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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한옥대목수 조은산 시인을 만나다

“새도 짐승도, 하다못해 벌과 개미조차 지 살 집은 스스로 짓고 살 줄 알아요.
오직 인간만이 지 집을 지가 못 짓는 무능한 생명체죠.“

커피로 그린 한옥대목수 조은산 시인

‘인간만이 자신이 살집을 못짓는 존재’
“새도 짐승도, 하다못해 벌과 개미조차 지 살집은 스스로 짓고 살 줄 알아요. 오직 만물의 영장이라 뻐기는 인간만이 지 살집을 지가 못 짓는, 어찌 보면 무능한 생명체인 거죠.”
강화도 선두리 길화교 삼거리에서 동막해변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함허동천 못 미친 길가 우측에 허튼막돌쌓기방식의 나지막한 거북돌담으로 둘러진 한옥팬션이 나온다. ‘남취당의 한옥이야기’다.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한옥체험의 집이자, 한국관광공사가 ‘한옥스테이’로 인증한 곳이다. 이 집을 설계하고 직접 지은 주인장은 한옥대목수이자 시인인 조은산(59)씨다.
“모든 생명체는 각기 그 종의 특성과 생체리듬에 최적화된 집짓기 능력을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있지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나름대로 정교하고 자연과 철저히 동화된 집짓기 기술이죠. 포식자로부터 자신과 새끼를 보호하는 생존과 번식이 최우선 고려조건인 만큼 눈에 띄는 과잉치장은 금물이죠. 자기과시용 호화주택을 짓지 못해 안달하는 인간의 욕심은 그런 점에서 비자연적이고 반생명적인 오만인 거죠. 한옥은 오랜 세월 우리민족의 생태와 우리자연의 특성에 맞춰 순화된 집이에요. 사용되는 부재에서부터 배산임수의 지형과 바람의 통로나 해가 드나드는 길목까지를 세심하게 고려한 우리만의 고유한 집짓기 방식이죠.” 남취당의 우물마루 다실 ‘해원(海苑)’에서 감국차 한잔을 앞에 놓고 마주한 조시인은 한옥예찬부터 쏟아놓는다. 창문 가득 푸릇푸릇 봄기운을 머금은, 길 건너 동주농장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32년간 인천, 강화 등에서 교직활동, 시집도 펴내
故노무현 前대통령 생가에서 4km 떨어진, 김해 진례면에서 태어나 진주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80년 초 경기도로 발령받아 32년간 인천, 강화 등지에서 교직생활을 했다. 우리말을 사랑해 국어선생이 되었고 시인으로 문단에 나와 시집도 펴냈다. 강화색시를 만나 결혼해 알콩달콩 두 아들도 두었다. 그런데 잔잔하던 일상에 어느 날 문득 돌개바람 한 줄이 출렁였다. 혹독하게 혼냈던, 엇나가기만 하던 제자 하나가 그만 목을 맨 것이다. 충격이었다.
“20년도 훌쩍 넘게 이어오던 선생노릇에 회의가 밀려왔어요. 소통불능의 언어에 대한 절절한 무력감과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결기만을 투사하는데 급급했다는 자책감에 천직이라 믿었던 국어선생노릇을 접었죠.”
승진을 포기하고 연세대교육대학원에 진학해 1기 전문상담교사로 전직했다. 하지만 각종 서류와 행정업무를 뒤치다꺼리하느라 정작 아이들 상담은 뒷전이었다. 하루하루 의미 없는 생활을 견디기가 힘에 부쳤다. 5년을 겨우겨우 버티다 결국 사표를 썼다.

청도한옥학교에 등록해 대목장과정을 이수했다. 싱싱한 육체노동과 신선한 땀방울은 열패감으로 조각난 그의 영혼을 느리게나마 치유해주었다. 수개월을 오직 한옥 짓는 일에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남은 인생을 한옥대목수로 살아도 괜찮을 듯싶었다. 30년을 살아온 강화도에 땅을 장만해 직접 자신만의 한옥 집짓기에 돌입했다. 한 채, 두 채 자신이 손수 지은 한옥이 늘어갈 수록 집짓는 일에 이력이 붙고 열정이 이글거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글도 쓰고 한옥건축에 대한 소회를 담은 ‘허튼 목수일기’라는 책도 펴냈다.

