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현 중구청)의 동쪽에 있다’해서 그 이름을 얻은 동인천(東仁川). 그 영역은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 좁게는 기차역과 그 관련 시설이 있는 중구 인현동 일부 정도, 넓게는 용동마루턱을 넘어 신포동과 자유공원 그리고 반대편의 중앙시장과 배다리까지 본다. 역사(歷史)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이 땅에 처음 기찻길이 놓인 1899년부터 2016년 오늘까지 동인천이 만들어 낸 갖가지 서사(敍事)가 있다. 2015년에 발행한 <동인천, 잊다 있다> (유동현 著)에서 발췌한 이야기를 시리즈로 진행한다.   

이 땅에 처음 선뵌 ‘기차통학’
지금의 전철 환경에서는 ‘통학의 낭만’이란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통학생들은 낭만은 커녕 매일 ‘지옥’을 경험한다. 경인선이 전철화 되기 이전, 마주보고 앉을 수 있었던 열차 안은 ‘이동 독서실’ 혹은 ‘이동 카페’ 역할을 했다. 신태범의 ‘인천 한 세기’에는 ‘현 동인천역에서 서울역까지 소요시간은 55분이었다. 객차가 붐비는 일이 드물었다. 객차는 의자도 넓고 등받이가 높아서 차분한 독서실이나 담화실 같은 여유가 있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경인선이 개통(1899년) 된 후 인천 학생들이 기차를 타고 서울로 통학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15년부터다. 당시 인천에는 초등학교이라곤 고작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 박문학교, 영화학교 등 조선인 학교와 2곳의 일본인 학교가 있었다. 이들 학교에선 매년 약 4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중등학교는 일본인의 인천남상업학교, 인천고등여학교와 조선인의 인천북상업학교가 있어 매년 150명 정도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원하는 학생 중 상당수는 서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요즘 같이 하숙이나 자취 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통학을 해야만 했다. 이때부터 이 땅에서 처음으로 선뵈는 ‘기차통학’이란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조선인 기차통학생들은 주로 축현역을, 일본인 학생들은 인천역을 이용했다. 대부분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내렸으며 통학시간은 1시간 정도였다. 남학생은 기차 앞칸, 여학생은 맨 뒤 칸이란 불문율이 생겼고 남학생들은 학교별로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1920년대 초엔 배재 통학생만 20여명으로 돼 한 그룹을 이룰 정도였다.
고일의 ‘인천석금’에는 ‘경인선은 이동교실이자 도서실이었으며 인천문학에 있어서의 제1페이지는 경인기차통학생회 문예부에서 발단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는 ‘이른 여름과 가을에는 축현역 연못가 서늘한 아카시아 숲에서 영시(英詩)를 암송하는 취미도 기차통학생이 아니면 맛볼 수 없었다.’며 기차통학을 당시 젊은이들의 낭만으로 묘사했다.
움직이는 도서실이라는 말처럼 경인선은 인천지역 지식청년들이 정담을 나누고 토론을 벌이던 일종의 문화공간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인선은 민족운동의 산파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하였다. 문학 동호인이었던 그들은 인천 야구의 효시 ‘한용단’과 같은 운동부를 조직해 경기를 통해 단단히 결속하며 민족해방 정신을 내포한 문학운동을 펼쳤다. 등사판 회보도 발행했는데 이러한 분위기에서 ‘습작시대’와 ‘월미’와 같은 잡지들이 탄생했다. 경인기차통학생친목회 문예부가 배출한 인천의 문인들로는 고유섭, 이길용, 김동석, 정노풍, 함세덕, 현덕, 배인철, 유치진, 진우촌 등을 꼽을 수 있다.

