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에서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을 일컬어 특별히 부르는 별칭이 있다.

서양의 ‘르네상스 3대 거장’, ‘바르비종파’, 중국의 ‘오위와 절파’, ‘송강파’, ‘양구화단’ 등 당대 가장 두각을 나타낸 화가 중 지역이나 화풍에서 공통분모를 지녔거나, 혹은 시대적으로 구분되는 특징을 지닌 경우 통칭하여 부르는 별칭을 말한다.

‘삼원(三圓)’- 단원, 혜원, 오원 VS 삼재(三齋)-겸재,현재,관아재

조선 시대에도 회화의 전성기를 이끈 후기 화가 중 대표성을 띤 작가들을 묶어 부르는 별칭이 있다.

우리에게는 친숙한 별칭이 된 ‘삼원(三圓)·삼재(三齋)’이다. 삼원·삼재는 단순히 조선후기 6명의 대가를 일컫는 호칭을 넘어 조선후기 회화사를 약술할 만큼 그 자체로 한국미술사의 바탕이 된다.

알려진 대로 삼원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을 말하며, 삼재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을 꼽는다.

삼원에 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삼재에 관해서는 학자에 따라 관아재 대신 공재 윤두서를 앞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관아재가 한국적 풍속화의 실질적 토대를 이뤘다는 점과 조선후기라는 시대적 구분을 충족시키는 측면에서 공재보다 삼재에 포함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미술사의 서술에서 중요한 문헌자료로 삼는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에 ‘관아재는 겸재와 현재와 더불어 그림으로써 나란히 이름이 나서, 세상에 “선비로서 그림 잘 그리는 삼재”라고 일컬었다’라고 적은 기록도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삼원은 화원출신 전문화가, 삼재는 명문 사대부 출신 문인화가

그렇다면 조선시대 삼원삼재의 삶과 예술은 각각 어떤 특징을 지녔을까? 우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으로 삼원은 화원출신의 전문화가들이고, 삼재는 사대부 출신의 문인화가들이다.

이러한 특징은 삼원과 삼재에 해당하는 화가들의 예술적 성향과 조형적 특성과 관련 있다.

삼재는 명문 사대부 출신의 화가로서 중국화풍에서 벗어나 조선의 진경산수, 조선의 남종화, 조선의 풍속화라는 화풍을 구축하거나 토대를 마련해 조선 회화의 우수성을 드러냈다.

삼원은 조선시대 회화의 황금기를 이끌며 가장 한국적인 화풍을 통해 우리 회화가 변별력을 갖는 실질적 역할을 했다.

이런 점에서 삼원삼재에 해당하는 화가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회화의 특징을 알아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에 그 첫 번째로 삼재 중 관아재 조영석(1686~1761)과 삼원 중 단원 김홍도(1745~1806)를 비교해보자.

관아재와 단원, 두 사람은 풍속화의 대가이다. 그러나 사실 두 사람은 풍속화뿐 아니라 당대에 회화의 전 분야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관아재 조영석과 단원 김홍도 풍속화뿐만 아니라 최고의 재능 공통점

서양미술에서 르네상스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들 중 회화뿐 아니라 건축, 조각은 물론 철학, 수학, 과학 분야까지 전문적 식견을 지녔던 화가들이 있었던 것처럼 두 사람은 한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할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산수화에서 풍속화, 인물화, 영모화, 화조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우선 조영석은 인물화의 대가로 알려졌다. 영조시대 대표 화가로 인물화 분야에서는 당대 서열 1위라 할 정도 뛰어났다.

유배중인 형님을 그린 <조영복 초상>은 그가 인물화에 빼어난 솜씨를 지녔음을 실감케 한다. 관직은 중앙요직에 등용하지는 못해,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였지만, 사대부로서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시(詩)·서(書)·화(畵)에 탁월했다.

그가 독자적 화풍을 성립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열 살 위였던 겸재와 이웃해 살면서 가깝게 지내고, 사천 이병헌과 교유하며 자연스럽게 높아진 안목도 한몫했을 것이다.

특히 조영석이 윤두서로부터 김홍도를 잇는 풍속화가라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그로 말미암아 ‘윤두서-조영석-김홍신-김득신-신윤복’이라는 조선시대 풍속화사가 정립된 셈이다.

김홍도는 조선회화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화가이자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던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서당’이나 씨름도’와 같은 풍속화를 비롯해 산수, 화조, 인물, 초상에 불화까지 소재와 장르의 구분이나 제한 없이 모든 분야에 걸쳐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했다.

그는 최고 권력자인 정조로부터 당대 예원의 총수인 사대부출신의 강세황을 비롯해 학자, 화가, 소장가, 후원자와 교유하면서 형성한 든든한 인맥을 바탕으로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되었다.

정조의 개인문집인 <홍재전서>에 기록된 '무릇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홍도를 시켜 주관케 하였다.'라는 글만 보더라도 당시 김홍도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조영석과 김홍도의 화풍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장르는 역시 풍속화이다.

공재가 우리의 인물상을 여전히 중국의 화풍(배경)속에 두었다면, 조영석은 중국식 배경을 없애고 조선인의 모습을 그렸다.

풍속화의 배경생략이 김홍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미 조영석에서부터 나타난 구성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사실성을 근본으로 삼았다. 실물을 관찰한 후 그것을 토대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들이 실제상황을 연출한 듯한 사실성을 지닌 이유이다.

