다행이지요. 그런 걸 좋아하면 글을 잘 못 쓰게 될 것 같습니다.”
‘고구려’ 6권, 예약판매 하루 만에 판매량 1위
문학계에서 김 작가는 독특한 존재다.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불리는 소설가는 몇 명쯤 있지만,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치·외교 현안을 논하는 작가는 그가 거의 유일하다. 2014년 작품 ‘싸드’는 올해 다시 화제가 됐다. 10월 말까지 약 20만부 팔렸다. 그는 현재 역사소설 ‘고구려’를 집필 중이다. 총 10권 안에 미천왕부터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의 치세를 다룬다. 지난 10월에 6권을 냈다. 5권 출간 후 3년 만이다. 6권은 예약 판매 하루 만에 인터넷서점 판매순위 1위에 올라섰다.
“독자 서평을 읽고 안심했습니다. ‘오랜만의 출간이라 수준 이하의 작품이 나올까봐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는 평들이 있더군요.”
출간 소감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김 작가는 독자들의 서평을 꼼꼼히 찾아본단다. 소설 ‘고구려’는 일단 재밌다. 동북아 역사를 배경으로 무협지 같은 서술과 빠른 전개가 어우러져 막힘 없이 술술 읽힌다. 그렇다고 김용의 소설처럼 기억해야 할 초식이나 인물이 잔뜩 나오는 건 아니다. 몇 명의 핵심인물로 구도가 압축되어 있다. 한마디로 독자 입장에서 문턱이 낮다.
김 작가는 짧은 시간에 작품을 완성하는 걸로 유명하다. ‘고구려’가 유일한 예외다. 보통 사전에 어떻게 자료조사를 하는지 물었다.
“인터넷이 발달해 자료조사 자체는 쉬워졌습니다. 문제는 수없이 흩어져 있는 자료를 어떤 시각으로 일관성 있게 뽑아내는가입니다. 현재 세계의 역사를 움직여가는 자들의 의식, 그들 사이의 손익관계를 관찰해 보이지 않는 흉중을 봐야 합니다. 독서는 기본입니다. 자료를 얻는 독서가 아닙니다. 세상의 이치, 문리를 틔우는 독서여야 합니다. 책을 몇 권 읽으면 정보를 얻고, 수없이 접하면 흐름을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어릴 때 독서가 중요합니다. 나이 들어 책을 읽으면 그 한 권의 정보밖에 못 얻는데 어려서 보면 상승작용을 일으킵니다. 거기에서 창의가 나옵니다.”
김 작가의 첫 작품이자 출세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세상에 나오고 23년이 흘렀다. 신춘문예 등단이나 문학상 수상을 통과하지 않고 걸어온 그의 작가 인생은 어땠을까 문득 궁금했다.
“한국 문단엔 교수, 평론가, 작가가 어우러져 끌어주고, 충고도 해주면서 보살펴주는 문화가 있지요. 저는 아니잖아요. 처음엔 저에 대한 비토(거부)가 말도 못 하게 심했습니다. 당시 소설가협회장 하던 사람은 “김진명은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다. 두 번째 소설은 절대 안 나온다”고 했어요.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김진명’이라고 말한 학생을 불러 심하게 야단을 친 대학교수 얘기도 들었어요. 사방에서 적대적으로 대하는 데다, 저의 독자들이 그런 대우를 받는다는 게 불편했습니다. 좋았던 건 문단에서 아무도 연락을 안 한다는 거예요. 어디 불려다닐 일이 없잖아요. 평론가들도 처음에는 저를 미워하다 이제는 무관심으로 가기로 한 것 같아요. ‘고구려’를 내고, 평론가협회장을 하던 교수 한 분이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어요. ‘우연히 고구려를 읽었는데 한국에서 이런 소설이 나올 줄 몰랐다’며 잘 써달라고 하더군요. 그게 평론가와의 유일한 접촉이었습니다.”
