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함께 발전한 우리 인형극의 양상

한국의 인형연행은 고려시대 이전에 기반이 마련되고, 제의적 문맥과 오락적 문맥에 걸쳐 연행이 이루어졌다. 상고시대에서 삼국시대를 거쳐 남북국시대로 이어지는 동안 인형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되었다. 인형이 상·장례에서 망자(亡者)를 의미하는 것으로 쓰였는가 하면, 나무나 뼈로 만든 인형이 신격화되어 사당에 모셔지기도 했다. 또 망자의 봉사자, 지킴이 등의 의미를 갖고 함께 묻히기도 했다. 때로는 전쟁에서 적군을 위협하기 위해서, 또는 적을 속이기 위한 위장용 병사로, 그리고 아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술책의 하나로 인형이 이용됐다. 여기서 우리는 인형을 모시고 섬기거나, 나아가 놀리고 꾸며대고 진열하는 인형연행 기반의 형성과 존재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고려시대 역시 제의적 문맥과 오락적 문맥 모두에 걸쳐 인형연행이 벌어졌다. 제의적 인형연행의 경우, 궁중나례에서 연행자가 황소 인형에게 일정한 행위를 직접적으로 하는 연행 방식이 나타난다. 또한 팔관회 잡희(雜戲)에서 움직임을 보이는 동적 인형(動的 人形)이 등장하기도 한다. 오락적 인형연행 역시 활성화되었다. 이규보(李奎報)의 시를 통해, 뛰어난 조종술을 가진 인형 조종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들이나 단청을 만들었다가 순식간에 거두어 버리는 내용의 인형연행이 벌어졌음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양상은 제의적 인형연행의 다양화와 오락적 인형연행의 발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제의적 인형연행의 경우, 마을 공동 제의, 기우제, 제웅치기, 주술적 저주, 궁중 내농작(內農作)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신격이나 초자연적 존재로 전환된 인형들이 등장하였다. 특히, 궁중 내농작에서 나타나는 인형들의 진열이라는 연행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1년 농사짓는 모습과 풍년이 들어 백성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진열을 통해 표현되었다. 이러한 진열이라는 연행방식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산대잡상놀이라는 오락적 인형연행에서도 등장한다. 산대잡상놀이는 이미 널리 공유된 전형적 상황을 정교하게 꾸며진 인형들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산대잡상놀이는 조선 후기에 성행했다.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오락적 인형극의 양상은 발전이라 말할 수 있다. 궁중과 민간을 막론하여 인형연행이 확산되었다. 다양한 형태와 개성적 모습을 한 인형이 등장하고, 인형 연행술 역시 발전하였다. 말을 하는 유언 인형(有言 人形)의 등장과 극적 구조를 갖춘 인형극 역시 여러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오락적 인형연행의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통해 막대 인형, 줄 인형, 손 인형이 등장하며 현전하는 ‘꼭두각시놀음’과 동일한 무대 구조가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형연행자들의 목소리 연기와 인형 조종이 모두 갖추어진 명실상부한 인형극이 성행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인형극의 고대적 양상 ‘꼭두각시놀음’

현재까지 전승되는 전통적 인형연행은 제의적 문맥에서 연행되는 것과 오락적 문맥에서 연행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의적 인형연행인 경우 대체로 마을굿이나 무당굿 속에서 종속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등장하는 인형들의 제작 수준이나 인형을 연행하는 방식은 투박하고 거칠다. 이에 비해 오락적 인형연행은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독립적으로 그 연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형들의 제작 수준이나 연행 방식의 경우, 제의적 인형연행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정교하고 세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오락적 인형연행을 보통 전통인형극이라 하는데, ‘꼭두각시놀음’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꼭두각시놀음은 조선시대 유랑광대패 중 하나인 남사당패에 의해 전승되어 온 인형극이다. 꼭두각시놀음의 연행은 무대로 이용되는 포장막 속에 숨어서 인형들을 놀리는 조종사들(대잡이, 대잡이손)과 포장막 밖에 앉아서 반주를 하는 악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꼭두각시놀음의 극 진행은, 등장하는 인형들과 산받이라 불리는 악사 한 사람의 대화를 통해 주로 이루어진다. 그 내용은 박첨지의 유람, 뒷절 중들과 피조리들의 애정 행각, 부인과 첩의 갈등, 사람을 해치는 이심이 퇴치, 평안 감사의 횡포와 장례, 절 짓기를 통한 기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에는 남녀 간의 갈등을 통해서 나타나는 남성의 횡포 비판, 벼슬아치와 하층민의 관계를 통해서 나타나는 신분적 특권 비판, 종교인과 세속인 사이의 갈등을 통해서 나타나는 관념적 허위 비판 등의 주제의식이 담겨있다.

꼭두각시놀음에 등장하는 인형들의 형태는 막대 인형, 줄 인형, 손 인형, 줄타기 인형 등을 망라하고 있다. 인형들의 형태가 다양함에 따라 그 조종 방식 역시 다양하다. 막대를 통한 조종, 손을 통한 조종, 장치를 통한 조종, 줄을 꿰어 날리는 조종, 줄을 통한 조종 등이 독자적 혹은 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꼭두각시놀음은 우리의 전통적 인형연행 중에서 가장 정교한 인형들이 등장하고, 세련된 연행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인형극과 중국 인형극을 염두에 둔다면, 그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인형극과 비교해 볼 때, 그 투박함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달리 본다면, 꼭두각시놀음은 동아시아 인형극의 고대적 양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고대 동아시아의 나무 인형의 특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인형극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인형극이 소박하고 예스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형을 주된 표현도구로 삼는 인형연행은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인형연행에서는 인간이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것을 능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형연행이 갖는 너른 표현의 가능성은 거의 제한이 없다. 인간이 상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들을 인형연행에서는 능히 해낼 수 있다. 상상 그 이상의 표현까지도 가능한 것이 인형연행이다. 오랜 옛날부터 미래까지 인형연행에서 우리가 언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무제한의 상상력과 그 실현이다. 이는 인형연행이라는 장르가 상상력 훈련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인형이 갖는 주제 전달의 용이함 역시 인형연행의 전망을 밝게 한다.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한 여러 교육·예술 활동에서 인형은 효과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글이나 말로만 표현하는 것보다 인형을 통한 표현이 주제 전달력에 있어 탁월한 효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글‧허용호(고려대 연구교수) 사진‧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