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속도로에서 경북 안동에 들어서면 미소를 지으며 방문객을 맞는 친근한 얼굴이 곳곳에 눈에 띈다. 하회(河回)탈 조형물이다. 하회탈(국보 121호)과 하회탈춤(중요무형문화재 69호)의 고장이자 역사 깊은 씨족 마을이던 안동 하회마을은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다녀가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0년 8월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의 탈을 품은 안동
하회마을에선 매주 토·일요일마다 하회탈춤 상설 공연이 열린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운영하는 관광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6년 동안 관광객 746만여명이 다녀갔다. 하회탈춤은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여러 나라의 초청을 받아 해외 공연에도 나설 만큼 세계화됐다.
하회마을에는 '세계 탈 박물관'도 있다. 봉산탈, 강령탈, 산대놀이탈 등 우리 탈과 중국, 인도네시아, 멕시코, 파푸아뉴기니, 뉴질랜드, 프랑스, 솔로몬제도, 쿡 제도, 아프리카 일대의 탈 2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하회탈춤에 등장하는 부네탈. 과부나 기생, 양반의 첩 등을 연기한다. 눈꼬리와 입 언저리에 웃음기가 배어 있는 얼굴이 특징이다. ‘부네’라는 이름은 ‘분네(분 냄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탈의 도시' 안동에선 최근 전통에 재미를 접목한 신흥 문화 콘텐츠가 뜨고 있다. 안동 문화관광단지 내 유교랜드 원형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퓨전 탈춤 공연 '하이 마스크(Hi Mask)'가 대표적이다. 대사가 없는 '논버벌(non-verbal)' 형태인데, 여러 나라의 탈이 어우러져 신명나게 춤판을 벌인다. 유교 체험공간인 유교랜드에선 탈 만들기, 탈춤 배우기, 옛날 의복 입어보기 등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하회탈은 물론이고 아이언맨, 배트맨 같은 할리우드 영화 캐릭터의 마스크까지 200여점의 탈을 모아놓은 세계 탈 전시관도 둘러볼 수 있다.
◇글로벌 문화 된 탈춤 축제
1997년 시작된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은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했다. 그동안 참가한 외국 공연단만 161개(139개국)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등 각 대륙 문화권의 탈춤이 한 번쯤은 안동을 찾았다. 지난 19년 동안 1000만 명이 넘는 내·외국인이 이 축제를 즐겼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작년에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을 '대한민국 글로벌 육성 축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매년 가을 축제가 열릴 때마다 이색적인 탈과 탈춤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태국 왕실의 전통 가면극 '콘(Khon)' 은 고대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를 토대로 전승됐다. 선과 악의 싸움을 표현하는 이 가면극은 19세기 초 궁중 공연에서 오락적인 공연으로 바뀌었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카니발에 등장하는 아름답고 화려한 탈은 안동에서도 인기다.
2013년 6월 문을 연 유교랜드. 안동문화관광단지 안에 있는 이곳(지하 2층·지상 3층)은 교육과 놀이를 접목해 한국 유교(儒敎) 문화를 이해하도록 만든 테마파크형 체험 공간이다. /안동시
경북미래문화재단 권두현 이사는 "탈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그 나라 고유의 문화를 담고 있는 거울과 같다"면서 "하회탈을 비롯해 각 국가의 특색 있는 탈과 탈춤을 보면 나라마다 전승되는 전설과 역사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20회째인 올해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은 9월 30일부터 열흘간 열린다. 이 기간엔 국내 중요무형문화재인 탈춤 12개, 중국·일본·러시아·프랑스·이집트 등 12개국의 외국 탈춤이 무대에 오른다.
◇세계 탈 연맹, 유네스코 인가 받아
2006년 9월 창립한 세계탈문화예술연맹(IMACO)은 안동에 본부를 두고 있다. 국제탈춤페스티벌이 성공을 거두면서 국제민간단체가 이곳에서 발족한 것이다. 56개국 131개 단체와 개인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이마코는 탈 문화 연구 및 조사는 물론 세계 탈 관련 문건의 자료화, 학술대회, 전시회 등 탈 관련 전문기구로 기반을 다졌다. 창립 8년 만인 2014년 6월엔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 약 당사국 총회에서 탈과 탈춤 관련 국가자문기구로 인가를 받았다. 유네스코 사업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것이었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이마코가 출범하면서 탈 문화의 세계화와 '세계 속의 안동'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세울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면서 "탈춤은 지구촌 공통 언어이기 때문에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 효과를 올리는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