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립박물관 뒷마당에는 쇠로 만든 중국 종(鐘) 3점이 나란히 서 있다. 종이 제조된 시기도 송, 명, 원나라 시대다. 가장 먼 시기까지 따지면 수 백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종은 원래 중국 사원에 걸려 신도들이 만복과 건강을 빌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 종들이 무슨 연유로 수만 수 천 킬로 떨어진 이역만리 한국의 인천에 있는지 종의 기구한 역사가 궁금해진다. 사실 중국의 종이 우리나라 박물관 전시장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낯익은 광경은 아니다. 종들의 사연을 알고 나면 우리의 고달팠던 역사와 닮아 있음을 알게 된다.
고 이경성 시립박물관 관장이 부평조병창에서 가져와
중국에서 온 3개 범종은 부평에 있던 조병창에서 가져왔다. 조병창은 일본이 소총, 총검, 탄환, 포탄 등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1939년 부평구 일대에 건설한 군사기지다. 1941년 완공됐고 일본 오사카에 있던 육군 조병창의 지역공장으로 일본 본토 밖에 세워진 유일한 조병창이었다.
이곳 조병창에는 광복이 될 때까지 매월 소총 4천정, 총검 2만정, 탄환 70만발, 포탄 3만발, 군도 2천정, 차량 200량 등을 만들어 냈고, 1944년부터는 조선기계제작소 인천공장을 감독하면서 소형 잠수정도 제작했다고 한다. 광복 이후 조병창 자리에는 공교롭게도 미군의 병창지원을 위한 애스컴(ASCOM, 주한미육군병참본부)이 들어서 1970년대 초반까지 운영되었고 이후 부지와 시설이 축소되기는 했지만 미군기지인 캠프마켓(Camp Market)이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군수물자로 용왕로에 녹여지기 전 바로 마지막 갈림길에서 살아나 시립박물관으로 온 범종들은 어떻게 인천 조병창으로 왔을까. 1942년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이 가장 격렬하던 시기에 일본군은 전쟁 물자가 매우 부족했다. 전쟁물자를 구하고자 일본군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에 이르기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량의 금속을 조병창으로 옮겼다. 조병창에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는 물론 저 멀리 중국에서 공출한 각종 쇠붙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릇이나 수저와 같은 생활도구부터 철로와 교각, 사찰의 범종에 이르기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두 무기의 재료가 되었다.
중국의 범종들은 일본이 1945년 8월 항복을 선언함에 따라 용광로에 들어가기 전 살아남았다. 조병창에 귀한 문화재급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안 시립박물관 초대 고 이경성 관장이 미군의 도움을 받아 가져왔다. 그때 중국범종은 물론 중국향로, 대포, 불상 등도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왔다. 중국인들에 의해 태어나서 일본인들에 의해 한국으로 끌려오고 한국인과 미국인에 의해 용강로 신세를 면하고 구출되었고, 응봉산에 살다가 다시 청량산으로 이사했으니 관계된 나라만해도 4개국이 넘고, 살던 곳만 해도 5군데가 넘으니 산전수전을 넘어 국제적 풍파를 겪은 범종이다. 범종이 살아온 길이 우리네 역사와 닮아 있음을 보게 된다.
중국 하남성에서 주조, 송, 원, 명나라 등 시대 달라
오래전 조병창에서 가져온 범종은 넓디넓은 중국땅 어디에선가 하늘에 복(福)을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 중국 향로와 대포도 나름의 목적으로 정성스럽게 제작되었을 것이다. 강제로 가지고 온 것이라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주소가 남아 있을리 없지만 몸체에 적힌 명문을 통해 출신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시립박물관에 있는 중국범종 3기는 각각 송나라와 원나라,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제작 시기는 다르지만 만들어지거나 사용된 장소는 비슷하다. 송나라 범종은 정확하게 제작장소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명문에 나오는 수무현(脩武縣) 등의 지명으로 볼 때 주조 장소나 사용처가 오늘날 하남성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원나라 범종도 하남성 안양현(安陽縣)에서 제작되었고 명나라 범종은 하남성 상구현(商丘縣)에서 태산행궁(泰山行宮)이라는 사원에 갈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강화 전등사에 있는 범종도 하남성에 있는 숭명사(崇明寺)라는 절에 있던 것으로 조병창에 있던 범종은 모두 하남성 일대에서 만들어지거나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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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종은 부피가 큰 탓에 서양에서도 전쟁물자로 공출되는 예가 많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종들이 몰수되어 무기 제작용으로 녹여졌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유럽 각국의 수많은 종들이 무기를 만들기 위해 공출되었다고 한다. 전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평화와 안식의 상징인 종이 사람을 해하는 무기의 재료가 되는 역설을 만든다.
중국 신화통신 취재 다수 중국 언론에 소개
시립박물관에 있는 종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작년엔 중국 신화통신사에서 취재를 왔다. 신화통신 기자는 이국인 한국의 인천 땅에 자신들의 조상들이 만든 종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하고자 한걸음에 인천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3개의 범종에 대한 이야기부터 인천으로 오게 된 과정, 지금의 보존상태 등을 취재했다. 기사에서는 자국에서 유실된 문화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했다. 신화통신 기자는 “친구와 함꼐 인천에 여러 번 온 적이 있었는데 중국과 관련된 유물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비와 바람을 피하기 위해 중국 범종에 정자를 지어 보호하고 있었던 것에 특별한 큰 관심을 갖고 보았다”라고 적고 있다. 시립박물관 배성수 부장은 “매번 중국 관람객이 방문할 때마다 모든 해설사들이 이 중국 유물들의 유래를 특별히 소개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중국 신화통신을 통해 운남성장TV, 신화넷, 천진넷, 금양넷, 절강재전 등 다수의 중국 언론에 다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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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사진 유창호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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