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에 따라 다른 모양새의 등기

우리의 등기구는 기름을 넣어 빛을 담는 그릇과 앉은 사람의 눈높이에 맞게 만든 받침대를 모두 포함해서 얘기한다. 촛대를 비롯하여 방바닥에 놓고 사용했던 등잔대는 온돌문화의 좌식생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등기구의 모양 자체가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중요한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등잔대는 온돌을 쓰지 않는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중국이 온돌문화가 자신들의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들은 우리나라의 등잔대와 같은 조명기구를 사용한적이 없다. 그러므로 온돌문화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인 것이다. 앞으로 재단법인 한국등잔박물관의 유물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 온돌문화가 자연스럽게 우리 고유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시대에 따라 용도에 따라 등기구는 모양과 이름이 다양했다. 실내에서 사용한 등잔대와 촛대, 좌등, 서등, 벽걸이등과 실외등으로 사용된 제등, 조족등은 모두 생활용구로서의 기능과 함께 공예의 한 종류로 시대를 반영하고 염원을 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전기가 유입된 이후까지 상류층과 서민층 사이에서 등기의 재료와 문양은 뚜렷한 차이를 보이나 기본적인 구조에 큰 변화가 없었던 이유는 등기구의 구조와 형태에 대한 개선보단 빛의 질을 높이는 연소물인 양질의 기름과 초를 개발하는데 더 중점을 뒀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석유와 같은 광물성 기름이 생산되지 않았던 관계로 우리의 전통 등잔에는 연소물로 식물성, 동물성 기름을 이용한 유등과 초가 주를 이뤘다.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기에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이용했으며 초의 경우 귀했기 때문에 극히 상류층에서만 사용된 것으로 추측한다.

상류층의 등기는 금속 소재에 크기가 큰 경향이 있으며 문양의 장식 효과를 더해 화려했고, 서민층의 경우는 주로 나무로 자가 제작했기 때문에 소박하면서도 만든 이에 따라 특성을 살려 창조적이다. 특히, 서민의 등기는 대대손손 물려주기 위해 만들기보다 소모품으로 다 쓰면 다시 만드는 식이었기 때문에 보존이 어려웠던 점도 있다.

시대별, 종교별 양식의 변화는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 중국 한문화의 한 줄기인 낙랑 유적에서 청동제 고배형등과 토제의 칠지등이 발견된 바 있다. 낙랑 유적의 고배형등과 매우 유사한 것이 고구려 쌍영총 고분 벽화에 그려져 있어 당시의 등기 형태를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또 낙랑의 칠지등보다 일보 발전된 형태로 볼 수 있는 고신라시대의 다등식등잔(多等式燈盞)이 있다. 낙랑이나 한대 출토품의 다지등은 여러 개의 등잔이 나뭇가지 형태의 가지 위에 얹혀져 각기 독립된 형태를 유지하지만, 고신라의 다등식등잔은 4~6개의 등잔이 하나의 둥근 원통관에 연결되어 기름을 한곳에 넣으면 여러 개의 등잔에 일정한 유량을 유지하면서 불을 밝힐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1971년 발굴된 백제 무령왕릉 감실에서 출토된 5개의 종지형 등잔이 조선시대 말 석유가 수입되기 전까지 쓰여진 등잔의 기본형이었다. 종지형 등잔의 출현은 불교 전래 후 국가 체제가 완성되고 왕권이 신장되는 변천 과정과 더불어, 등기가 신앙 중심의 제례로 특수하게 사용된 의기로서의 역할보다는 실생활의 용기로 광범위한 계층에 사용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종지형 등잔의 형태는 제작상의 간편함과 등잔에 사용되는 기름이, 인화성이 약한 동·식물성 기름으로 일관되어 왔으므로 등잔의 기본 형태로 정착된 것이라 추정한다.

시대별로 종교가 미친 영향을 봤을 때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까지는 불교의 영향으로 등기구의 모양도 종교적 성향을 띠어 귀족적이고 화려한 특성을 보이며, 고려시대는 불교를 국교로 하여 연등 의식이 국가적인 행사로 치러져 제등의 최전성기를 맞았다. 이는 조선시대 제등의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것이 의·예식용 청사초롱이다.

