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로 해역 4차 발굴 조사 잠수 통제실 등 첨단장비 갖춘 전용 발굴船 '누리안호'서 진행 40년간 발굴한 해역 25건… 26일 목포서 수중발굴 특별전
"잠수사들 올라옵니다!"
팀장의 신호가 떨어지자, 발굴을 끝낸 잠수사 2명이 잠수 스테이지(잠수사의 이동을 돕는 장비)를 타고 바닷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2인 1조로 물속에 들어간 베테랑 잠수사 박용기(56)-이성규(35)씨가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배에 올랐다. 머리엔 통신장비와 조명, CCTV가 달린 보호구를 쓰고, 손목엔 다이브 컴퓨터, 등에는 보조공기탱크를 짊어졌다. 이성규씨가 막 건져 올린 도가니(쇠붙이를 녹이는 그릇) 한 점을 내놓자 박수가 터졌다. "뿌연 바닷속을 더듬더듬 손으로 짚는데 이게 집히더라구요. 처음엔 나무토막인 줄 알았어요."
이미지 크게보기1976년 10월 26일 중국 무역선 ‘신안선’ 발굴이 시작되면서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역사가 시작됐다. 사진은 2010년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에서 고려 때 선박 ‘마도 2호선’을 수중 발굴하는 모습.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지난 23일 전남 진도 벽파항에서 500m 떨어진 해상(海上). 고무보트를 타고 5분쯤 달려 도착한 바다 위 수중 발굴선 '누리안호'에서는 잠수사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등 20여명의 수중문화재 발굴단원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4월부터 명량대첩로 해역 제4차 수중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다. 잠수 10년 경력의 노경정 학예연구사는 "태안 앞바다보다 조류가 세고 시야는 탁해 30㎝ 앞도 보이지 않는 열악한 조건"이라고 했다.
오는 15일 끝나는 올해 4차 조사에선 이날까지 유물 121점이 출수됐다. 청자가 76점으로 가장 많고, 석환(돌포탄) 2점, 노기(弩機·시위를 걸고 방아쇠를 당겨 화살을 추진시키는 무기의 방아쇠 부분), 사슴뿔, 철기, 청동류가 나왔다. 명량대첩로 해역 전체 조사 면적 13만7000㎡ 중 7%만 조사가 끝났다. 문환석 수중발굴과장은 "이 해역은 명량해전이 벌어졌던 우수영, 울돌목과 약 4㎞ 거리에 있다. 2012년 1차 발굴 이후 소소승자총통 3점을 비롯해 석환, 노기 등 무기류가 계속 나오고 있다. 당시 전투에서 사용됐던 전함이나 무기가 매몰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신안선 발굴 40년… 수중고고학 깨우다
올해는 신안선이 발굴된 지 40주년 되는 해다. 1976년 10월 26일 신안선 발굴이 시작되면서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역사가 시작됐다. 신안선은 1323년 중국 저장성 닝보에서 출발해 일본 하카타항으로 가던 거대 무역선으로,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서해안 갯벌 깊숙이 파묻혀 있던 선박은 650년 만에 잠을 깼다. 1975년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작업하던 어부의 그물에 청자 꽃병 등 도자기 6점이 걸려 올라오면서 이듬해 발굴이 시작됐다. 11차례 조사를 통해 유물 2만4000여점과 28t에 달하는 동전 약 800만개가 나왔다.
이귀영 해양문화재연구소장은 "신안선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첫 본격적 수중 발굴이었다. 당시의 해양 실크로드 경로, 조선(造船) 기술, 동아시아 무역품을 알 수 있는 방대한 사료"라며 "수중문화재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고, 이후 수중문화재 발견 신고가 급증해 지금까지 전국에서 300여건이 접수됐다"고 했다.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시실에는 복원된 신안선 선박이 전시돼 있다. 최대 길이 34m, 폭 11m, 중량 260t급에 달하는 초대형 선박이다. 이 소장은 "신안선은 발굴 당시 40% 정도만 남아 있었다. 개펄에 파묻혀 있었던 덕분에 일부가 보존될 수 있었다"며 "바다에서 한 조각씩 꺼낸 다음 보존 처리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거쳤다. 발굴에서 보존 처리, 복원, 전시에 이르기까지 약 30년이 걸렸다"고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지난 23일 진도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발굴 작업을 끝낸 잠수사들이 선박 위로 올라오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복원 전시 중인 신안선. 발굴에서 보존 처리, 복원, 전시에 이르기까지 약 30년이 걸렸다. /김영근 기자
지난 23일 전남 진도군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잠수사들이 70여분간의 수중발굴 작업을 마치고 수중발굴 전용선인 '누리안호'에 오르고 있다./김영근 기자
지난 23일 전남 진도군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잠수사들이 70여분간의 수중발굴 작업을 마치고 수중발굴 전용선인 '누리안호'에 오르고 있다./김영근 기자
전남 진도군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올해 건져올린 각종 유물들./김영근 기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직원들이 전남 진도군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올해 건져올린 각종 유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맨 오른쪽이 이귀영 소장./김영근 기자
신안선 발굴 이후 발굴된 해역은 총 25건. 40년 동안 고선박 14척이 확인됐고,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도자기가 9만8898점에 달한다.
2012년 완공된 발굴 전용 선박 누리안호(290t, 길이 40m, 폭 9m)는 수중 발굴 현장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잠수통제실, 유물 인양 크레인과 감압 챔버 등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 귀영 소장은 "북한 지역에도 해양문화유산이 상당히 많아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벽란도(고려 때 예성강 하류 국제무역항) 공동 발굴도 기대한다"고 했다. 연구소는 오는 26일부터 수중 발굴 40년의 역사와 성과를 돌아보는 특별전과 수중 문화재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다음 달에는 중국 명대 침몰선인 '난아오(南澳) 1호선'을 소개하는 국제교류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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