상처를 입었는지 물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좋아합니다. 그 책이 얘기하는 건 딱 하나예요. ‘영웅들이 지금은 먼지로 돌아가 있다. 뭘 그렇게 시시비비를 따질 것인가.’”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김 작가의 휴대전화기가 울려서였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여당 지도부 인사였다. ‘최순실 사태’에 대한 김 작가의 의견을 구하는 듯했다. 내친김에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한국 사회는 전방위적으로 붕괴하고 있습니다. 정신의 맥이라고 할까요, 나라와 사회를 지키고 사람을 보호하는 원칙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어요. 언제 어떤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불안하고 뼈대 없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겁니다. 남녀노소, 계층 불문하고 ‘힘이 있을 때 당겨야 한다’ 이런 천박한 배금주의에 물들어 있죠. 대통령 주변도 예외가 아니었던 겁니다. 저는 집이나 땅을 사는 걸 제일 싫어합니다. 부동산은, 사면 오르지요. 그건 결국 미래 세대 몫을 착취하는 겁니다. 세대별 몫이 있습니다. 지금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의 밥상까지 먹어 버린 겁니다. 그러면 스스로 얼마쯤 내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었는데 왜’ 이런 식이잖아요.”
- 정치인들과 소통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까. “사드나 남북 문제도 중요하지만 ‘독도 문제’를 간과하면 안 됩니다. 돈을 가장 짧은 시간에 쏟아붓는 게 전쟁입니다. 남북 간 전쟁이 쉽게 일어나기 힘든 이유입니다. 북한 문제는 미국과 함께 대처할 수 있습니다. 독도는 다릅니다. 일본이 독도를 접수하면 공동 대응이 힘들 수 있어요. 만약 독도를 뺏기면 한국은 예전의 아르헨티나처럼 나라 전체가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여권, 야권 가리지 않고 문제의식을 일깨워주려 합니다.”
- ‘킹메이커’ 등 대선을 소재로 한 작품도 쓰셨지요. 다가올 대선을 어떻게 보십니까. “후보가 되려면 현 시점에서 적어도 5% 정도의 지지율은 갖고 있어야 하는데, 조건에 맞는 사람들은 당을 불문하고 난제를 풀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제3의 후보가 나와야 돼요. 격변기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탄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이 시대의 지도자는 고구려의 다섯 왕 중 어떤 왕을 본받아야 할까요. “6권에서 소수림왕 구부가 이런 말을 합니다. ‘왕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다. 무예가 뛰어날 필요도 지략이 뛰어날 필요도 없다. 나라 전체의 중지를 하나로 모아 정직하게 밀고 나가는 것만이 필요한 소양이다.’”
앉자마자 물었다. “인세가 얼마나 들어왔습니까?”
“꽤 들어왔을 겁니다. 출판사에 책이 몇 부나 팔렸냐고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저축하고 불리는 걸 잘 못해요. 거주하는 집 말고는 부동산이라곤 사본 적이 없습니다. 다행이지요. 그런 걸 좋아하면 글을 잘 못 쓰게 될 것 같습니다.”
‘고구려’ 6권, 예약판매 하루 만에 판매량 1위
문학계에서 김 작가는 독특한 존재다.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불리는 소설가는 몇 명쯤 있지만,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치·외교 현안을 논하는 작가는 그가 거의 유일하다. 2014년 작품 ‘싸드’는 올해 다시 화제가 됐다. 10월 말까지 약 20만부 팔렸다. 그는 현재 역사소설 ‘고구려’를 집필 중이다. 총 10권 안에 미천왕부터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의 치세를 다룬다. 지난 10월에 6권을 냈다. 5권 출간 후 3년 만이다. 6권은 예약 판매 하루 만에 인터넷서점 판매순위 1위에 올라섰다.
“독자 서평을 읽고 안심했습니다. ‘오랜만의 출간이라 수준 이하의 작품이 나올까봐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는 평들이 있더군요.”
출간 소감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김 작가는 독자들의 서평을 꼼꼼히 찾아본단다. 소설 ‘고구려’는 일단 재밌다. 동북아 역사를 배경으로 무협지 같은 서술과 빠른 전개가 어우러져 막힘 없이 술술 읽힌다. 그렇다고 김용의 소설처럼 기억해야 할 초식이나 인물이 잔뜩 나오는 건 아니다. 몇 명의 핵심인물로 구도가 압축되어 있다. 한마디로 독자 입장에서 문턱이 낮다.
김 작가는 짧은 시간에 작품을 완성하는 걸로 유명하다. ‘고구려’가 유일한 예외다. 보통 사전에 어떻게 자료조사를 하는지 물었다.
