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초기본과 완성본, 34억 들여 각각 다시 만들어 "일연이 생략·압축한 내용까지 원전 찾아 고치자" 방침에 "원문 손대면 삼국유사 아냐" 반론
일연 스님이 700여년 전 삼국유사를 쓰면서 인용 자료를 압축·생략한 부분까지 지금 고쳐서 '완성본'을 만들어야 할까?
경상북도는 지난 2015년부터 삼국유사의 목판을 만드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 전하는 삼국유사는 조선시대 이후 목판 인쇄본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17년까지 34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삼국유사 목판 사업은 최근 1단계를 끝내고 2·3단계에 접어들었다. 1단계는 조선 중종 7년(1512년) 간행된 조선중기본 삼국유사의 목판을 복각(復刻)하는 작업이다. 2단계는 조선 태조 3년(1394년) 간행된 판본들을 토대로 조선초기본 삼국유사 목판을 복각하는 것이다. 3단계는 조선초기본과 조선중기본 삼국유사의 오·탈자를 바로잡고, 인용된 자료들의 원래 내용을 반영하며, 본문과 주석이 뒤바뀌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정리해서 경상북도본 삼국유사 목판을 만들고 이를 정본(定本)으로 자리잡게 하겠다는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 학자들이 중심이 돼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2단계는 올해 말, 3단계는 내년 상반기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경상북도 군위군 사라온이야기마을 안에 재현된 전통 공방에서 삼국유사 목판을 판각하는 모습. 경상북도는 최근 조선중기본 삼국유사 목판을 복각한 데 이어 조선초기본과 경상북도본 목판을 차례로 만들 예정이다. /한국국학진흥원
그러나 이 같은 계획에 대해 상당수 학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국내뿐 아니라 중국·일본 자료를 많이 인용했고 종류도 사서(史書)와 금석문, 사찰·승려 기록, 불교경전 등 다양하다. 3단계 경상북도본 삼국유사는 인용된 부분을 원전과 대조하여 압축·생략·대체된 부분은 원전 내용을 본문에 반영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글자가 늘어나면 10행 21자로 이루어진 삼국유사 목판의 틀을 바꾸는 것도 고려한다. 경상북도는 세월이 흐르면 경상북도본 삼국유사가 완성본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고대사를 전공하는 한 학자는 "자료 인용과 서술 방식에도 일연 스님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삼국유사 원문에 손을 대면 더 이상 삼국유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고대사학자는 "삼국유사는 기억력이 비상했던 일연 스님이 인용 표시 없이 인용한 부분도 많다"며 "교감본을 만든다고 해도 상당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해 내년까지 끝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2단계 작업도 문제다. 우선 완본(完本)이 전해지는 삼국유사 조선중기본과 달리 조선초기본은 아직 학술적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고려 충렬왕 7년(1281년) 완성된 삼국유사는 고려시대 판본은 전해지지 않고 조선초기본이 7종 남아 있는데 완본은 없다. 조선초기본의 전반부는 연세대에 소장된 파른본으로 복원이 가능하지만 후반부는 그 내용이 담긴 학산본 소장자가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후반부의 상당 부분이 들어 있는 범어사본과 학산본을 필사한 고려대본을 토대로 작업한다는 방침이지만 완전한 복각은 어렵다는 지적이다.
경상북도가 복각한 삼국유사 조선중기본 목판은 서울대 규장각 소장본을 바탕으로 했다. 가로 620㎜, 세로286㎜, 두께 40㎜로 무게가 2.3㎏ 정도이며 본문 112장과 표지·간기(刊記) 등 총 115장이다. 앞·뒷면에 잔글씨까지 포함해 8만9354자 가 새겨졌다. 목판 재료는 수령 40년 이상 산벚나무를 3~10년 동안 자연 건조해서 사용했다.
삼국유사 목판 사업은 한국국학진흥원이 실무를 맡았다. 작년 11월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麟角寺)가 있는 군위군 사라온이야기마을 안에 전통 공방의 모습을 재현한 도감소 공방을 설치했고, 전국에서 선발된 각수(刻手)들이 삼국유사 목판을 판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