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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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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수탈기지 군산, 그들이 남기고 떠난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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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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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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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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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 쌓기 위한 철저한 도시계획
군산 구시가지에는 아직도 적산가옥(敵産家屋)➊의 흔적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생활의 편의에 맞게 증축한 흔적들이 눈에 띄지만, 일제식 가옥으로서의 골격과 모양새는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집과 집 사이에 나 있는 길은 골목이라고 보기에는 폭이 상당히 넓고 구획이 반듯하다. 어촌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불길이 아니다. 철저한 설계 도면에 의해 만들어진 도로이다. 일제가 조선을 강제합병하는 과정을 밟으면서 군산에서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긴 것은 기찻길과 함께 격자형 도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도로를 완성하기 무섭게 일제는 각종 관공서와 금융기관을 짓고, 본토 농공 상인들의 군산 진출을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오늘날의 구 군산세관,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그 역사의 일부이다. 이러한 주요 기관들은 모두 1906년부터 1915년 사이에 지어졌다.
도시의 기초를 다진 직후, 일본인들은 항구 주변 일대를 중심으로 자신들이 살 집을 짓기 시작했다. 군산항의 중심지였던 장미동, 영화동, 금동, 신흥동, 월명동 등의 금싸라기 땅에는 부유한 일본 농공 상인들이 들어와 고급 주택을 세우고 막대한 부를 쌓아갔다. 이로써 군산 한복판에 일본인 전용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당시 포목상으로 군산에서 이름을 떨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의 옛 주인 히로쓰 요시사부로이다. 농장 대지주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군산에서 보기 드물게 상업으로 큰 부와 명예를 거머쥔 자로, 군산 부협의회 의원을 지낼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는 미곡 취인소의 이사도 역임했다. 미곡 취인소란 현물 없이 쌀을 사고파는 곳으로, 오늘로 따지면 증권거래소와 같은 곳이다. 군산의 경제를 움켜쥔 그는 1925년 신흥동의 1,239㎡에 달하는 대지에 363㎡짜리 거대한 집을 지었다.
등록문화재 제183호 ‘신흥동 일제식 가옥’
안채로 들어서면 일(一)자 형태의 좁은 복도가 곧게 뻗어있고, 복도 옆으로는 수많은 방이 연결되어 있다. 1층에는 방이 7개, 2층은 방이 2개이다. 화장실, 욕실, 창고까지 두루 갖춰져 있다. 집 전체가 작은 방들로 꽉 차 있어 마치 미로 속을 걷는 느낌마저 든다. 일본 무가(武家)의 고급 주택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접객실에 이르면 고풍스러운 도코노마(床の間)➋를 접할 수 있다. 한 집의 부와 권위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보통 족자, 화병, 인형, 고급 다기 등을 진열해 두고 손님을 맞는다. 접객실 맞은편으로는 꽃나무와 상록수, 자연석이 오밀조밀하게 어우러진 정원이 펼쳐져 있다. 일설에 따르면 히로쓰가 거주하던 때에는 정원 내 큰 연못을 두어 잉어를 키우고 그 위로는 여러 장식이 달린 다리를 얹어 두었으며, 바닥은 새하얀 자갈로 채워 치밀하게 관리하였다고 한다. 일본인 특유의 정원에 대한 관념이 본토를 떠나 한반도에서까지 그대로 펼쳐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집의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하나 있다. 정원의 끝자락에 보면 시멘트로 단단히 세워진 2층 창고가 슬며시 나무에 가려져 있다. 이곳은 히로쓰가 사용했던 옛 금고이다. 그가 거주하던 시절, 군산의 대부호라면 하나쯤은 모두 갖고 있었던 보물창고로, 대부분 강탈이나 밀수를 통해 얻은 조선의 문화재와 각종 골동품을 모아두던 시설이다. 창고에 감추어져 있던 수많은 선조의 소중한 유산들이 군산 항구를 통해 열도로 빠져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산의 일제 지주들은 대개 군산과 본국에 각각 집을 따로 두고 지냈다. 군산을 점령하고 어마어마한 토지를 소유했음에도 그들에게 이곳은 어디까지나 외국이었다. 열도 밖에서 싹쓸이한 보물은 열도 안으로 모여 개인의 부와 명성을 상징하는 소장품으로 전락했다. 그것 중 대부분은 이미 행방이 묘연한 채 일본의 어느 민가나 유명 박물관의 수장고에 깊이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해방을 맞이한 지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교과서로 배운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 가고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군산 도심가의 작은 집 안에는 책으로 접할 수 없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잊지 말아야 할 아픔의 역사를 후세에 전해주는 노력은 근대 문화재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➊ 적산가옥: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팔린 일본인 소유의 주택.
➋ 도코노마: 일본식 방의 윗자리에 바닥을 한층 높게 만든 곳으로 벽에는 족자를 걸고 바닥에는 꽃이나 장식물을 꾸며놓는다.
글‧강석훈(문화재청 학예연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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