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의 국가 귀속 문제가 1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작년 한글날 소장자가 “1000억원을 주면 국가에 주겠다”고 밝히면서 그와 정부 간에 시작된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에 앞서 소장자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존재 자체가 불투명 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와 의미, 사용법 등을 밝힌 책으로 1446년 발간됐다. 여러 부가 만들어졌지만 일제시대에 대부분 소실됐고, 간송본(간송미술관 소장)만 남아있었다.
그러다 지난 2008년 배익기씨가 경북 상주의 자택에서 다른 본을 발견해 소장하고 있다며 공개했고, ‘상주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간송본에는 없는 주석이 쓰여있고 보존 상태가 좋아 가치가 더 높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배씨가 상주본을 공개한 직후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2012년 사망)씨가 “내가 갖고 있던 상주본을 배씨가 훔쳐갔다”며 배씨를 고소했다. 민사소송에선 “상주본의 소유권이 조씨에게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는 배씨가 절도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조씨는 2012년 배씨에게 실물을 넘겨받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소유로 인정받은 상주본을 국가에 기증한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배씨는 “상주본은 내가 발견자이자 소유자”라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작년 한글날에 “1000억원을 보상하면 국가에 주겠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문화재청은 상주본을 회수하기 위해 소장자 배익기씨와 계속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8월 등 올해에만 3번 배씨를 만났지만 협상에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씨는 “문화재청 등이 내가 조씨의 사업장에서 상주본을 훔쳤다고 사건을 조작했고, 그 때문에 구속기소된 뒤 무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며 “그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관계자들이 사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배씨는 “작년에 말한 1000억원은 관계자에게 죄를 묻지 않을 때의 반납 조건”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애초 “배씨에게 돈을 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대기업 및 독지가 등의 후원을 받아 보상금을 마련하는 방법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배씨의 요구 사항인 1000억원을 수용하기 어려워 진전되지 않고 있다. 환수소송이나 강제집행 등은 부작용을 우려해 현재는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26일 오전 9시30분쯤 상주본을 갖고 있는 배씨의 집에서 불이 났다. 당시 경찰은 배씨에게 상주본의 소실 여부에 대해 물었지만 배씨는 답변하지 않았다. /TV조선 캡처
한편 상주본이 온전히 존재하는지가 문제되고 있다. 작년 3월 배씨의 집에 불이 났을 때 상주본이 훼손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배씨는 그와 관련된 대답은 회피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서적이 온전히 있는지 사진으로라도 확인해달라”고 배씨에게 여러 번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배씨와 합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우선 상주본의 상태라도 확인하고 싶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