축현역 발(發) 금강산 기행
1920년대 축현역에서는 전국 명승지를 여행하는 특별 열차를 운행했다. 1922년 6월 축현역에서는 온양온천 행 왕복 승차권(2등칸 5원, 3등칸 3원)을 발매했다. 1924년 6월 17일 영화학교 6학년 학생들은 직원 3인의 인솔 하에 상오 7시 12분 축현역을 출발해 멀리 소요산 단풍 관광을 마치고 당일 최종 열차로 귀교하는 원족(소풍)을 실시했다.
당시 축현역에서는 금강산 여행도 가능했다. 1925년 가을 축현역장의 발기로 4박5일 금강산 단풍놀이 관광객(탐승단)을 모집했다. 10월 5일 오후 8시 55분 축현역을 출발해 원산에 도착한 후 6일 오전 8시 원산을 떠나 오후 2시 30분 장전역에 도착했다. 자동차로 해금강 입구에 도착해 온정리에서 1박하고 7일 옥류동 구룡폭포 등을 걸어서 둘러보고 8일 만물상을 관람한 후 도정리에서 자동차로 장전역을 경유하여 오후에 원산에 도착했다. 야간 열차로 9일 오전 8시 50분 축현역에 도착함으로써 닷새간의 금강산 기행을 마쳤다. 지금은 꿈에서나 할 수 있는 축현역 발 금강산 열차 기행은 매년 실시되었다. 스키 시즌에는 조선철도국 주관으로 축현역-삼방행(온정리행) 열차도 운행했다.
축현역에서는 일본 구주유람단도 모집했다. 신정 휴가를 맞아 일본 큐슈 지방을 여행하는 상품으로 1일 축현역을 출발해 6일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 금강산 만물상 앞 수학여행 기념사진(송도학원 80년사).



▲ 1961년 제물포고 수학여행(제고 졸업 앨범).

전철 착공 축하쇼 ‘이미자’ 오다
축현역은 승객과 화물을 감당하지 못해 1908년 맞은편(현재의 동인천역)으로 이전했지만 매년 비약적으로 승객 수가 늘어났다. 1914년 26만6천696명에서 1924년 89만5천567명으로 10년간 3.5배 증가했다. 경성역과 평양역에 이어 조선 제 3위를 점하는 역이었다. 역 이용객이 많다보니 1922년 5월에는 조선중앙경제회가 주최하는 기차박람회가 축현역에서 열리기도 했다. 역 앞 마당에서는 수시로 곡마단의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역 구내가 비좁을 뿐만 아니라 플랫폼이 완비돼 있지 않아 비가 오면 승객들은 비를 고스란히 맞아 시설을 확충하라는 요구와 일반화물을 취급하라는 진정을  상부 기관에 계속 올렸다. 이러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해 아예 축현역과 인천역을 합쳐서 화정 해안(신흥동) 부근에 새로운 역(인천중앙역)을 개설할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 1957년 콘크리트 건물 역사가 들어서기 전 판자로 된 동인천역사(경기사진대관).

상인천역은 1931년 12월 말 총공사비 3만6천여 원을 투입하여 승하차용 지하도(통로)를 준공했다. 그동안 승객들은 철길을 무단 횡단해 승하차해서 많은 위험이 있었는데 이 지하도를 통해 안전하게 기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1938년 상인천역 하루 승강객은 4천여 명에 육박했다. 2, 3년 내 평양역을 능가할 태세였다. 화물량도 매일 60-100톤에 달해 상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인천의 면모를 여실히 반영했다. 주요 화물품은 각 주조장에서 산출되는 주류를 비롯해 일용잡화였다.
1939년 인천부내 월미도, 하인천역, 상인천역, 세관구내, 인천신사 앞, 인천항역전 등 6개소에 공중전화가 설치되었다. 이중 상인천역 공중전화가 매월 500통으로 이용도가 가장 높았다. 그만큼 상인천역 주변에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사람들이 많다보니 역 주변에는 항상 다양한 사건이 발생했다. 1916년 인천에서 호열자(콜레라)가 나돌자 경인선의 축현역 정차를 금지했다. 1929년에는 괴질이 발생하자 상인천역에 의사를 배치해 승객들을 대상으로 엄중한 검진을 실시하기도 했다. 도난 사고도 끊이질 않았다. 1923년 일본 오사카에서 온 승객이 대합실에서 현금 80만원이 든 가방을 잃어버린 것을 비롯해 축현역 창고에 보관한 승차권과 기구가 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창구가 번잡한 틈을 탄 위조화폐 사건도 빈번했다.  
상인천역 대합실에서 아기를 낳는 일도 있었다. 빗 장사로 10년 동안 전국을 떠돌던 공주에 사는 박영만(40) 최경순 (34) 부부는 1937년 6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상인천역 대합실에서 옥동자를 분만했다. 현장에서 이를 목격한 경동에 사는 홍의선 씨는 부부에게 축하금 2원을 주었고 상인천역장은 헌 옷들을 선물했다.