한옥은 넉넉한 여유 제공, ‘한옥문화촌’ 만드는 게 꿈
“한옥은 우리네 문화에 최적화되었다고는 하나, 편리함을 목적으로 지어진 양옥에 비해 불편한 집인 것은 분명해요. 철저히 지배층의 이데올로기가 투영된 건축물이기 때문이죠. 한옥은 사실 하인들이 꾸려가던 집이죠. 안채 양반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기단은 필요 이상 높고, 진짓상 나르느라 수시로 넘나들어야하는 하인들의 고충은 말할 나위가 없었죠. 솟을지붕을 얹은 널찍한 한옥조차 하인들의 활동영역은 상대적으로 비좁고 열악했으니, 한옥은 오로지 지배층한테만 편안한 구조였던 거죠. 하지만 한옥은 그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풍성한 매력과 넉넉한 정신적 여유를 제공하는 미덕이 있어요. 현대한옥은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 생활 동선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량됐고요.”
마리산 허리를 비껴 날아든 봄볕이 마리울 본채의 불발기창틈을 비집고는 눈썹천장 아래 매달린 목어의 비늘에서 부서졌다. 분오리돈대 너머 서해바다로 한창 노을이 지는 모양이었다. 뒤늦게 돌아온 조시인의 부인이 빈대떡과 동동주를 내온다. 남취당은 바로 안주인의 택호라 했다.
“강화에 자그마한 ‘한옥문화촌’을 만들어보는 게 꿈이라면 꿈이죠. 여차리 쪽 마리산 아래에 안성맞춤인 곳을 오래전부터 보아뒀는데 문제는 언제나 돈이죠.” 동동주를 한 순배 비워낸 조시인은 입맛을 다시며 웃었다. 벌써 네댓 채씩 자신의 손으로 어렵사리 한옥을 지어내고도 화두는 여전히 ‘한옥’이었다.
“한옥대목장을 주제로 한 소설도 한편 구상 중이에요. 자료를 수집해온지 꽤 됐어요. 틈틈이 진주며 전주 등지를 돌며 취재도 하고 아이디어도 얻고 있지요. 무슨 대단한 베스트셀러를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옥대목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곤 하는 옛날 선배대목장들의 전설 같은 영웅담들이 세월의 뒤안으로 빠르게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소설로라도 기록해두자는 거지요.”

▲ 커피로 그린 조은산 시인의 부인 남취당

커피로 그린 조은산 시인의 부인 남취당
이백 ‘독작(獨酌)’읽으며 강화의 봄밤 즐겨
그때 남취당의 휴대폰이 울렸다. 객실을 예약하려는 전화인 듯했다. 자꾸만 가격을 후려치는지 전화를 받는 내내 남취당의 얼굴이 흐리다. 휴대폰을 끊자마자 또 다시 벨이 울린다. 엊그제 아라울 사랑채 예약손님들이 곧 도착하는 모양이다. 남취당이 손님 맞을 채비를 위해 부산하게 나선다.
“나도 잠시 불목하니 노릇하러 댕겨와야겠네요. 사랑채 아궁이에 군불 좀 넣고 금방 돌아올게요.” 조시인도 서둘러 일어선다. 어느 틈에 땅거미가 지고 돌담 위의 가로등이 환하다. 혼자서 동동주를 두어 순배나 마셨는데도 조시인은 통 돌아올 기미가 안 보인다. 무료하게 방안을 둘러보는데 주방 위에 걸린 서각이 눈에 띈다.
‘삼배통대도(三杯通大道) 일두합자연(一斗合自然)’
‘술 석 잔이면 대도와 통하고 한 말을 마시면 자연과 합한다.’는 이백의 ‘독작(獨酌)’이라는 시구다. 까딱하다 오늘밤, 진짜 말술에 엎어져 코를 땅에 박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기자도 슬며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강화의 봄밤은 아직도 날이 서 가로등조차 파리했다. 남취당 한옥의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조시인의 불목하니 노릇이 한창인 모양이다.

※남취당 홈피: http://www.kyl3850.com/
남취당블로그: http://blog.naver.com/kyl3850

글. 커피그림 : 유사랑 I-View 객원기자