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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애국’을 묻다

이원규 작 『마지막 무관생도들』

“헌병 경찰이 와서 내가 어디 갔냐고 물으면 평소에도 행적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아니고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섰다고 말해요. 십여 일 계속 헌병과 형사가 탐문하면 내가 망명길에 오른 걸로 생각하고, 이십여 일 계속되면 내가 무사히 탈출한 걸로 여겨요.”
아내는 태연했다.
“각오한 바예요.”
“당신에게 미안하오. 아이들을 잘 부탁하오.”
“저는 괜찮아요. 당신은 가정보다 더 큰 조국을 구하러 가시는 거니까요.”이원규의 『마지막 무관생도들』 중 지석규(이청천) 장군이 집을 떠나는 장면.

인천 출신 소설가 이원규 선생

대한제국 마지막 무관생도 45명에 대한 이야기
인천 출신 소설가 이원규 작가가 100년 전 세운 대한제국 무관학교에 다니던 생도들 45명의 이야기를 역사소설로 엮었다. 『마지막 무관생도들』(푸른사상 발간)은 대한제국 마지막 무관생도 45명에 대한 이야기다. 대한제국 무관학교는 1909년 갑작스런 순종황제의 칙령에 의해 군부가 폐지되고 학교는 해산되는 아픔을 겪는다. 이후 이들은 일본 육군사관학교 예비과정인 5년제 육군중앙유년학교에 입학한다.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면 평탄하게 살았을 명문가 출신들이었지만 갑자기 망국의 역사에 내던져졌다. 풍전등화에 내몰린 국운처럼 갈등으로 흔들리는 운명은 이들에게도 다가왔다.
작가는 그동안 인천과 덕적도를 무대로 분단문제를 쓴 장편 『황해』, 소래포구 실향민들의 삶을 그린 단편 「포구의 황혼」, 부평의 기지촌 이야기 등 분단소설을 주로 썼다. 그러다가 『약산 김원봉』『김산 평전』 그리고 인천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에서 법살을 당한 조봉암 선생의 생애를 다룬 『조봉암 평전』 등 역사인물 평전으로 영역을 넓혔다.
“나이가 들면 감성은 떨어지지만 인생에 대한 통찰은 깊어집니다. 동국대와 인하대, 새얼문화재단 문예교실에서 강의하면서 많은 작가들을 키웠습니다. 지금은 평전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받은 『비극의 군인들』 연구서와 자료 메모가 모티브
이 작가가 『마지막 무관생도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10여 년 전. 동국대에서 소설을 가르칠 당시 같은 사학과 이기동 교수로부터 대한제국의 무관생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작가가 역사를 소재로 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던 분이었다. 그 교수가 준 것은 『비극의 군인들』이라는 연구서와 자료 메모였다. 그러나 당장 원고를 쓸 수 없어 10년을 묵혔다. 그러던 와중에 ‘인천 사람의 책무이자 의무’로 여겼던 『조봉암 평전』을 3년 간 죽을힘을 다해 썼다. 2013년 그 책이 출간된 직후 문학지인 『문학선』에서 마지막 무관생도 연재 요청이 들어왔다. 2013년부터 2015년 말까지 원고지 1천800매 분량을 연재했다. 연재 도중, 그리고 끝난 뒤에도 계속 수정했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실록과 같습니다. 저의 상상력으로 지어진 이야기, 허구보다는 사실에 가깝습니다. 주석이 260개나 됩니다. 그밖에도 자료도 1천 건 이상 읽었고 이 책에 공개 안 한 자료도 많습니다. 자료를 수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팩트를 중심으로 잡고 소설적 형식을 가미했기에 팩션(fact+fiction)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09년 8월 2일 대한제국 무관학교의 폐교와 해산상황을 본국에 보고한 조선통감부 경시총감의 보고서.

일생을 독립전쟁에 바치고 광복군 총사령이 된 지석규(이청천), 끝까지 일본군 장교복을 입고 광복 후 국군창설 주역이 된 이응준, 그리고 일본군 중장까지 승진하고 전범으로 처형된 홍사익이 중심인물이다. 그들은 알려진 인물, 이 작가는 10여년 간 나머지 인물들의 삶을 뒤쫓았다. 국회도서관에 출근 하다시피했고 일본국 관보, 일본국립공문서관도 뒤졌다.

마지막 무관생도들 중 가장 빛나는 존재인 이청천(재학시 본명 지석규) 장군. 광복군 사령관을 지냈다. 미군정의 결정에 의해 국군 창설의 주도권을 이응준에게 넘겨주었다.

군(郡) 신문, 인물들의 족보, 가문 종친회 홈페이지도 뒤졌다. 45명의 이야기는 그렇게 소설로 복원되었다. 인천 출신도 2명 있다. 김영섭, 박창하 선생이다. 김영섭은 강화출신으로 뒷날 내리교회 목사를 하셨고, 박창하는 용동 사람으로 일찌감치 전역해 체육계의 선구자로 일했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 모두 친일로 지목되었다. 에필로그에 45명의 말년 삶을 정리했는데 몇 명은 끝내 찾지 못했다.

아직 밝혀내지 못한 분들 제보 있었으면…
45명이 다 실존인물이었기에 이들의 삶을 고증하고 확인하는데 오랜 시간을 거쳤다. 혹시라도 잘못된 내용이 소개되면 유족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45명의 인생을 쫓아가면서 이들 중 3~4명만 빼고 친일의 길을 걸은 것은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여겼다. 이런 부분도 오랫동안 작가가 책을 집필하지 못한 이유였다.
“젊었을 때 이 책을 썼다면 지금보다 더 과격하게 저의 생각이 많이 표출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하고 곰곰이 자문해 봅니다. 나이가 들고 연륜이 생기면서 사람과 사물에 대한 관용이 생기네요.”

▲문학지인 '문학선'에 연재되었던 마지막무관생도들.

이 작가는 이 책을 현대사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힌다. 예전보다 현대사를 가르치는 학교 수업이 적어져서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데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마지막 무관생도들 45명의 이야기는 100년 전 우리의 자화상이기에 굴곡진 역사에서 자신들 돌아보자는 뜻도 담겨있다.

      ▲기울어 가는 조국을 구하겠다고 결심하고 일본을 건너간 대한제국 마지막 무관생도들이
      일본육군중앙유년학교 재학 중 교관단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대부분은 일본군에
       충성스럽게 복무했지만 이청천, 조철호, 이종혁, 이동훈 등은 결의를 실천해 독립투쟁을 했다.

글을 쓰는 작업은 굉장한 중노동이다. 그래서 이 작가도 체력관리를 위해 일주일에 4회 이상 테니스를 친다. 정신적으로는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수행한다. 지금은 나이 때문에 젊었을 적 수 없이 했던 ‘폭풍집필’은 힘들지만 시간을 분배하며 지치지 않게 원고를 쓴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끝내 밝혀내지 못한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는 분들의 제보를 부탁했다. 그 이야기가 모이면 다시 보충자료를 합해 증보판을 낼 생각도 있다.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