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이 은근한 녹청자는 선조들의 생활필수품이었다. 서민들의 생활자기로 두루 쓰이던 녹청자가 오늘날 공예품으로 주목 받고 있다. 김갑용 명장의 혼으로 빚어낸 녹청자는 역사와 현대 사이에서 공예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도자공예가 최초로 인천명장 칭호를 받았다. 그의 손이 흙을 타고 숨결을 불어넣는다. 녹청자가 그를 만나 천년의 세월을 거스른다.
38년간 도공으로 살며, 최초 복원
녹청자의 역사는 고려시대에서 출발한다. 고려의 도자라고 하면 화려한 고려청자가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에 앞서 녹청자가 있었다. 녹청자는 9세기, 토기에서 도자로 넘어가던 시대에 탄생한 우리나라의 도자다. 소박하고 정갈한 멋을 지닌 녹청자는 고려를 지나 조선에 이르기 까지 서민들의 삶과 함께했다. 자유롭게 성형해 밥그릇, 찬그릇, 찻잔, 항아리 등으로 그 쓰임새도 다양하다. 녹청자에서 성분을 빼내어(탈철) 청자를 만들었으니 ,고려청자에겐 아버지뻘이다.
천 년 전 서민의 삶을 담아내던 그릇이 김갑용(59) 명장을 만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는 10세기 녹청자를 최초로 복원한 장본인이다. 서민들의 생활자기라는 이유로 땅속에 묻혀있던 것이 공예품으로서 역사 위에 섰다. 38년간 도공으로 살던 그가 돌연 녹청자의 매력에 빠져 연구에 몰두한 결과다.
“녹청자는 우리의 흙과 물과 바람으로 빚어낸 보물입니다. 이 보물을 그냥 묻혀두는 건 도공으로서 죄를 짓는 일이죠.”
매일 같이 물레 위에서 흙을 빚는 그의 손엔 흙냄새가 베었다. 그가 쓰는 태토도 직접 만들어 특허를 냈다. 물레 위에서 중심을 잡고 일으켜 성형을 하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힘과 집중력이 필수다. 온 몸의 힘이 손바닥으로, 끝으로 실려 흙을 타고 오른다. 손가락 사이로 진득하게 흙이 묻어난다. 균형을 잡고 일어난 태토 위로 이번엔 가볍게 그의 손끝이 닿는다. 그는 이미 흙과 하나였다. 손가락 크기의 구멍이 점점 넓어져 대접의 모양을 갖춘다.
오랜 세월 그렇게 흙을 빚은 탓에 양 어깨의 근육은 모두 파열되었다. 양쪽에 철심을 심어야 했지만 그는 여전히 흙을 빚는다. 사명감이다. 도공으로서 우리의 진귀한 문화를 후대에 남겨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그의 손에서 흙을 떼어놓지 못하게 한다.
자료, 문헌없어…유물을 스승삼아 연구
녹청자는 인천의 그릇이라 불린다. 서구 경서동의 녹청자 도요지가 출발점이다. 녹청자가 대한민국의 유산이라는 것을 알린 곳이다. 그곳에서 김 명장의 연구도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녹청자에 대한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었단다.
“국립도서관부터 해서 무던히 자료를 찾았어요. 그런데 문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연구나 기록이 미비했던 거죠. 유물을 스승삼아 여기까지 왔어요.”
한 켠에 보물처럼 숨겨둔 박스를 열자 천 년 전 유물이 눈앞에 놓였다. 조각난 유물은 그의 스승이자 교과서였다. 단면을 잘라 구성을 확인하고 가마에 넣어 구워진 온도를 확인했다. 재래방식으로 하나하나 연구하며 수천, 수만 번을 반복했다. 인내의 과정이었다. 사비를 털어 연구에 매진하는 통에 생활고도 여러 차례 겪었다. 마침내 2014년 인천에서 인정한 최초의 녹청자 공예명장이 되었다.
“어려울 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순간이었어요. 옹기의 후예로서 애증이 있거든요. 제가 그만두면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게 계속 지속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에요.”
끊임없는 연구 끝에 복원된 녹청자는, 이제 그의 손에서 현대의 옷을 입고 공예품으로 거듭난다. 아무도 걷지 않던 길에 선뜻 뛰어들어 긴 세월을 녹청자와 함께 했다. 그사이 딸도 계승자로서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녹청자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연구에 몰두하느라 그러지 못했지만 앞으로 더 활발하게 녹청자를 계승하는 데 힘쓸 것입니다.”
그는 1990년 녹청자 연구소 도연요(서구 가좌동)를 설립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사)한국도예협회 인천지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인천시와 전국 기능경기대회 등에서 수차례 입상하였으며, 현재 동춘동 소개 교육장에서 후학양성에 힘쓰는 중이다.
차지은 I-view 기자 minsab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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