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였던 30점 경위 밝혀져… 일제시대 日 학자들이 제작 "학술 목적이었지만 판매도 한 듯" 복제품 목록 책자, 일본서 찾아
경주 입실리에서 발견된 철기시대 유물의 복제품. 1980년대 초 ‘한일교류전’ 도록에 진품으로 실렸다.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제공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에는 가짜(복제품) 유물 30여 점이 있다. 1920년 경주 입실리에서 발견됐다는 철기시대 유물 5점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초까지 박물관 내부에서도 이 유물들이 복제품인지 몰랐다. 그 때문에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각종 책자에도 소개됐고 해외 전시에도 나갔다. 지난 2007년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입실리 유물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고 발표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도대체 누가 왜 어떤 이유로 복제품을 만들었는지는 수수께끼였다. 광복 직후에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복제품 소장자가 놓고 가서 경주박물관에 입수됐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
이 가짜 유물의 비밀이 드디어 풀렸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올해 새 특별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들이 만든 복제품 목록 책자가 발견된 것. 김유식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당시 일본 고고학계가 서양의 선진 고고학을 받아들이면서 유물을 실측하고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복제품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서문에 있다"며 "경주박물관에 있는 복제품 30여 점의 정확한 출처가 밝혀졌다"고 20일 밝혔다.
박물관이 일본에서 입수한 책은 두 권이다. 1930년 발간된 '고고학 관계자료 모형 목록'과 1931년 나온 '고고학 관계자료 모형 도보'. 전자는 복제품 목록과 각각의 가격이 표시됐고 후자는 유물 사진과 설명을 적은 일종의 도록이다. 목록에 나오는 유물은 총 230여 점. 금관총 금관, 석굴암 모형 등 한국 문화재뿐 아니라 일본 문화재, 서양 작품이 망라돼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당시 저명한 고고학자였고 한반도의 고분 발굴에도 깊이 관여했던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 교토제국대 교수의 주도로 우에노제작소에 의뢰해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처음엔 학술적 목적으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판매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복제품인데도 가격이 꽤 비싸다. 입실리 유물 복제품은 석고로 뜬 것과 주물을 뜬 것의 두 종류인데 석고는 15엔, 주물은 45엔이다. 박물관은 "당시 쌀 10㎏이 1엔60전, 순사 월급이 47엔이었으니 상당히 비싼 편"이라고 했다. 고구려 석실고분 모형은 95엔, 석굴암 축소 모형은 150엔에 달한다. 이건무 전 관장은 "1970년대 중반 경주박물관에서 일하면서 중앙박물관과 경주박물관에 '똑같은' 유물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진품을 진흙에 찍어서 틀을 만든 뒤 복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크기만 1~2㎜ 줄어들었고 문양이나 홈이 거의 완벽하게 똑같다"고 했다.
경주박물관은 26일 개막하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수집품' 특별전에서 입실리 유물 5점의 복제품과 진품을 함 께 전시할 예정이다. 충남에서 출토됐다고 전하는 청동거울 복제품과 이번에 입수한 책자도 함께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 부산의 자본가 가시이 겐타로, 대구에서 병원을 경영한 이치다 지로, 대구의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 등 일본인 3명이 수집한 문화재를 처음 공개하는 자리로 1945년부터 1963년까지 기증 또는 압수 형식으로 경주박물관에 입수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