반면, 조선시대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화려한 불교문화를 억압하고 유교적 사상에 입각한 소박하고 자연주의적 성향을 띤 실용적인 등기가 다량 제작되었다. 또한 조선 중기 이후 시장 경제 발달로 민간생활이 향상되면서 서민도 질 좋은 등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이에 더욱 다양한 형태의 등기가 제작되었다.

현재진행형을 살아가는 등기구로 이어지길

우리의 등기구는 불을 붙이는 심지와 연소물인 기름을 담는 그릇인 등잔, 그리고 받침대인 등잔대로 크게 나뉜다. 등잔대는 재료나 형태, 쓰임에 따라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등잔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등경’, 높이 조절 없이 쓰는 ‘등가’가 있다. 바느질이든 학업을 익히든 등잔의 불 높이가 앉은 사람의 눈높이보다 약간 아래쪽에 있도록 제작해 눈이 상하는 걸 막았다.

등유에 관한 기록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 찾을 수 있다. “참기름은 기름을 짜고 나서 오래 두면 향기가 없어지고 등불을 피워도 꺼진다. 반드시 수시로 짜서 쓰는 것이 좋다. 들기름으로 등불을 켜면 빛무리가 생기지 않으며 기름이 맑고 기름양이 많이 나온다. 피마자기름은 부인들이 길쌈할 때 불을 밝히기는 하지만 독서하는 데에는 알맞지 않다. 반드시 눈을 상하게 한다. 머구나무씨 기름은 등불로 쓰기에는 아주 좋지만 독서하지는 못한다. 눈이 상할까 염려된다”고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등기 자체의 구조와 형태를 언급한 자료보다 등유를 추출하거나 사용방법에 관한 것이 훨씬 많은 것으로 보아 등기의 구조를 개선하는 것보다는 등유의 질을 높여 양질의 빛을 얻고자 함이 더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종지형백자 등잔에서 근래까지 사용하던 등잔의 모습이 1,5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큰 차이가 없는 것을 보아 추측할 수 있다. 심지는 솜·삼실(麻絲)·한지(韓紙)를 꼬아 사용하였다.

촛대는 주로 왕실이나 상류계층에서 사용했는데, 이는 초의 원료가 워낙 귀하고 만드는 방법도 쉽지 않아 대량생산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촛대는 통일신라시대의 출토품으로 알려진 금동감옥 촛대가 있다. 이 촛대는 높이 36.8cm, 밑지름 21.5cm의 크기로 여섯 개의 수면(獸面)다리와 여섯 꽃잎의 상·하 반을 가졌고, 촉좌(燭座)와 그 받침은 만개한 겹연꽃 형태로 전체 각부에 48개의 자수정을 물린 장중하고 화려한 기형을 하고 있다. 등기면 전체에는 서화(瑞花) 무늬와 작은 고리 무늬가 빈틈없이 음각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국력이 신장되고 산업 경제가 발달되어 초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경제적인 초의 이용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밀초를 사용하면서 밀봉의 절종을 염려한 세종은 이의 사용을 금하고 유등(油燈)으로 대신하게 했고. 횃불 대신 납을 오승포에 바른 포초(布燭)를 사용하게 하였다. 쇠기름이나 돼지기름으로 만든 초가 생산되기도 하였으나 질이 좋지 않았으며, 밀초는 관청의 엄격한 통제하에서 사적 매매를 금하고 관혼상제시에는 관청의 밀초를 배급받아 사용하도록 하였다.

등과 초로 대표되는 우리의 전통 등화구는 근대 생활에도 계속 조명으로써 기능과 역할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전깃불과 석유와 성냥, 파라핀 초 등이 일상용품으로 대체되기 시작하는 양상을 보였다. 등기는 사용되고 잊혀지기 전까지 생활용구로서의 역할만이 부각되었던 측면에서 확장되어, 시대를 반영하고 당대의 미의식을 담아내는 민속 공예품으로의 연구가 더욱 풍부해져야 한다.

글+사진‧재단법인 한국등잔박물관

출처:월간 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