▲ 1960년대 동인천역 플랫폼(연표로 읽는 인천현대사). 

1965년 8월 동인천역에 하루 7,500 명이 내려 경인철도가 생긴 이래 최고 기록을 나타냈다. 평상시 3배에 달하는 숫자로 그들은 대부분 송도해수욕장으로 향하는 피서객들이었다. 당시 송도해수욕장에는 하루 1만 명의 피서객들이 몰렸다.
1966년 6월 22일 상오 11시부터 3시간에 걸쳐 인천시내 각 지점에서 공해도를 측정했다. 동인천역전 72폰(phone), 인영극장 앞 76, 경동사거리 70, 대한중공업(현 현대제철) 앞 60, 답동사거리 70이었다. 공장지대보다 오히려 동인천 지역의 공해도가 더 높았다. 그만큼 동인천에는 차량과 사람들의 통행이 많아 매우 번잡했다는 증거이다.  

▲ 1955년 '동인천역'이란 이름을 얻고 1957년에 신축한 동인천역사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다보니 특이한 일도 있었다. 1970년 7월 20일 숭의동에서 라디오전파상을 하는 서진기 씨는 동인천이 활활 타오르는 꿈을 꾸었다. 이상한 꿈을 꿨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동인천에 나가 역 앞에서 1,400원으로 주택복권 14매 구입했다. 열흘 후 그는 TV추첨 방송을 보던 중 졸도했다. 1등에 당첨된 것이다.
승객들이 계속 늘어나자 철도청은 1971년 3월 30일 서울역과 동인천역에 처음으로 자동승차권 판매기를 설치했다. 지금은 역무원이 승차권을 판매하는 것이 오히려 낯선 풍경이지만 당시 자동판매기는 매우 신기한 ‘물건’이었다. 창구 줄이 텅 비어 있어도 사람들은 호기심에 자동판매기 앞에 줄을 섰다. 

▲ 1966년 동인천역 광장 택시 승강장(연표로 읽는 인천현대사).

1899년 경인철도가 놓인 이래 65년 동안 철마는 외길로 다녔다. 단선(單線)이었기 때문에 상하행선 기차가 마주치면 기차 한쪽은 멈추고 기다려 줘야했다. 복선 공사는 일제강점기에도 꾸준히 시도되었지만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경인지역이 산업화가 되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단선 기찻길은 폭주하는 수송량을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1962년 5월 19일 경인 복선화 공사를 착공했다. 6.25 전쟁 전에 이미 복선 노반이 어느 정도 돼 있어 1년이면 완공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전쟁 중에 일부 구간이 파괴되었고 무엇보다 자금난으로 진척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복선이 되었다.

 

▲ 외길 65년 만에 두 길이 된 경인선. 1965년 9월 18일 동인천역~영등포역까지 복선이 되었다.

1965년 1월 12일 동인천역-주안역(4.5㎞), 그해 9월 18일에 주안역-영등포간(23.3㎞) 공사를 끝냄으로써 동인천역에서 영등포역 까지 두 선의 철길이 깔렸다. 한국철도 65년 만에 복선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복선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열차를 타고 동인천역을 지나 인천역에 도착하는 시승 행사를 했다. 
복선이 깔렸지만 계속 늘어나는 수송량을 견딜 수 없게 되자 1971년 4월 7일 수도권전철화 계획에 따라 전철 공사가 시작됐다. 새로운 한국철도의 장을 연 이날 기공식은 인천공설운동장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기공식 후 수많은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축하공연이 열렸다. 당시 ‘엘레지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가수 이미자가 무대에 섰다. 말로만 듣던 이미자가 인천에 오자 그야말로 구름관중이 모였다.

▲ 1971년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경인전철 착공식. 축하공연에는 가수 이미자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참석했다. 착공식보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미처 운동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지금의 광성고 언덕 부근에
새까맣게 올라가 있다.(화도진도서관)

1호선 전철은 1974년 8월 15일 개통되었다. 그날 광복절 행사장에서 북한의 사주를 받은 조총련 문세광이 쏜 흉탄에 대통령부인 육영수 여사가 숨을 거둔다.  

▲ 1974년 8월 15일 경인전철 개통. 비 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전철'을 마중 나왔다.

 글 유동현 <굿모닝인천>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