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경주박물관 '고려시대의 경주'展 황룡사, 고려 때도 호국 사찰… 대형기와·청자로 웅장함 유추 13세기 구결 흔적도 첫 공개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고려시대의‘금동팔각탑’. 높이 21.0㎝. /국립경주박물관
"제후도 탐낼 만한 집/ 여름에도 덥지가 않아/(중략)/ 전각은 장엄하고 화려함을 자랑하며/ 허공을 향해 높이 날아갈 듯하다."
신라 최대의 호국(護國) 사찰이었던 황룡사는 고려시대에도 건재했다. 신라가 고려에 병합되면서 왕족은 사라지고 왕궁도 폐허가 됐지만 황룡사는 경주는 물론 고려 전체를 대표하는 사찰로 남았다. 12세기 말 고려 명종 때 문인 김극기(金克己)가 남긴 시 '황룡사'를 보면 당시 사찰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방문객들은 사찰에서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고 9층탑에 올라 도시 경주를 한눈에 내려다봤다.
황룡사 9층탑은 고려 때만 4차례나 벼락을 맞아 무너졌지만 그때마다 고려는 국가적 공력을 들여 재건했다. 하지만 1238년 몽골 침략으로 황룡사는 9층탑과 전각까지 모조리 불탔다. 몽골이 왕도를 놔두고 구석인 경주까지 와서 황룡사를 불태운 것도 이 사찰이 호국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황룡사를 없애 고려의 저항 의지를 꺾고자 했던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고려시대의 경주'는 신라 멸망 이후에도 건재했던 경주의 속모습을 보여준다. 고려 때의 경주가 어떻게 변했는지 도시 경관과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엮었다. 신라의 서라벌이 '경주'라는 현재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고려 때부터다. 전시 초반부에선 고려시대 경주 행정의 중심이 된 읍성과 지역사회 운영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려 읍성은 1012년(현종 3)에 축성됐다. 최근 발굴조사 중 읍성 성벽 안쪽에서 발견된 석재들이 전시장에 나왔다. 이용현 학예연구사는 "신라 왕궁이나 사원 같은 주요 건물을 해체할 때 나온 부재들로 추정된다. 신라 건물을 파괴하면서 나온 석재를 재활용해 새로운 고려 질서를 세운 것"이라고 했다.
눈에 띄게 화려한 전시품은 없다. 박물관은 "신라나 조선시대에 비해 고려 때의 경주는 학계 조사와 연구 자료가 많지 않아 전시 준비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고려 때의 웅장했던 황룡사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대형 기와와 청자들이 소박한 전시품 중에서 이목을 끈다. 황룡사지에선 고려청자가 130여점 발견됐다. 대접, 접시, 찻그릇 등 기종도 다양하고, 시기도 고려 전체에 걸쳐 망라돼 있다. 경주 호장(戶長·향리의 우두머리)의 성명, 생년, 본관 등이 기록된 1523년 문서인 '부사선생안', 13세기 고려시대 구결이 남아 있는 기림사 소장 '자비도량참법'은 처음 공개되는 자료들이다.
경주는 고려 때에도 문화의 소비 중심지로서 영향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왕경을 중심으로 경주 곳곳에서 출토된 중국 자기, 불국사 성보박물관 부지에서 나온 절정기의 고려청자 등을 통해 수도 개성 못지않은 경주 귀족들의 고급 자기 소비 경향을 엿볼 수 있다. 9월 4일까지. (054)740-75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