<도판> 위: 좌-조영석 <새참> 종이에 담채 20.5 × 24.5cm 우-조영석 <바느질> 종이에 담채 22.5×27cm 개인 소장 / 아래 : 좌-김홍도<새참> 종이에 담채 22.4cm x 26.6cm. 우-김홍도 <자리짜기> 종이에 담채 22.4 x 26.6cm, 국립중앙박물관.

조영석의 풍속화는 사대부출신의 시각에 때문인지 인물묘사에 일정한 틀과 격이 있다. 김홍도와 달리 사람들을 분주하거나 복잡하게 그리지 않았다.

<도판1>을 보면 관아재의 <새참>은 안정된 수평적 구도에 새참 먹는 풍경이 너무나 조용하며 적막감이 감도는 반면, 김홍도의 <새참>은 Ⅹ자 구도에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이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치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조영석은 뒷모습과 앞모습을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형식으로 인물을 배열하여 그렸고, 김홍도는 관람자의 시선에서 인물의 자세와 행동을 보는 시점에서 그렸다. 유홍준의 표현처럼 단원은 서민의 심성에서 서민적으로 그렸다고 한다면 관아재는 지식인의 입장에서 서민의 삶을 관조하는 시각을 유지했다.

두 사람의 조형적 특징을 <도판2>의 비교 그림으로 좀 더 살펴보자.

조영석의 ‘장기놀이’는 수평적 구도에서 크게 벗어남이 없고, 인물의 묘사와 의복의 표현이 김홍도에 견주어 점잖다.

(좌측그림이 우측그림의 밑그림으로 그려진 듯하다) 인물구성이 단순한 편이다. 김홍도의 아집도는 <도판1>처럼 인물배치가 흐트러져 있고, 의복의 표현도 꿈틀대듯 선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인물구성이 복잡하다. 조영석이 주로 새참, 바느질, 장기놀이 등 한 가지 일을 집중적으로 표현한 것에 주력했다면, 김홍도는 화면에 다양한 인물상을 함께 그렸다.

그의 그림에는 ‘새참’ 중 아이 젖을 물리는 아낙네, ‘자리짜기’의 물레질하는 여인과 책 읽는 아이, ‘아집도’의 글을 쓰고, 바둑을 두고,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대화를 나누는 등 인물 간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으로 그렸다.

이는 ‘씨름도’, ‘무동’과 같은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김홍도만의 탁월한 구성능력이기도 하다.

<도판2> 위 : 좌-조영석<장기놀이> 종이에 담채, 31.5×43.2㎝, 간송미술관소장 우-조영석<현이도(賢已圖)>,비단에 채색, 31.5×43.3㎝, 간송미술관소장. / 아래 : 좌-김홍도<오원아집도> 규격, 소장처미상. 강세황·김홍도·심사정·최북, 우-김홍도<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 부분도(김홍도가 그린 인물부분만 확대) 1763년, 종이에 담채, 112.5×59.8㎝.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조영석과 김홍도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화풍보다 화가라는 직업에 관한 시각차에서 한층 뚜렷하게 구별된다.

관아재는 명문사대부 출신답게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다. 뛰어난 화력으로 주위의 칭송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이 지닌 재주를 자랑스럽게 여기기는 않았다. 즉, 그림으로 이름을 얻고 출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다.

어진 제작 거역할 정도로 그림쟁이 재주를 후회한 사대부 조영석

후일 그림을 그린 것을 후회했다는 말을 남길 만큼 화가를 낮게 평가했다. 이는 그가 화가들이 최고 영예의 자리로 꼽는 어진화사에 두 번(세조어진과 숙종어진)이나 천거되었을 때 어명을 거역하는 불충까지 저지르면서 어진제작을 거부한 일화에서 확인된다.

1748년 영조가 숙종의 어용을 그리는 일에 참여를 명했을 때 영조의 노기 어린 질책에도 불구하고 ‘보통 그림쟁이들이 지닌 재주로 상감을 섬기는 것은 선비의 체면을 더럽히는 일이다’라며 화가로서 타고난 소질을 자랑으로 삼지 않았다.

김홍도는 조선 후기 회화의 황금기를 이끌 수 있도록 바탕을 조성해준 정조의 든든한 후원 아래 정조가 원하고, 정조가 뜻을 둔 모든 장르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어진화사로도 세 번이나 참여했으며, 정조의 명에 따라 금강산을 비롯한 수많은 산수화와 당시 백성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풍속화를 제작하고, 각종 궁중 행사의 모습을 담은 행렬도, 각종 잔치의 모습을 담은 연회도 등 화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나 그 중심에 있었다.

김홍도는 정조의 총애 아래 어진화사 세번이나 참여

김홍도의 끝없는 변화와 도전은 그가 왜 조선회화사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 또한 화가가 표출할 수 있는 창조적 역량의 깊이와 폭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대변해 준다.

궁극에 조영석과 김홍도 두 사람이 남긴 미술사적 가치는 중국적 화풍을 벗어난 화면 구성과 인물의 표현을 통해 시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대중적 미감을 추구한 점이다. 두 사람의 화업은 사대부 출신과 화원 출신, 화가에 대한 가치관 등 조선 후기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하나의 시각을 제시해준다.

* 관련 추천도서 : 편저자 오세창, 국역 동양고전학회 『근역서화징』, 시공사, 2007. / 오주석 『단원김홍도』, 열화당, 1998. 유홍준 『화인열전1,2』, 역사비평사, 2008. / 백인산 『간송미술 36회화』, 컬처그라피.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