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막내딸을 시집보내면서 어미는 애틋한 모정을 혼수품에 담았다. 분홍 종이 위에 고운 한글 글씨로 써내려간 목록이 무려 200여 개. 길게 펼치니 5.4m에 달한다. 장신구부터 그릇, 바느질 도구까지 살림에 쓰이는 물건을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1837년 9월 13일(정유년 음력 8월 13일), 조선 23대 왕 순조(재위 1800~1834)의 왕비 순원왕후(1789~1857)가 막내딸 덕온공주(1822~1844)의 혼례를 치르며 보낸 혼수품의 목록이다.
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에게 보낸 친필 한글 편지. 1838~1843년 추정. /국립한글박물관
조선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는 불운했다. 혼례 당시 공주에게 남은 가족은 어머니 순원왕후뿐이었다. 공주가 9세 때 오빠인 효명세자가 세상을 떠났고 2년 뒤엔 둘째 언니 복온공주와 큰언니 명온공주가 잇따라 숨을 거뒀다. 13세 때는 아버지 순조가 세상을 떠났다. 삼년상 후 치러진 덕온공주의 혼례는 순원왕후의 주도로 이뤄졌다.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철민)에서 13일 개막하는 기획특별전 '1837년 가을 어느 혼례날-덕온공주 한글 자료'에 당시 자료들이 나왔다. 전시장 한복판에 놓인 당시의 혼수 발기(물건의 이름을 죽 써놓은 글)를 보면 하나 남은 막내딸의 혼례에 쏟은 어머니의 사랑이 드러난다. 덕온공주의 혼인생활을 알 수 있는 한글 편지 등 41점을 선보인다.
순원왕후는 사위 윤의선(1823~1887)에게 자주 편지를 보내 딸의 안부를 챙겼다. 편지 내용을 보면 공주는 결혼 후 병치레가 잦았고 치료를 위해 궁으로 들어가 지내기도 했다. 궁에서 치료받는 공주의 약을 사위에게 부탁하는 편지도 있다. "녹용은 얻어 보낼 것이니 다섯 첩씩 지어 들여보내소. 재료 좋은 것으로 하소." 하지만 혼례한 지 7년 되던 1844년 공주는 2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인 1845년 순원왕후가 딸의 제사를 위해 보낸 음식 목록이 끝자락에 전시됐다. 박물관 관계자는 "하나 남은 딸마저 떠나 보낸 순원왕후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역사가 기억하는 권 력자 순원왕후가 아닌 '어머니 순원왕후'를 만나는 전시"라고 했다.
19세기 한글 자료를 21세기 첨단 기술로 볼 수 있게 꾸민 감각이 돋보인다. 편지 원문에 태블릿을 갖다 대면 오늘날의 한글 문장으로 바뀌는 식이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노리개, 비녀 상자 등 당시의 혼례 물품도 일부 전시됐다. 12월 18일까지. (02)2124-6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