“인터넷이 발달해 자료조사 자체는 쉬워졌습니다. 문제는 수없이 흩어져 있는 자료를 어떤 시각으로 일관성 있게 뽑아내는가입니다. 현재 세계의 역사를 움직여가는 자들의 의식, 그들 사이의 손익관계를 관찰해 보이지 않는 흉중을 봐야 합니다. 독서는 기본입니다. 자료를 얻는 독서가 아닙니다. 세상의 이치, 문리를 틔우는 독서여야 합니다. 책을 몇 권 읽으면 정보를 얻고, 수없이 접하면 흐름을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어릴 때 독서가 중요합니다. 나이 들어 책을 읽으면 그 한 권의 정보밖에 못 얻는데 어려서 보면 상승작용을 일으킵니다. 거기에서 창의가 나옵니다.”
김 작가의 첫 작품이자 출세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세상에 나오고 23년이 흘렀다. 신춘문예 등단이나 문학상 수상을 통과하지 않고 걸어온 그의 작가 인생은 어땠을까 문득 궁금했다.
“한국 문단엔 교수, 평론가, 작가가 어우러져 끌어주고, 충고도 해주면서 보살펴주는 문화가 있지요. 저는 아니잖아요. 처음엔 저에 대한 비토(거부)가 말도 못 하게 심했습니다. 당시 소설가협회장 하던 사람은 “김진명은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다. 두 번째 소설은 절대 안 나온다”고 했어요.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김진명’이라고 말한 학생을 불러 심하게 야단을 친 대학교수 얘기도 들었어요. 사방에서 적대적으로 대하는 데다, 저의 독자들이 그런 대우를 받는다는 게 불편했습니다. 좋았던 건 문단에서 아무도 연락을 안 한다는 거예요. 어디 불려다닐 일이 없잖아요. 평론가들도 처음에는 저를 미워하다 이제는 무관심으로 가기로 한 것 같아요. ‘고구려’를 내고, 평론가협회장을 하던 교수 한 분이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어요. ‘우연히 고구려를 읽었는데 한국에서 이런 소설이 나올 줄 몰랐다’며 잘 써달라고 하더군요. 그게 평론가와의 유일한 접촉이었습니다.”
상처를 입었는지 물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좋아합니다. 그 책이 얘기하는 건 딱 하나예요. ‘영웅들이 지금은 먼지로 돌아가 있다. 뭘 그렇게 시시비비를 따질 것인가.’”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김 작가의 휴대전화기가 울려서였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여당 지도부 인사였다. ‘최순실 사태’에 대한 김 작가의 의견을 구하는 듯했다. 내친김에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한국 사회는 전방위적으로 붕괴하고 있습니다. 정신의 맥이라고 할까요, 나라와 사회를 지키고 사람을 보호하는 원칙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어요. 언제 어떤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불안하고 뼈대 없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겁니다. 남녀노소, 계층 불문하고 ‘힘이 있을 때 당겨야 한다’ 이런 천박한 배금주의에 물들어 있죠. 대통령 주변도 예외가 아니었던 겁니다. 저는 집이나 땅을 사는 걸 제일 싫어합니다. 부동산은, 사면 오르지요. 그건 결국 미래 세대 몫을 착취하는 겁니다. 세대별 몫이 있습니다. 지금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의 밥상까지 먹어 버린 겁니다. 그러면 스스로 얼마쯤 내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었는데 왜’ 이런 식이잖아요.”
- 정치인들과 소통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까. “사드나 남북 문제도 중요하지만 ‘독도 문제’를 간과하면 안 됩니다. 돈을 가장 짧은 시간에 쏟아붓는 게 전쟁입니다. 남북 간 전쟁이 쉽게 일어나기 힘든 이유입니다. 북한 문제는 미국과 함께 대처할 수 있습니다. 독도는 다릅니다. 일본이 독도를 접수하면 공동 대응이 힘들 수 있어요. 만약 독도를 뺏기면 한국은 예전의 아르헨티나처럼 나라 전체가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여권, 야권 가리지 않고 문제의식을 일깨워주려 합니다.”
- ‘킹메이커’ 등 대선을 소재로 한 작품도 쓰셨지요. 다가올 대선을 어떻게 보십니까. “후보가 되려면 현 시점에서 적어도 5% 정도의 지지율은 갖고 있어야 하는데, 조건에 맞는 사람들은 당을 불문하고 난제를 풀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제3의 후보가 나와야 돼요. 격변기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탄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이 시대의 지도자는 고구려의 다섯 왕 중 어떤 왕을 본받아야 할까요. “6권에서 소수림왕 구부가 이런 말을 합니다. ‘왕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다. 무예가 뛰어날 필요도 지략이 뛰어날 필요도 없다. 나라 전체의 중지를 하나로 모아 정직하게 밀고 나가는 것만이 필요한 소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