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제도가 미궁(迷宮) 속으로 빠진 모양새다. 문화재청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인간문화재)로 인정 예고했던 양성옥(62)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에 대한 인정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이날 열린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지난 2월)인정 예고 후 여러 의견이 제기되는 등 상황을 고려해 전통 무용의 전승 확대를 위한 적절한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보류한다'고 의결했기 때문이다.
태평무 보유자 심사를 받았으나 인정 예고에서 제외됐던 이현자씨가 지난 3월 청와대 앞에서 인정 예고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보류 결정은 문화재청이 지난해 초 새로 마련한 무용 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 기준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개방형'으로 바뀐 새 기준은 유파(流派)와 무관하게 자유롭게 심사를 받을 수 있게 했고, 심사 총점 100점 중 75점이 '전승 능력'이다. 국가가 각 유파의 '후계자'를 서열에 따라 지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후학에게 전승할 수 있는 '실기(實技) 능력'을 더 중시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막상 서열상으로 태평무 전수조교 이현자(80)씨보다 아래인 양성옥 교수가 인정 예고되자 무용계 인사들이 이의 신청서를 내는 등 파장이 일었다. '제자가 스승을 제치고 어떻게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느냐'는 이들의 논리는 전승 능력을 우선시하는 새 선정 기준에 정면으로 반기(反旗)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용계 인사 A씨는 "개방형 심사 때는 별말 없이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반발하고 있다"며 "자신들이 선호하는 인사가 보유자가 될 경우엔 제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냥 묻어가려 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가 지난 6개월 내내 자신들이 정한 원칙도 분명히 내세우지 못한 채 일부 무용계의 반발에 끌려다니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태평무 심사를 받은 4명 중에서 양성옥 교수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보유자로 인정 예고한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최종 결정을 계속 미뤘다. '오는 10월까지 제도 개선안을 만들어 다시 결정하겠다'는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것인지도 불투명한데다, 보유자 선정을 뒤집지 않는 이상 무용계 인사들의 반발이 멈추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태평무와 함께 심사가 이뤄졌던 승무와 살풀이춤은 이미 '1위'가 나왔 지만 보유자 결정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오는 10월에 다시 보유자 인정 예고를 한다고 해도 최종 결정까지는 또 몇 달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결국 심사 후 1년 이상을 허송세월하는 셈이다. 그동안 밖에서는 '국가가 무형문화재 제도를 통해 보호해 주려는 것이 과연 예술인가, 아니면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이권(利權)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